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9)-'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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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9)-'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06.22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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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가명)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제11회 변호사시험을 끝으로 오탈자(7기)가 된 수험생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과거를 매듭짓고 다시 새로운 길로 긴 여정을 떠나기 위해 사랑샘재단의 마중물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미약하게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하던 때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제도가 공존하는 과도기였습니다. 정치적 대립과 논쟁이 심각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법조인을 꿈꾸었던 저는 둘 중 어느 길을 선뜻 선택하지 못했고, 우선 주변의 친구들을 따라 군 복무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고민하지 않고 로스쿨 도입 초기에 진학을 했더라면 지금쯤 변호사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저의 첫 번째 패착입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부터는 로스쿨 입시에만 매진했고, 지원했던 모든 학교들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로스쿨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무난했지만,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갈 무렵 갑작스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찾아왔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객지 생활이 빠듯해졌고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주변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약을 먹으면서까지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지만, 그 비용마저 감당하기가 어려워 결국 포기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2학기에는 학교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지도 모른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졸업 시험을 겨우 통과하고 첫 변호사시험을 치렀지만 당연하게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활비를 모아 어떻게든 다시 도전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수험서 몇 권 사고 나서 학원 강의를 몇 개 듣다 보면 금세 생활비가 바닥났습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우울과 무기력은 나날이 더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변호사시험의 특성상 졸업 후 학교를 떠나게 되면 학습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학원의 도움 없이는 모든 과목을 혼자 대비하기가 어려우므로 경제적으로 큰 압박을 받게 됩니다. 현역 수험생들에 비해 N시생들의 합격률이 현저히 낮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법조인의 꿈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어느 중견기업에 취업을 했고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일에 몰입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너무나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차례 이직 후에는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희망 없는 황무지와도 같았던 피폐한 삶이 꽃과 나무가 자라나는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고 나니 잊고 지냈던 꿈도 되살아났습니다. ‘나도 이제는 해낼 수 있다. 한번 해보자.’ 나름 성공적이었던 직장생활과 정든 동료들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한편, 평생응시금지제도로 인해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상당히 컸습니다. 실패의 위험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다시 한 번 변호사시험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퇴사하고 나니 단 두 번의 기회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책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됐기 때문에 현역 수험생들과 경쟁하려면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걱정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그들도 로스쿨 입시를 거쳐 선발된 인재들이고 나도 마찬가지니까.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최소한 학습능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퇴사 후 치른 첫 번째 시험에서는 일정상 민사법만 완주할 수 있었음에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다른 과목에서는 과락 수준의 점수를 받은 반면 민사법에서 고득점을 한 것이 고무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까지 1년이 남았으니 민사법처럼 다른 과목들을 열심히 공부한다면 넉넉히 합격선에 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쉬지 않고 두 번째 시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무사히 시험을 마친 날 생각했습니다. ‘이제 됐다. 합격이다.’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객관식 가채점 결과는 예상합격선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고생한 아내와 함께 합격자 발표일 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손꼽아 기다린 발표일, 합격자 명단에 저의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성적을 확인해보니 선택과목에서 과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고만 것입니다. 제가 선택했던 과목은 표준점수가 낮게 나오기로 악명이 높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예 선택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때 수강했던 기억이 있어 큰 고민 없이 선택했던 것인데, 그것이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변호사시험 수험생활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렸습니다.

발표 후 한동안 절망의 늪에 빠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다시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모든 게 힘들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던 과거와 달리 회복과 치유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눈물짓는 아내를 보고 하루라도 더 빨리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갖기로 했습니다. ‘나는 수만 가지 직업 중 변호사가 되지 못한 것일 뿐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다. 시련으로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뭐가 문제인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수험기간 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접 직역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또 다시 매일 아침 눈뜨면 독서실로 향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눈을 감습니다. 변호사 실무수습 자리를 알아보다가 다시 수험생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게 된 것이 기가 막혀 한동안 마음이 힘들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오탈자 단체대화방에서 사랑샘재단에 관한 글을 읽고 용기 내어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오탈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선뜻 지원금을 내어 준 사랑샘재단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보내주신 귀한 지원금은 새로운 꿈을 위한 마중물로 쓰겠습니다.

아울러 소외된 청년 수험생들에게 관심과 응원 보내주시는 오윤덕 이사장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저 역시 훗날 이사장님처럼 소외된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꼭 다시 일어나 희망의 증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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