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적공간서 합의된 동성 군인 성관계, 처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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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적공간서 합의된 동성 군인 성관계, 처벌 불가”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2.04.2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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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 "항문성교를 군형법 92조의6, 항문성교를 ‘추행’으로...” 처벌
전원합의체 “동성군인 간 성행위 처벌규정은 아냐” 무죄취지 파기환송
“군기 등 직접적·구체적 침해한 건 아니므로 현행 규정 적용 어려워...”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남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군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2019도3047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남성 군인 간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적 공간에서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군형법상 추행죄가 된다는 취지의 기존 판결(2008도2222, 2012도3980 등)을 변경한 것으로, 동성 간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추행’이 아니며, 군형법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를 받은 A 중위와 B 상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같은 부대 소속이 아닌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이 두 사람은 2016년께 근무시간이 아닌 때 영외에 있는 독신자숙소에서 서로 합의하고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군형법 92조의6(추행)으로,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동성 군인 사이의 항문성교나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상 조항에 나오는 ‘항문성교’는 ‘계간’(鷄姦·남성 간 성행위)이라는 용어를 2013년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계간’과 달리 현행 군형법의 ‘항문성교’는 “성교행위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언만으로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라며 “동성 군인 간 성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해석이 당연히 도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현행 군형법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외에도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처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현행 (군형법) 규정은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며 “다수의견은 현행 규정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2017년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수사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던 과거의 행위들이 수사 대상이 돼 군인 10여명이 기소됐다.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이번 사건의 1심은 성행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고 현행 군형법 규정이 ‘영외에서 자발적 합의로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A 중위에 대해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상사는 징역 3개월의 선고를 유예받았다. 2심 고등군사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1962년 군형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진 92조는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었다.

미국의 전시법에 나오는 ‘소도미’(sodomy·수간을 포함한 비자연적인 성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주로 남성 간 항문성교를 지칭)를 처벌한 국방경비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군대 내 남성 간 성행위 자체를 범죄화하는 조항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비판이 지속해서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2002년과 2011년,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개인이 낸 헌법소원은 이어졌고 헌재는 이 사건들을 심리 중이다.
 

[군형법

15장 강간과 추행의 죄

92(강간)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92조의2(유사강간)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92조의3(강제추행)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92조의4(준강간, 준강제추행)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사람은 제92, 92조의2 및 제92조의3의 예에 따른다.

92조의5(미수범)92, 92조의2부터 제92조의4까지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92조의6(추행) 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92조의7(강간 등 상해·치상)92조 및 제92조의2부터 제92조의5까지의 죄를 범한 사람이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92조의8(강간 등 살인·치사) 92조 및 제92조의2부터 제92조의5까지의 죄를 범한 사람이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을 살해한 때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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