[칼럼] 누가 전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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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전문가인가
  • 김지혜
  • 승인 2023.03.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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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김지혜 <br></strong>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김지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 시애틀 추장 연설문{녹색평론선집 1(1993), 김종철 역, 녹색평론사} 중에서

‘시애틀 추장 연설문’은 1854년에 북아메리카 원주민 수쿠아미쉬 부족 추장인 시애틀이 미국 정부로부터 땅을 팔라는 제안을 받고 쓴 글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도 환경과 인권,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담긴 글로 회자되고 있다.

시애틀 추장은 위 연설문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담았다. 자연은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며,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고,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좀처럼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법학을 공부한 나라면 부당한 소유권 침해를 문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애틀 추장은 기존 통념, 관습, 법률, 문화, 지식, 권위 등에 갇히지 않았다. 추장은 인간이 땅을 소유하고 사고 팔 수 있다는 발상, 곧 자연에 대한 소유권 개념 자체를 문제 삼는다. 당연한 전제로 삼아왔던 것에 대하여 근본적이고 새로운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추장은 자신의 경험, 직관, 통찰과 충돌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이면에 감추어진 것들을 들추어낸다.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을 사겠다는 요구의 근저에는 우리, 그들, 자연을 분리시키고, 그들과 자연을 대상화하여 지배하겠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는 것을 간파해낸다.

시애틀 추장 연설문에는 문제의 핵심만이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도 담겨 있다. 글 전체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배어있다. 애정이야말로 무한한 동력이고, 지식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추장은 일을 하다가도, 먹다가도, 자려고 누웠다가도,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껴지는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애정이 깊으면 떨쳐내고 싶어도 끝없이 생각나기 마련이어서, 일상에서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고민은 문제의 본질을 보게 한다. 또한 연설문에는 땅을 뺏으려고 하는 자에 대한 애정과 겸허함도 담겨 있다. 시애틀 추장은 애정을 바탕으로 모두를 살리고자 했기 때문에, 문제를 잘 볼 수 있도록 시야를 열어주고 새로운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사안을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일까. 우리사회는 수많은 사안에서 법률가에게 전문가로서 발언권을 부여하고, 문제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과 지위도 준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대부분 기존 지식과 언어를 체화한 자이고, 또 법개념, 법논리, 법관행에 익숙한 자이다. 그렇게 지배담론에 갇히기 쉬운 조건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상대화하지 않아도 되는 권위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 점도 함정이다. 문제가 발생한 현장에 대하여 어떠한 경험도 없으면서, 당사자들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도, 더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법률가는 그러한 위치에서 전문가로서 어떤 관점과 해결방안을 가질 수 있을까.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법률가 자격증이 아니라,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애정, 그에 따른 끝없는 물음과 성찰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특정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 의견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경험, 언어, 논리, 상식, 통찰, 직관, 전략, 판단 기준, 실천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김지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3년 1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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