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서평) 『헨리 키신저』 (강성학저, 박영사)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서평) 『헨리 키신저』 (강성학저, 박영사)
  • 신희섭
  • 승인 2022.03.11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2022년은 리더십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하는 해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내적으로는 코로나의 장기화와 물가상승으로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선거도 있다.

세상이 어렵고 복잡하면,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모든 시대가 그랬겠지만 지금 시점이 딱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에서 정확하게 맘에 드는 지도자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미·중 대립의 격화, 러시아 민족주의의 강화, 중앙아시아의 불안정 확대, 아프리카의 내전 심화, 북한의 도발 지속. 눈을 돌려 보면 국제무대는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런 시대 상황은 단순한 분쟁의 중재자를 넘어 새로 역사를 만들 사람은 없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현 상황은 ‘헨리 키신저’라는 우리 시대의 외교 영웅을 소환한다.

이 혼돈의 시기에 헨리 키신저를 조명하고 그의 리더십을 평가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다. 2022년 1월 출판된 『헨리 키신저』(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저)는 외교관이자 역사 창조적(history-creating) 인물인 키신저를 입체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저자는 이전 저서들로 링컨(2016년), 처칠(2019년), 워싱턴(2020년), 트루먼(2021년) 리더십에 이어 이번에는 헨리 키신저의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왜 미국의 대통령이나 영국의 총리란 ‘국가수반(head of state)’으로서의 리더십이 아닌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를 다루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가 ‘미국 외교정책의 대통령’이었고 ‘지구의 대통령’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는 ‘헨리 키신저의 세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키신저는 ‘국가수반’이란 지위가 아닌 데도 역사를 창조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수상’으로 불린 메테르니히와 견줄 수 있는 인물이다. 19세기 후반을 지배하고 20세기를 정초한 독일의 철혈 재상인 비스마르크와도 비견될 수 있다. 메테르니히는 제도를 통해 새로운 유럽질서를 만들었다. 비스마르크는 동맹을 통해 독일이 유럽의 중심에 서게 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국제무대의 중심에 세우면서 질서와 안정을 만들었다. 유럽 외교를 전공한 키신저는 미소 간 양극질서에서 중국을 소련 진영에서 떼어내 ‘삼각관계’를 구축하였다. 20세기에도 한 개인이 국제체제를 변화시킨 것이다.

키신저가 외교에서 ‘경이로운 마법사’였기 때문에만 리더로서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외교사를 공부한 국제정치학자로서 자신이 공부한 지식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였다는 점 역시 키신저를 다시 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가 평가했듯이 학자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 혹은 정책결정자가 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게다가 결과까지 잘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좋은 동기로 시작했지만, 국제연맹(LN)이 좌초된 우드로 윌슨을 보라!

하버드의 정치학박사인 키신저는 자신이 공부한 역사 특히 외교사를 현실에 대입하였다. 그 결과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냈고, 그 반작용으로 소련이 미국에 밀착하게 했다. 최종적으로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ABM 조약을 통해 데탕트의 최정점을 이루어냈다. 게다가 미국은 명예롭게 베트남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중동전쟁에서 왕복 외교(shuttle diplomacy)로 소련의 중동 개입을 배제하면서도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재하였다.

키신저는 ‘실천지’의 표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실천지’를 강조했다. 그의 스승인 플라톤이 지식 자체를 강조한 것과 대조된다. 키신저 역시 역사 속에서 영국 총리 캐슬레이가 강조한 ‘힘’과 함께 오스트리아 수상 메테르니히가 주안점을 둔 ‘정당성’을 현실 외교정책에 대입하였다. 그리고 배합을 성공시킴으로써 시대를 창조했다.

더욱 대단한 것은 1923년에 태어나 2022년 현재 한국 나이로 100세가 된 키신저가 몇 해 전까지도 저서를 펴내 국민의 교육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해 있는 인물에 대한 평전을 출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임에도, 저자는 ‘살아있는 전설’인 키신저의 리더십 요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첫째, 철학자-역사가로서의 ‘지적 자신감’. 둘째, 그를 현실 정치로 나가게 만든 ‘끝없는 권력 의지’. 셋째, 우호적 언론 관계를 만든 언론에 대한 ‘마에스트로’. 그리고 감동적 수사학, 협상 기술, 지적 정직성, 행운이 그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키신저라는 인물의 개인적 역사와 함께 그가 어떤 상황에서 현란하게 역사를 만들어갔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해 이 책의 분량은 압도적이다. 이 부분은 같은 국제정치학자로서 저자의 키신저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을 강조하는 저자의 학풍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33년을 학문에 전념하면서 제자 양성에 바친 저자와 학교보다는 현실 정치에 무게를 둔 키신저의 학문적 입장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만큼이나 다르다. 그런데도 역사와 철학을 대하는 겸허한 자세라는 공통분모가 키신저 설명에 시간과 공을 더욱 들인 듯하다. 그만큼 키신저는 살아있는 전설로서 교육적 가치가 높다.

만약 현실 정치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헨리 키신저』를 일독해보길 권한다. 두툼한 책 안에서 한편으론 ‘지식과 정치’ 그리고 ‘권력과 정당성’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한 사람의 지적 탁월함에 감명받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현실 정치의 개선이 어렵더라도, 우선 지식은 즐거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