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1-캥거루족에 대한 부양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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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1-캥거루족에 대한 부양의무
  • 손호영
  • 승인 2021.12.2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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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우리 속담 중 ‘자식을 키우는 데 오만 자루의 품이 든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낳아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부모가 쏟아야 할 공력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 큰 자식이 그 공력이 충분하지 못했다며 소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오만 자루 품’이 든다는데 만 자루 정도 부족하니 늦게라도 달라고 하면 말이다. 처한 상황이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만약 아들이 유학비 달라고 소송 제기하면?, 2017. 9. 12.자 아시아경제>

부부는 자녀 둘을 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첫째 아이의 유학비는 모두 지원했지만, 둘째 아이의 유학은 반대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갈등을 겪고 있던 중이었고, 이내 별거하기 시작한 뒤,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소송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중학생 신분이었던 둘째 아이는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출국하여 유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의 유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곧 아버지를 상대로 부양료 청구의 소를 제기합니다. 법원은 둘째 아이의 양육자로 어머니를 지정한 뒤, 과거 양육비와 장래 양육비 지급을 하라는 심판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미국의 명문 대학에 진학했는데, 반기별로 약 3,600만 원의 학비와 기숙사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상대로 이혼 등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둘째 아이는 아버지를 상대로 학비와 기숙사비에 해당하는 부양료를 지급하라는 이 사건 청구를 합니다.

둘째 아이는 갓 성년이 된 상태였습니다. 1심은 둘째 아이가 성년이 된 것을 고려하여, ‘부모와 성년의 자녀 사이에 민법 제974조 제1호, 제975조에 따라 부담하는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가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부양을 받을 자가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차 부양의무이다.’고 하며, 둘째 아이가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심도 1심의 판단을 유지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안과 개업의고 생활에 여유가 있고, 둘째 아이는 학교에 다닌다 하더라도, 둘째 아이의 나이 및 건강상태, 학력, 청구인이 구하는 부양료의 내용과 액수 등을 고려하면, 그가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은 것입니다.

대법원(2017스5 결정)도 마찬가지로 판단합니다. “자녀는 요부양상태, 즉 객관적으로 보아 생활비 수요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충당할 수 없는 곤궁한 상태인 경우에 한하여, 부모를 상대로 그 부모가 부양할 수 있을 한도 내에서 생활부조로서 생활필요비에 해당하는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나아가 이러한 부양료는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정도와 부양의무자의 자력 기타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부양을 받을 자의 통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범위로 한정됨이 원칙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상적인 생활필요비라고 보기 어려운 유학비용의 충당을 위해 성년의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부양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성인으로서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이들을 ‘캥거루족’이라고 합니다. 캥거루족의 문제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함으로써 부모의 경제적 자립능력도 취약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캥거루족은 약 313만 명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2020년) 18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부모들은 성년이 된 자녀를 재정적으로 부양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시간제 음악 강사로 일하는 35세 남성이 2만 유로(약 2,800만원) 상당의 연봉으로는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한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이탈리아에서는 부모에게 얹혀사는 30~40대를 일컫는 ‘밤보치오니’(bamboccioni·큰 아기)라는 명칭이 등장할 만큼 만연한 캥거루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호주에서도 코로나19의 여파로 부모에 얹혀사는 성인 자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내기도 벅차다...코로나 사태에 전 세계 캥거루족 골머리, 2020. 8. 20.자 서울경제>

대법원 결정은 이탈리아 법원의 판단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성년이 된 사람은 부모에게 자신을 부양하라는 의무를 요구할 수 없다. 물론 이에 대해서 비판도 있습니다. 단지 성년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달리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고도산업 사회에서 더욱 높은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시대에, 학비를 요구하는 자녀의 요청을 단지 그가 성년에 달하였다는 것만으로 부모의 부양의무를 부인하는 것은 부당하며,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비판도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 자녀의 문제는 해당 가정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므로, 깊은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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