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헌적 군기(立憲的 軍紀)에 대하여
상태바
[칼럼] 입헌적 군기(立憲的 軍紀)에 대하여
  • 송기춘
  • 승인 2021.08.27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주어나 목적어가 필요한 단어인데도 그저 동사 한 단어만으로도 그 의미가 통하는 경우가 있다. ‘빠졌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밑도 끝도 없이 ‘빠졌다’고 하는데도 그 뜻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특히 군복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련하지만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추억(?)과 함께 단어의 뜻이 다가온다. “요새 빠졌어.” 또는 “빠져가지고......” 등의 문장은 항상 육체와 정신의 고단함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이들 문장에서 생략된 주어는 ‘군기(軍紀)’이다. 도대체 군기가 뭐길래, 우리는 그렇게 힘들게 군대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일까?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 시행령 제2조에서는 군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군기는 군대의 기율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목적은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일정한 방침에 일률적으로 따르게 하여 전투력을 보존·발휘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군대는 항상 엄정한 군기를 세워야 한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 준수와 복종이다. 따라서 군인은 정성을 다하여 상관에게 복종하고 법규와 명령을 지키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군인의 기본정신은 군기, 사기, 단결과 교육훈련이라고 하고 있다. 군대의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기율 확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 준수와 복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내무생활에서 병사들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서 이뤄지는 ‘군기 확립’이라는 말은 이미 낡은 것이다.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필요한 질서는 기본적으로 군기라는 말로 포섭할 내용은 아니다. 물론 용모나 언행, 휴대전화의 사용이나 생활관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규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 군대생활에서 ‘군기’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진 내무반에서의 질서유지는 군기의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군기 잡는다며 하는 짓들이 군기를 해친다. 군인의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군기라면, 군기 때문에 군대 생활이 더 힘들어질 일도 아닐 것이다.

군기의 핵심은 법규와 명령의 준수와 복종이라고 한다. 준수할 법규와 명령은 궁극적으로는 헌법에 합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외적의 침범으로부터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투철하고 국가가 보호하고자 하는 인권을 보장하는 데 충실하여야 한다. 지휘권자 또는 명령권자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고 이를 따르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권한을 남용하고 차별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권한 범위를 넘는 명령은 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힘의 우열관계에서 벌어지는 차별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법규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강한 군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방식의 군기 확립을 옹호해서도 안 된다. 부당한 명령에 따르는 것이 자발적이지도 않거니와 언젠가는 큰 사고로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군기의 이름으로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 상관이라는 이유로 하급자의 신고나 불만제기를 무마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오히려 군기를 해친다.

요즘 육·해·공군 할 것 없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근무조건 악화 또는 승진을 내세워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잦다. 성폭력은 직위 또는 계급을 빌미로 하는 폭력행위이며, 인격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간다. 공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촉발되어 국방부가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혁 논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지나친 개혁은 군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반론이 등장한다. 아직도 인권보장을 위한 개혁이 군기를 해치고 지휘권을 위태롭게 한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아연할 따름이다. 지휘관의 명령이 최고가 아니다. 군의 지휘관도 따라야 하는 지상의 명령은 헌법규범이다. 그것은 군대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군대, 그리고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군 지휘관의 명령이 준수되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 강한 군기를 만든다. 그것이 입헌적 군기이다. 군사법원이나 군 수사기관의 개혁 주장은 군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