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중대선거구 개편과 다당제 등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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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중대선거구 개편과 다당제 등장 가능성
  • 신희섭
  • 승인 2023.01.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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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중대선거구 논의가 활발하다.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도 변경에 따른 실제 효과는 별개로 하더라도 제도를 통한 정치 변화를 시도하는 담론화는 의미가 있다.

중대선거구 논의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 보자. 중대선거구가 추구하는 목표는 이론적으로는 지역주의의 완화와 다당제에 있다. 정당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이론과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명분은 다당제를 통한 다양한 민의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다당제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에서 다당제(다당체계)가 만들어질 수는 있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를 역사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다당체계는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 때 만들어진 지역주의에 기초한 다당제였다. 흔히 PK의 부산·경남과 TK의 대구·경북과 DJ의 호남과 JP의 충청을 중심으로 민주화 이후 토대를 만드는 정초선거에서 구성된 다당체계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서 충청권 정당이 약화하면서 2004년 총선에서는 양당제로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서 양당제와 다당제는 의미 있는 의석수를 가진 유효정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차지했지만, 유효정당으로서 한 개의 정당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유효정당 수보다 현실에서는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석 이상을 보유한 정당을 유효정당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2004년 총선 이후에는 대체로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두 번째 다당체계는 2016년 선거에서 ‘국민의 당’이 38석을 확보한 경우다. 이때는 안철수 대표의 새로운 정치에 공감한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선거에서 2위(26.74%)로 몰아준 것과 동교동계 인사들이 민주당에서 나가 ‘국민의 당’ 당적으로 호남에서 31석 중 23석으로 압승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계파 간 불화와 분당이 다당제를 만든 것이다.

역사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지역주의에 기초한 다당제는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이 호남을 배제하는 경우나 국민의 힘에서 영남을 배제하는 경우 여전히 분당을 통해 다당체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권력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 정당정치의 특성상 이렇게 분당한 정당은 다시 양당 내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호남의석과 영남의석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자. 한국은 혈족 집단(ethnie), 언어, 역사와 같은 정체성에서 동질적인 사회구조다.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하나의 세력이 되기에는 아직 크기가 작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처럼 이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다당제를 만들기 어렵다.

정치학자 레이파트는 합의주의 의사결정방식과 다수결주의 의사결정방식을 구분하였다. 구분의 기준은 혈족과 언어의 정체성을 사회균열(social cleavage: 사회적 갈등의 기준)로 가졌는지 아니면 영국처럼 산업화에 따른 자본과 노동의 사회균열을 가졌는지에 있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협족 집단과 언어 그리고 역사를 달리하는 세력들이 여럿 모여 한 국가를 이루고 있다. 스위스와 벨기에가 대표적이다. 이런 국가들은 제도적으로 다당제를 보장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유럽 국가들과 다르다. 한국의 정치적 균열은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념이나 지역이나 세대는 모두 분배 투쟁과 관련되어 있지, 정체성 투쟁을 이루고 있지 않다. 분배 투쟁은 대체로 듀베르제의 용어를 빌리면 ‘이원화되는 경향’이 있다. 즉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구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은 정당도 이원화하려 한다.

서구에서는 1990년대 정보통신혁명과 탈산업화로 인해 다당제가 나타나고 있다. 환경 중심의 ‘녹색당’이나 저작권해방을 외치는 ‘해적당’과 같은 탈산업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정당들이 생겨날 뿐 아니라 유효정당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실험이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균열이 정당체계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기존 양당이 포괄정당(catch-all party)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은 보수와 진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가치 속에서 지역과 세대마저 어우르는 선거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생정당이 제삼지대로 뚫고 들어올 공간이 거의 없다. 진보-보수 담론이 추상적일수록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때문에, 신생정당은 제3의 가치를 만들어 유권자에게 호소하기 어려운 것이다. 둘째, 유권자들도 정부 견제 혹은 정부 지지라는 권력 기준으로 투표한다. 정당을 지지하는 60% 정도의 유권자는 정체성 투표를 한다. 한국정치에 불만이 많은 40%의 무당파 유권자들도 선거 직전에는 두 개의 정당 후보 중 한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다당제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탈당하는 방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명 인사를 중심으로 정당을 만들 수 있다. 과거 정주영 회장이 1992년 대선 때 만든 ‘통일 국민당’이나,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만든 ‘국민신당’이나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회장이 만든 ‘창조한국당’이 인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그러나 이들 정당은 대선 이후 유효정당으로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중대선거구를 도입하면 신생 정당에는 진입의 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만이 많은 유권자의 정치적 이익을 반영하는 형태의 다당제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인물이나 지역에 기초해 양당에서 분당하는 형태의 다당제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럼 그 결과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할까!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고민일 것이다. 한국정치의 개혁이 이루어지기 원하는 유권자들이 다시 실망하지 않는 제도 개혁이 되려면 좀 더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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