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가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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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노동자인가?
  • 최용성
  • 승인 2023.03.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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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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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가장 넓게 정의하면,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서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가 된다. 이런 의미라면,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대기업 임원이든, 예술가든, 종교인이든, 전업주부이든 모두 노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노동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럼 누가 노동자인가? 생산의 3요소는 노동, 자본, 토지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수단인 자본 및 토지의 사유화라는 바탕에서 생산으로 생기는 이윤을 자본이 자유롭게 획득해가는, 다시 말해 사적 자본에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경제 체제이다.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려면 사람의 노동력과 결합하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누군가로부터 고용되어 급여를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고용주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며, 적법한 요건이 갖춰지면 해고당할 수 있는 존재이다. 즉 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이다.

2022년 8월 기준 정규직 1,356만 8,000명, 비정규직 815만 6,000명이므로 총노동자 수는 21,724,000명이다. 총 5,100만여 인구 중 41%가 넘는 비율이다. 2021년 기준 평균 가구원 수가 2.3명이니, 취업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하면 직업을 가진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위세를 떨친 적도 없고, 미디어 보도는 노동운동에 부정적인 편이다. 왜 다수인 노동자가 다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 정책이나 언론매체의 반(反)노동적 보도, 교육, 사회의 관습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노동 운동하는 노동자들을 나와 다른 존재로 보는 허위의식이 다수 노동자의 의식/무의식에 자리 잡은 것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당연한 노동조건들, 주 52시간 근무, 시간 외 근무 등 특별근로에 대한 각종 수당, 부당해고의 엄격한 금지, 사내 복지의 향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제재, 주5일 근무, 높은 급여, 산업재해에 대한 구제 등등이 거저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누리게 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좀 더 살펴보자. 노동자 개개인은 아무리 똑똑해도 기업과 근로계약을 하면서 급여든, 근로조건이든, 자신의 이익에 관한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부동문자로 된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입사하지 않는 선택지만 놓여 있을 뿐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가 금과옥조로 삼아온 계약의 자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은 근로계약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 결과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 수당 없는 시간외 근무, 열악한 작업환경, 산업재해로 인한 불이익의 개인적 감수, 휴일 근로, 야간 근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 아동의 노동, 인격 모독적 처우 등등 모두 노동자의 불이익으로 돌아왔다. 이런 부당함을 바로잡고 기업에 입사하는 노동자가 부동문자로 된 근로계약서에 서명만 해도 최소한의 인간적 노동 환경을 보장받게 만든 것은, 오랜 기간 온갖 박해를 받으며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싸워온 노동운동의 성과이다. 나는 사무직이니 노동조합은 생산직 노동자들만 가입하는 단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그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하여 달성한 노동조건의 혜택은 누린다. 그러니 자신이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면, 자기 대신 싸워주는 노동자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다.

노동이 3대 생산요소라고는 해도, 노동자는 홀로는 아무런 협상력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단체를 통하여 노동자의 의사를 관철하도록 보장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자유는 보장될 수가 없다. 이러한 역사적 반성을 통하여 헌법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 제1항)라고 기본권으로 명시하여 규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헌법 제32조 제1항)라고 하여 국가가 노동자의 요구에 응하여야 할 책무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력이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기는커녕 타도할 악으로 공격하는 시대이다. 걸핏하면 법과 원칙을, 헌법정신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에 관한 헌법 조문 하나로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이라는 비약을 일삼는 검사 출신 관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희한하게도, 노동자의 인권과 그것을 뒷받침할 국가의 의무에 관한 헌법 규정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래서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자율적 단결권의 결과인 노동조합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보겠다거나, 단체행동이 불온하다는 편향된 인식이 얼마나 반헌법적인지 묻고 따져야 한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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