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파나마 운하와 군대 없는 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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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파나마 운하와 군대 없는 파나마
  • 신희섭
  • 승인 2021.08.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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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세계 물동량의 3~5%를 차지하고, 매년 13,000척에서 14,000척의 대형선박이 이용하는 운하를 가진 국가가 자신을 방어할 군대가 없다면 믿어지는가! 운하 통과를 위한 국제규격까지 만들어진 운하를 다른 국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파나마 운하를 가진 파나마 이야기다.

파나마 운하는 지정학(geopolitics)과 지경학(geoeconomics)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급소 지정학 관점에서 첫 번째로 다룰 주제는 파나마 운하다.

파나마는 북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코스타리카가 동쪽으로는 남미 대륙의 콜롬비아가 있다. 남쪽으로는 태평양이 있고 북으로는 카리브해를 거쳐 대서양과 연결된다.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한 위치 탓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악지대가 태평양 쪽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4백만 명 정도고, 면적은 남한의 75% 정도다. 원래 콜롬비아에 속해있다가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가가 되었다.

‘파나마’ 하면 떠오르는 파나마 운하는 1914년 8월, 1차 대전 발발한 이후 개통되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는 현재 파나마 정부에 연간 20억 불 이상의 통행료 수익을 보장해준다. 수에즈운하와 세계 물류의 양대산맥이다.

운하를 만들 때 고생을 많이 한 미국은 운하 내의 카툰(Gatun lake)호수의 해발높이 26m에 맞추는 방식으로 갑문방식의 운하를 건설했다.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 3개의 갑문을 이용해 배를 들어 올리거나 내려서 운하를 통과하게 만든 것이다. 예전보다 배들이 커지다 보니 2007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확장공사를 결정하였고, 2016년 6월 확장공사를 완공하였다.

폭 33.53m 길이 304.8m의 기존 갑문은 폭 49m 길이 366m로 확장되었다. 확장공사 덕에 2배가량 큰 배들이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6m 길이의 컨테이너 5천 개 수송 선박에서 1만 3천 개 수송 선박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벌크선 기준으로는 8만 톤에서 17만 톤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초대형 LNG 선박의 대부분(전 세계 583척 중 566척이 통과 가능)이 운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파나마 운하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시간과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만약 뉴욕에서 부산까지 수에즈운하 경로(인도양을 지난 믈라카 해협을 거침)를 이용하거나 혹은 희망봉 경로를 이용하면 45일이 넘게 걸린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는 35일 정도, 더 짧게는 25일 정도로 시간을 단축해준다. 파나마 운하 건설 전 미국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배로 가려면 남미를 돌아야 하고, 이때 거리는 20,900km나 되었다. 파나마 운하 이용 시 8,370km로 그 거리가 줄어든다. 시간이 줄면 비용도 줄어든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시간을 단축해 보려는 시도는 1500년대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스페인도 해보았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불가능했다. 이후 프랑스가 운하 건설을 시도했다. 1869년 180km가 넘는 수에즈운하를 뚫은 프랑스의 리셉스는 81km에 불과한 파나마를 만만하게 보고 1881년 도전했지만 1890년 포기했다. 태평양 연안의 화강암 산악지대가 방해했고, 9년간 2만 1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모기와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두손 두발 들게 했다. 결국, 수에즈운하는 프랑스의 공사권을 사들인 미국에 의해 완성된다.

파나마 운하 건설은 지리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정치와 관련해서.

미국은 1849년 서부 황금시대를 개척하였다. 기회의 땅이자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때 미국 동부에서 캘리포니아를 가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 파나마의 대서양 쪽 ‘콜론’에서 차그리스 강을 지난 뒤 태평양의 ‘파나마시티’로 가서 미국 서부까지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1855년 파나마에 철도를 놓기도 했다. 잠시 니카라과가 파나마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니카라과의 화산폭발로 기회는 다시 파나마로 오게 된다.

1860년대 미국은 남북전쟁을 끝내고, 1890년대 2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수혜를 보며 강대국이 된다. 또한,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쿠바와 필리핀과 괌을 식민지로 확보하여 제국이 되었다. 태평양의 괌이나 아시아의 필리핀과 카리브해의 쿠바를 동시에 보호하려면 해군으로서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연결에 사활을 걸게 된다.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 제독이 파나마 운하 건설을 제안할 정도였다.

당시 파나마가 콜롬비아에 속해있던 상황에서 미국은 4천만 불을 내고 프랑스에서 파나마 운하 공사권을 사 왔다. 하지만 콜롬비아 의회는 미국의 개입을 꺼렸기에, 미국이 공사하는 것을 거부했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니었다. 미국은 콜롬비아에 불만이 많았던 파나마 지역 거주자들을 자극했고, 자국 해군을 동원해 1903년 11월 5일 파나마 공화국을 독립시켰다. 미국은 운하를 만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다. 일명 플렉스!

파나마 운하는 1차 대전 시기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해 미국의 전쟁 수행능력을 키워주었다. 진주만 공격 이후에도 미국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전쟁을 치를 수 있게 했다. 냉전 시기 전 세계 바다를 통제하는 데도 파나마 운하는 중요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두 대양의 연결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는 미군이 보호했다. 그런 파마나에서 독재자 노리에가 장군이 등장해 반미 노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자 미국은 1989년 12월 20일 마약밀수를 명분으로 미군 2만 4천 명을 보내 파나마를 침공했다. 1만 6천 명에 불과한 파나마군은 미국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고, 결국 노리에가도 미국에 투항하였다. 이후 파나마는 자국의 군대를 없앴고, 현재까지 공공경찰만을 두고 있다. 그리고 운하는 여전히 미군이 보호하고 있다.

중남미를 이해하려면 먼로독트린을 알아야 한다. 먼로독트린은 유럽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주의 정책을 의미한다. 반면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현재도 유효한 이 전략에 기초해 볼 때 파나마 운하는 미 해군의 기동뿐 아니라 이 지역통제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2012년 중국의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 회사가 니카라과 정부와 278km에 달하는 니카라과 운하 건설을 합의하였다. 반미주의자인 니카라과의 오르테가 대통령이 중국을 끌어들여서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2013년 니카라과 의회는 중국 HKND의 개발을 승인했고, 운하 개통 후 100년간 운영권을 넘겨주기로 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22일 착공식 이후 운하 개발은 백지화되었다. HKND의 실제 소유주인 ‘신웨이’사의 왕징회장이 중국 증시폭락으로 자산을 읽고, 2018년에는 HKND의 홍콩 본사를 폐쇄한 것이다. 즉 사업 주체가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니카라과 운하는 착공도 하지 못한 채 사업은 물거품이 되었다.

파나마 운하를 대신해 니카라과 운하를 이용해 라틴 아메리카에 접근하려는 중국의 계획도 함께 증발했다. 반미계열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에너지에 접근하는 계획도 수포가 되었다. 만약 중국계 회사가 운하 건설에 성공했다고 해도, 미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나마 운하와 중남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은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

파나마 운하는 운하와 해협이라는 급소 지역 중에서도 요지다. 또한, 지리가 중요하나 국력이 모자란 국가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도 알려준다. 파나마 운하는 만들어질 때도 그리고 현재도 권력정치(power politics)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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