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천연가스 가격상승과 러시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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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천연가스 가격상승과 러시아의 미래
  • 신희섭
  • 승인 2022.08.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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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글로벌 공급망에 큰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에너지 시장이다. 핵심은 에너지 시장에서 ‘변덕스러운 공급자’ 러시아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다.

천연가스 가격이 최고치를 찍고 있다. 같은 에너지를 내는 것을 기준으로 휘발유와 비교하면 4배가량 비싼 가격을 찍고 있다. 미국은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2022년 들어 150% 올랐지만, 유럽은 3배 이상 뛰었다. 실제 천연가스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가정용 가스 가격이 전년 대비 13배가 뛰었다.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천연가스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있는 것은 러시아 광고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문구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난방 때문에 에너지의 계절적 수요가 겨울에 몰리는 것과 현재 부족한 천연가스 상황을 시장이 선방영해서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변덕스러운 공급자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국제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거나 공급량을 20%대로 줄이는 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시장을 교란하는 것이다.

유럽 전체적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40%대에 해당하고, 국가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다르므로, 헝가리처럼 60%를 넘는 경우들도 있고, 러시아의 분탕질이 효과를 보고 있다. 그 결과는 유럽 민간의 피해다. 독일 가정에서는 이번 겨울에 난방에 사용할 가스 요금이 1인당 130만 원을 넘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4인 가족의 경우 한 달 600만 원의 가스 요금을 내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이렇게 살인적으로 된 것은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미국과 유럽이 탄소 제로를 선언하면서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잡았지만, 아직 신재생에너지가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에너지에 의존하는 유럽의 경우는 대체에너지 개발이 사활적이지만, 미국은 에너지원이 다양하므로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약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에너지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7공주’ 같은 에너지 회사들도 대체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했다.

둘째, 유럽이 화석에너지에서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교량 역할을 하는 브릿지 에너지(bridge energy) 자원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선택한 것이다. 석유나 석탄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어 청정에너지로 불리는 천연가스로 대체에너지 전환과정을 보완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독일의 탈원전 정책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데 천연가스 공급자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대러시아 제재를 가하면서 천연가스의 대체 공급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셋째, 이상기후로 인해 냉방수요가 급증했다. 올여름 유럽이 최악의 더위를 경험하면서 전기 수요마저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넷째 문제가 끼어든 것이다. 천연가스 시장의 특성이다. 천연가스는 대체로 장기공급 계약을 한다. 한국도 천연가스의 75% 정도는 20년 정도의 장기계약으로 도입한다. 남은 분량만 단기적으로 현물 시장에서 조달한다. 그런데 유럽에서 단기적으로 천연가스를 대체하려고 해도 이미 국가별로 천연가스 계약이 되어있고, 운반선도 부족하고, 천연가스를 액화 하는 설비나 가져온 액화천연가스를 기화하는 설비장치도 부족한 것이다. 즉 정책전환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너지공급원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전환하는 데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대체에너지 부족, 천연가스 시장의 높은 러시아 의존도, 이상기후와 에너지 수요 증대, 설비투자에 필요한 시간이 겹쳐지면서 천연가스 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유럽 국가만 피폐하게 만들지 않는다. 러시아도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수출중지에 더해 새로운 수입처 확보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한 파이프라인은 운영을 안 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추정치로 러시아가 100억 불의 손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도 있을 정도다. 물론 틈새를 이용하는 중국과 인도도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에너지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유럽에 대한 에너지 수출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에너지 공급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셰일가스나 세일오일이 풍부한 미국이 러시아와 유럽 간에 벌어진 에너지 치킨 게임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르몽드지의 분석도 있었다. 정확히는 에너지, 식량, 무기 수출계약을 늘리면서 미국은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2022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의 독일 기념일에 러시아는 민간 기차역을 폭격했다. 전세계는 격분했고, 우크라이나는 복수를 다짐했고, 미국은 4조에 달하는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목적을 잃어버린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기 어렵게 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러시아의 자신만만한 무기인 천연가스가 서방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유럽 국가들에 새로운 투자가 실현될 시간이 필요하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만이 에너지 자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 다른 에너지원이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관한 결과 예상이 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천연가스와 식량을 무기로 푸틴이 전세계를 괴롭히고 있지만, 러시아에 대한 공급망 배제를 위해 미국이 에너지 생산과 식량 생산을 늘리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러시아를 에너지와 식량 공급 시장에서 배제할 수 있다면, 미국은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비민주주의 국가 중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 러시아의 국력은 천천히 쇠진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가 개념화한 ‘피 흘리기(bloodletting) 전략’이 먹힐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1979년 아프가니스탄의 기억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때 ‘RPG 로켓’을 지원해 소련 군대를 괴롭게 했던 미국이 지금은 ‘스팅어’와 ‘하이마스’라는 진일보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대칭적인 전쟁이 장기화하면 강대국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미국의 베트남에서의 10년 전쟁과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의 전쟁으로 우리는 이미 보았다.

에너지 시장의 공급망 변화라는 구조적 변화에 유럽인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 도도하고 거대한 물결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물결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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