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페트로 달러의 위기? : 에너지 공급망 변화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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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페트로 달러의 위기? : 에너지 공급망 변화의 국제정치
  • 신희섭
  • 승인 2022.12.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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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2022년 12월 8일 중국 시진핑 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다. 빈 살만은 7월에 바이든 대통령에게 무안을 준 것과 달리 시 주석에게 최고의 국빈 대접을 했다. 시 주석은 사우디의 석유 수입 증대와 사우디의 네옴 시티 건설에 투자로 화답했다. 게다가 양국은 포괄적 동반자협정을 체결하고, 일부 사우디 석유결제를 위안화로 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번 중국과 사우디의 협력은 국제관계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페트로 달러체제에 중국이 공식적으로 도전했다. 페트로 달러체제는 1971년 미국의 고정환율제 붕괴 이후 헨리 키신저가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 왕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석유결제를 달러로만 하도록 만든 결제체제를 의미한다. 이 협약을 통해 미국은 달러를 다시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렸다.

여기서 기축 통화란 국가 간의 거래에 주로 사용되는 통화를 의미한다. 많은 국가가 자국 화폐도 기축통화가 되기를 원하지만, 기축통화가 되려면 전세계 거래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화폐량 즉 유동성이 풍부해야 한다. 또한, 화폐가 갑자기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신뢰성이 높아야 한다.

1970년대 국가들이 더 많은 석유를 소비하면 할수록 달러의 공급이 많아지면서 달러는 지금까지 국제 결제수단으로서의 패권적 지위를 차지해왔다. 그런데 이 페트로 달러체제를 중국이 흔든 것이다. 큰 틀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경제적 축을 건드린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사우디와 안보협력을 약속하면서 미국의 안보 보장자 역할에도 손을 댔다.

중국의 공세적인 외교는 사실 국제 에너지 공급망 변화에 따른 국제정치 변화를 반영한다. 페트로 달러체제는 미국도 중동 석유를 사고, 중동은 달러로 결제를 하고, 이렇게 석유를 팔아서 남긴 달러 수익을 사우디는 다시 미국 채권 등에 투자하는 교환방식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2010년대 셰일가스를 개발함에 따라 에너지 생태계가 바뀌었다. 미국이 석유와 가스의 세계 1위의 생산국이 되면서 중동 시장의 중요성은 약화되었다.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것 역시 중동국가들의 미래에는 먹구름이다.

이런 상황은 사우디에 석유가 아닌 새로운 먹거리의 필요성을 강요하고 있다. 두바이처럼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 것이다. 사우디의 네옴 시티 건설계획은 사우디의 절박함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미국과 사우디가 소원해진 사이를 중국이 파고들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과 연결해 미국의 중동 질서의 지배력을 낮추고자 한다.

신재생에너지, 5G 산업 등에서 협력을 약속하고, 석유 수입의 25%를 사가는 중국이 석유 수입량을 더 늘리겠다는 것은 사우디에 대한 강력한 구애다. 사우디는 이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자 한다. 네옴 시티 건설을 위해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빈 살만은 자신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한편 미국과 중국에 이를 과시했다.

미국의 사우디 왕가 안전보장 아래 대미 편승 외교를 헤징 외교(양다리 걸치기 외교)로 바꿈으로써 사우디는 미국을 견제하고 싶은 중국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사우디도 극단적으로 미국을 배제하고 중국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아직도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우디는 이란과 이스라엘이라는 암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페트로 달러를 대체해 페트로 위안화 체제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달러체제를 대체해서 기축통화가 되는 것은 중국경제의 완전 개방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중국공산당의 통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정치 위험을 아는 타국들이 중국 화폐의 신뢰도를 그리 높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위안화의 가치를 높이려면 중국 국채 이자율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여야 할 것이다. 과거 1980년대 미국 연준은 미국의 달러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까지 높였다. 미국보다 더 시장이 신뢰하지 않는 중국은 더 높은 유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 달러 패권을 약화하면 그만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페트로 달러체제를 깨뜨렸다. 중국 역시 이 기회를 이용해 달러를 위안화로 대체하려 한다. 게다가 중국은 꽤 전략적으로 준비해왔다. 중국은 미국이 운영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대신해 2015년 ‘위안화 국제은행 간 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s System)’을 만들었다. 또한,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에게 위안화 결제를 강요한다. 2022년 1월 기준으로 달러 결제비율인 39.9%보다 한참 못 미치는 3.2%의 위안화 결제비율이지만 차츰 사용하는 국가와 은행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은 사우디에 실질적인 안보를 제공하기 어렵다. 무기를 판매하고 기술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미국처럼 항공모함을 파견해 직접적인 안보 제공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적당한 선에서 개입할 것이다.

사우디 역시 대중국 외교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국은 왕가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해줄 수 없다. 중국 투자는 중국기업과 중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 지역에 눌러 않는 것으로 악명높다. 게다가 ‘미국을 자극하되 분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난 중동의 역사가 말한다.

공은 상대적으로 달러의 위상이 약화하고 있는 미국에 돌아갔다. 달러의 외환 준비금 비율도 낮아지고, 국제결제의 달러 비중도 작아지고 있다. 중국 GDP가 2022년 올해 미국의 8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의 도전뿐 아니라 사우디의 도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카드가 마땅치 않은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미·중 패권 대결은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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