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삼모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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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삼모사의 지혜
  • 송기춘
  • 승인 2021.01.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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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완전히 달리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고개에서 구르면 3년‘밖에’ 못 산다는 삼년고개 이야기는 100번을 굴러 천수를 누렸다는 이야기로 변모한다. 성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던 때에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탑을 쌓자, 야훼께서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는 이야기다. 흔히 창세기 첫머리의 천지창조로 시작하여 바벨탑 이야기는 심판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바벨탑 이야기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그 탑을 쌓으려고 사람들을 동원하고 일사불란하게 공사를 하던 자들에게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은 분명히 심판의 의미가 되겠지만, 집과 가족을 떠나 공사장에서 자신들과는 별 상관도 없는 공사에 동원된 이들에게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흩어진 것은 자기의 집과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결과였을 것이니 이 이야기는 심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축복의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단어의 뜻도 마찬가지이다. 국립국어원의 뜻풀이에 의하면, 조삼모사란 “「명사」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 중국 송나라의 저공(狙公)의 고사로,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우리도 흔히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가 유래한 열자(列子)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이렇다. “송나라에 원숭이를 좋아하는 저공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무리지을 정도로 많은 원숭이를 길렀고 능히 원숭이들의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원숭이들도 또한 그의 마음을 알았다. 살림을 줄여가며 원숭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먹이가 떨어질 것으로 보이자 원숭이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여 먼저 속여서(?) 말하였다.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면 족하겠느냐? 원숭이들이 모두 일어나 화를 내었다. 저공이 말을 바꾸었다. 너희들에게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면 족하겠느냐? 원숭이들이 머리를 숙이고 기뻐하였다(伏而喜).”

조삼모사에 관한 고사는 저공이 간사한 꾀로 원숭이를 속이는 이야기로 읽힌다. 이야기의 내용을 보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저공은 원숭이들을 사랑하고 심지어 그 마음까지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살림까지 팔아 원숭이들을 먹일 정도였고 더 이상 풍족한 먹이를 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먹이를 줄이고자 그렇게 한 것임을 생각하면 저공의 행위를 그저 속임수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대개의 속임수는 속이는 자가 상대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저공의 지혜로운 이야기로 읽힌다. 먹이 살 돈이 없어 원숭이들에게 먹이 줄이는 일이야 기르는 사람이 그냥 줄이면 되는 일인데 그걸 굳이 원숭이들에게 물어서 결정하는 것은 원숭이들을 정말 아끼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이로써 저공이 이익을 취하는 바도 없었다. 적어도 저공은 진심을 가지고 원숭이들의 의견을 묻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하였다.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떠한 권한을 행사할지를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주고 그의 의견을 듣는 것은 적법절차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모든 공권력 행사에서 지켜야 할 헌법상 원칙이기도 하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살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불편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규제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조삼모사도 저공이 그러한 신뢰를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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