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본(本)과 말(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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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본(本)과 말(末)
  • 송기춘
  • 승인 2021.10.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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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새터민’이라는 용어가 있다. 아마도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여기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사람들을 일컫는 뜻으로 만들었겠지만, 이 단어는 그렇게 넓은 의미로 쓰이지 않고 오로지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 지역에 자리잡은 사람들만을 부르는 말이 되었다. 전적으로 남한 중심적인 ‘귀순’ 또는 ‘탈북’민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문제를 조금은 시정한다고 하여 많이들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새터민’ 본인들은 그렇게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용어도 귀순이나 탈북처럼 남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라는데 어느 누군들 지금 사는 곳이 새로운 터전이 아닐까. 여기에 머무른 시간의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독 북한에서 살다 남한에 자리잡은 사람들만을 ‘새터’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차별적이다. 본래 차별적인 대우나 시선이 있으면 이것을 정면으로 풀어야지 용어를 바꾸는 등의 겉포장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차별의 현실이 있으면 어떠한 그럴 듯한 용어를 사용한다 해도 차별적인 용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말(末)로 본(本)을 바꾸기는 어렵다.

올해 초 공군에서 발생한 이예은 중사의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군 제도개혁을 위해 구성된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정리되고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병과 장교의 두발 길이나 전투화 모양에 차이를 없애고 식사의 질 개선을 위한 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이러한 방안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있으나 매우 피상적인 것에 머무르고 뭔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인 것도 있다고 보인다. 병사의 계급을 조금 단순화한다는데, 이게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된다. 이등병 정도 없앤다고 하여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병사들끼리의 관계에서는 같은 계급이라도 입대 월별 또는 훈련 기수별로 서열을 정하기도 하여 생활하는데 말이다. 아마 한 계급으로 통일한다고 해도 서열을 정하는 것을 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계급이 다양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로써 불합리한 행위가 자행되고 이것이 규제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군이 가지는 사회적 또는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폐쇄성과 기밀주의적 경향, 구타와 가혹행위가 변환된 언어 사용과 관계 형성과 유지의 폭력성,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현상, 인권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부족, 귀족제도에 바탕을 둔 병과 장교의 이원적 계급제도 등의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군의 폐쇄성이나 기밀주의의 반영인 군사법원 제도에 대한 합동위원회의 논의 중에 군사법원의 관할을 축소하고 군사법원의 구성방법을 일부 바꾸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군이 진심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과 내용으로 개혁을 하려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군인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인 군사법원의 군판사를 민주적 정당성도 취약한 국방부장관이 임명하는 것은 아직도 군사법원을 제대로 된 사법기관으로 구성하겠다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기관에서 사법기관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독립성을 견지하기란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법기관의 구성방법으로서는 헌법 위반의 소지가 크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면, 군은 이중사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군에 대한 국민의 개혁요구를 진정으로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잠재해 있는 또는 감춰진 인권침해 사안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 그토록 잔인한 일이 벌어질 동안 아무 것도 몰랐던 군 당국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당장 사관학교나 부사관학교 그리고 군인을 양성하는 기관(학군단이나 고등학교)에서부터 만들고자 하는 군의 모습을 갖도록 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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