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3)-‘악몽의 터널 그리고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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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3)-‘악몽의 터널 그리고 소망’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10.14 17: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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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악몽의 터널 그리고 소망>

코끼리(필명)

1. 악몽의 시작

오탈한 그날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온 가족이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머니는 슬피 우셨고,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밤새 아무 말도 없으셨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5년 동안 크고 작은 가정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크나큰 실패를 겪으리라고는 저희 가족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탈은 참으로 처절하고 절망적인 실패였습니다. 단순히 시험에 불합격한 것 그 이상의 실패입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변호사가 될 수 없고, 저의 꿈이 영원히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탈은 국가의 잔인한 폭력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오탈 이후에도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마음 한편에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국가는 그런 작은 여지마저도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잠재웠습니다. 다섯 번 떨어진 너는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국가의 폭력 앞에 가슴이 너무도 아렸습니다. 하지만 살아야 하기에 마냥 슬퍼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노쇠한 모습과 열악한 경제 상황을 외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장 돈을 벌어야 했고, 기나긴 터널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2. 터널 속 방황

공장 창고에서 자재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20대 후반의 상사를 모시고 온갖 궂은일을 다 하였습니다. 여름에는 하도 땀을 흘려 온몸에 땀띠가 났습니다. 뭐 하다가 그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느냐는 조롱 섞인 질문에 모욕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꾹 참아야만 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은 집에다 생활비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다가는 도저히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 밤마다 독서실에 가서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고단한 하루들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졸음과 피곤을 참아가며 지원서를 쓰고, 토익이며 컴활이며 여러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경력이 없어서 그런지 서류는 대부분 탈락이었습니다. 그나마 공기업 몇 군데에 서류가 통과되었고 필기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불합격이었습니다. 하는 것마다 다 실패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는 근사한 직업을 구하는 건 포기했습니다. 무엇인가 악착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스스로를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만 모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장을 그만두고 배달일, 식당주방 보조, 막노동, 에어컨 설치기사 보조 등 받아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며 막살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잊히기 위해 연락처를 다 지우고, SNS에서 탈퇴했습니다. 오로지 가족만이 남았습니다.

그동안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삶의 경로에 맞추어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했습니다.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이런 미래를 꿈꾸며 대학에 갔고 로스쿨도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과거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없으니만 못한 로스쿨 졸업장을 들고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저는 차라리 버리기와 내려놓기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로스쿨 졸업생도 아니고 아무 능력도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자기암시를 시작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터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어둠과 한 몸이 되어갔습니다.

3. 앞으로의 계획

제 인생은 다 끝났습니다. 아직 젊다고는 하지만 그건 생물학적인 나이일 뿐입니다. 꿈을 잃은 영혼에게 생물학적인 젊음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과거를 잊은 채 태연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봐도 쉽지 않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북녘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하냐고 핀잔을 줍니다. 다 지난 일인데 왜 아직도 그 일로 힘들어하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어른스럽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다운 모습이자, 오탈자다운 솔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에게도 한 줌의 소망이 있다면 지금 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보다 나 다운 삶을 추구하며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기왕 실패한 거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탈제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국가에 따지는 일 또한 용기 내어 해볼 생각입니다. 비록 제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시험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계획입니다. 저는 이미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더 이상 저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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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5.kr 2022-10-14 21:16:51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 노력해보아요.
평생응시금지자들의 공간이 개설되었습니다.
http://law5.kr

구르미 2022-10-14 18:04:03
잘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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