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35)-선배 C변호사에게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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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35)-선배 C변호사에게서 배운 것
  • 박준연
  • 승인 2021.10.0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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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C변호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 회사에 입사하여 도쿄로 오기 전 뉴욕의 지금 회사 오피스에서 면접을 볼 때였다. 변호사 두 명과 면접을 보고 있는데 다음 차례 시간이 가까워져 C변호사가 오자 그 두 변호사가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기에 그때 막연하게 C변호사는 높은(?) 사람이구나 하고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해보니 C변호사는 농담도 잘 통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도쿄에 와서 C변호사와 일을 할 기회가 많아졌다. 원래부터 C는 미국과 도쿄, 홍콩 등을 오가며 일을 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C는 주된 거점을 아예 홍콩으로 옮겨서 미국을 오가면서 아시아 관련 업무를 중점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러 늘 업무를 함께 하며 지도와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던 C변호사도 은퇴를 하게 되었다. 며칠 전 간만에, 이제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C변호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새삼스럽지만 C에게서 배운 것을, 내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에서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을 즐기며 또 열심히 할 것

C가 도쿄에 출장을 와서 며칠 같은 오피스에서 보내면서 C의 일상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알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서류를 들여다보거나 전화회의를 하고 낮시간에는 클라이언트 미팅이나 다른 회의를 하고, 끝나면 또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길게 하는 것도 일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도쿄에 오면 혼자서 전차 선로 아래의 라면집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C도 “생맥 하나 주세요”는 일본어로 할 수 있었다. 라면에 맥주를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C의 하루이다. 이렇게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단조로운 일과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

그렇게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지 이것을 해야 하니 의무감으로 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올 때까지, 의문점이 해소될 때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내부조사를 하면 관련 이메일이나 내부 문서를 바탕으로 회사 임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는데 그때마다 C는 관련 서류를 들여다보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우리말이나 일본어를 읽지 못하므로 주로 번역된 서류를 검토하는데 그때마다 이 단어는 다른 번역이 가능한지 질문을 하는 일도 많았다. 읽지 못하는 우리말, 일본어, 중국어 서류를 한참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본인이 설명하길 읽지는 못해도 문서의 형식이나 “모양”을 들여다보면서 클라이언트에게 유리한 부분, 불리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는지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작년 C변호사가 은퇴하기 직전에 걱정되는 증인 인터뷰를 어떻게 준비할지 상담한 적이 있었다. 내용도 민감한 데다가 질문을 할 증인도 꽤 시니어인 중역이어서, 클라이언트 회사의 법무팀에서는 여러 변호사가 질문을 하기 보다는 나 혼자서 인터뷰를 주도하길 원했고 그래서 특히 부담이 컸다. C변호사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자기의 경우 그런 경우 회의 세팅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하며 회의실에서 어떤 자리 배치로 앉아 관련 서류는 어떻게 보여주며 질문을 하는 게 좋을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C같은 베테랑 변호사도 얼핏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까지 고민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겸손할 것, 특히 클라이언트에게 겸손할 것

C는 클라이언트와 인터뷰든 회의든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먼저 인사하고 마실 것을 물어보고 점심시간이 되면 음식을 챙겼다. C뿐 아니라 회사 선배들은 거의 다들 이렇게 행동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회사 변호사들과 회의를 하면 꼭 다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또 클라이언트 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존경을 담아, 회사와 열심히 일하는 회사의 구성원을 돕는 것에 진심으로 보람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이런 태도가 변호사에게 기대되는 핵심적인 가치는 물론 아니지만 또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결국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C와 함께 여러 안건을 담당했다고 하면 C를 아는 동료들은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 실제로 C와 함께 일하면서 주말을 포함해서 밤낮없이 일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건 C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라기 보다 실제로 급하게 돌아가는 일이 많아서였다. 자신은 늘 주말에 일하면서 메일을 보내면서도 주말 끝나고 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일이 바빠지면 다른 팀 멤버들의 워라밸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C변호사는 팀에서 가장 시니어인 변호사로서 그 부분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좋은 팀플레이어가 될 것

C변호사는 같이 일하는 후배직원들을 “우리 애들”이라 불렀는데 이는 말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고민을 들어주고 솔직한 자기 생각을 나누고, 또 직접 도와줄 수 있는 경우에는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덕목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C를 보면서 최소한 내가 일하면서 도움을 받은 동료들에게는 의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날그날의 일상에 쫓기다 보면 단지 그날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벅찰 때가 많지만, 최소한 그런 하루하루가 누적되어 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근처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선배의 존재이다. 나도 언젠가는 잘못된 부분보다 배울 부분이 많은 선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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