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1958년 7월 북한강에서 익사하였다. 그가 보급품을 실은 군용 트럭을 몰고 북한강을 건너던 중 차가 고장이 나서 이를 수리하다가, 상류지역에 폭우가 내려 예고없이 댐이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1955년 병(兵)으로 입대하여 40개월째 복무하던 시기이다. 병적부에는 사망 당시 계급을 일병으로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입대 2년째인 1956년말 하사관반 교육 수료 후 하사로 진급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하사에서 일병이 된 것일까?
B는 1955년 1월 입대하였다. 본인은 몸이 약해 병역면제를 받았으면서도 징집영장을 받은 동생을 대신해서였다. 당시는 군대 가면 살아오기 힘들다고 하는 말조차 있던 시기였다. 그는 군복무한 지 64개월째 되던 때에 자해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사병의 복무기간은 33개월이었다. 복무기간 64개월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1954. 7. 13. 육군은 예하 독립 부대장급 이상 지휘관(주로 사단장)에게 사병 만기전역 발령권을 부여하였다. 부대의 형편에 따라 병력 운용의 여지를 부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은 남용되었다. 의무복무기간을 복무할 즈음 병사들에게 하사관후보생(Sergeant: ST)을 지원하도록 강제하여 장기복무토록 하였다. 68개월을 복무하고 전역하였다는 참고인 C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군대가 3년인데 제대를 시켜주지 않아 나는 6년을 복무했어요. 중대장이 연장복무를 한다고 해야 밥을 줬지, 연장 안 한다고 하면 밥을 안 줬어요. 나중에는 하도 배가 고파서 연장한다는 말을 하였고, 연장한다고 말을 하니까 그제서야 밥을 주더라고요. 당시 ST라는 것을 지원하라고 강요해서 강제로 장기복무를 시켰고, 그렇게 하면 한 계급을 올려 하사로 했다가 제대할 때는 강등시켜서 병장으로 제대를 시키더라고요.” 그는 현재 구순의 나이이지만 당시 중대장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부식이 나와도 중대장에게 들어가고, 그 밑에 선임하사 등에게 돌아가고 나면 병사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국은 소금국에 참 어려웠고, 행군하다가 밭에 있는 배추, 무 뽑아 먹고 부대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나온 쓰레기 뒤져서 먹고 했다. 6년간 휴가는 세 번 갔는데, 휴가를 줘도 돈이 없어 집에 갈 수가 없었다.” C보다 더 오래 복무한 이들도 있다. 왜 군은 장기복무를 강요했을까?
C는 이렇게 말했다. “근무하던 곳 부근에 약초가 많아서 중대장의 명령으로 약초를 캐서 중대장에게 주었는데 돈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제대를 시켜달라고 해도 안 시켜주고, 제대는 언제 할지 모르니까 중대장을 죽일 마음까지 먹었다”고 하였다.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참고인 D는 “부대에 돈이 없으니까 병사들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시켰고, 나는 숯공장에서 일을 했다. 높은 놈이 도둑놈이었다. 부식이 얼마 안 나오는데 그 부식을 위에서부터 가져가버리니 병사들이 먹을 게 없고, 돈을 벌어 오라고 숯공장에도 보내고, 벌목공장에도 보내고 했다.”고 진술하였다. 이처럼 당시 군은 ST 제도를 이용하여 강제적으로 장기복무를 시키면서 이를 노동력으로 돈벌이 사업을 하였다. 이른바 ‘후생사업’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에 걸쳐 군에서 벌인 후생사업의 방법은 대체로 이렇다. 군 차량을 이용한 수송업, 목재(벌목)공장 운영, 참나무껍질(굴피) 판매, 뱀장사, 금광운영, 미싱사(옷 수선), 군화 수선, 도장쟁이(월급수령용 도장을 임의로 파서 100환씩 공제), 가게(주보) 운영, 숯가마 운영, 땔나무 장작 장사, 물고기 잡이, 가설극장 운영 등이었다. 이렇게 모인 돈은 어디로 갔을까? 군이 심각하게 부패했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후생사업을 금지하라고 말하지만, 말뿐이었다. 후생사업 등 군의 부패를 유지하는 것은 강제적 연장복무였다. 숯공장이 무너져 사람이 죽기도 하였다. 전역을 기약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기복무자에게 하사 계급을 부여하고는 전역을 앞두고 다시 병장 또는 일병으로 강등하였다.
국민의 의무로서 이행하는 군복무는 강제노동이 아니라지만, 법률에 어긋나고 강제된, 급여랄 것도 없는 방식의 장기복무를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미 팔순을 넘기신 분들이다. 진상의 조사를 통한 적절한 보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계급복권도 이뤄지길 바란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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