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점진적 변화와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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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점진적 변화와 적응
  • 신희섭
  • 승인 2020.10.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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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편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2020년 들어와 몇 가지 변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이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가족 전체적으로는 부모님께서 차례를 더는 지내지 않으시기로 하였다. 차례를 안 지내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50년 이상 차례를 지내오신 부모님께서 이제는 차례를 지내지 말자는 의견을 받아들이셨다는 점이다. 나 자신도 으레 나이가 더 들게 되면 제사와 차례를 물려받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대에서 끝을 내시겠다고 결정하셨다. 그래서 2020년 구정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차례는 가족 차원에선 큰일이다. 갑자기 안 하려니 서운하고 낯설 뿐 아니라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왠지 도덕적으로 불편하기도 하다.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고 절을 하고 음복을 하던 그 오랜 관습에 더해 긴 시간을 지배해온 ‘관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차례를 포함한 모든 제도는 그 제도를 구성한 시대적 가치와 관념을 담기 마련이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차례 폐지’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과거 정신과 가치를 ‘봉건’이나 ‘구태’로 몰아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와 ‘적응’이다.

지내지 않게 된 차례를 대신해 부모님과 짧은 여행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이번 추석은 그렇게 결정하고 맞이하는 두 번째 명절이었다. 지난 반세기 이상을 차례상을 차리신 어머님은 처음 차례를 안 지낸 지난 구정 때는 좀 어색했지만, 이번에는 좀 덜 어색하시다고 한다. 과거 어머니는 명절 전날 저녁까지 일하고 돌아오셔서 가난한 집안의 옹색한 부엌에서 조상님들께 한 해를 무사히 넘기게 해달라는 바람으로 새벽까지 음식을 만드셨다.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셨는지 어머니는 “이제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죄송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다”라고 하셨다. 아마 몇 해 정도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차례를 지냈던 것도 마치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빠르게 지워지며, 힘들었던 기억도 추억에 자리를 넘겨줄 테니 말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명절 당일 식당이다. 밖에서 식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전에는 명절 당일에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식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명절을 부모님 댁과 처가를 오갈 때는 당일 밖에서 식사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을 좀 편히 해드리자는 차원에서 식사도 밖에서 하기로 하니 식당을 찾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이번 명절 밖에서 식사해본 분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음식점이 명절 당일에 영업한다. 명절 아침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이른 시간부터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법 많은 식당이 손님 맞을 준비로 바빴다. 게다가 명절 당일 찾는 손님들도 꽤 된다. 코로나 19로 밖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도, 명절에 가족끼리 밥 한 끼 먹기 위해 마스크로 꽁꽁 무장하고 식당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가족 식사를 위해 다녀온 음식점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몇 달 전에 예약해둔 뷔페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상차림 메뉴로 바뀌어 나왔다. 상차림 메뉴는 정갈하고 우아하게 차려져 있었고 종류와 양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뷔페의 생명이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먹는 것 아닌가! 코로나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좀 안타까웠다.

예약하기도 어려웠던 또 다른 음식점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명절 영업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 유명한 이 집은 손님으로 만석이었다. 그런데 식당은 온통 비린내 천지였다. 컵에는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있고 그 위를 비린내가 덮고 있었다. 급히 먹고 비린내를 피해서 도망치듯이 나왔다. 제법 비용을 치렀는데, 본전 생각이 났다. 다음 날 간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오픈하여 추석 장사를 처음 해본다는 이 식당은 꼭 주방장이 휴가를 가고 다른 사람이 조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식당 불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추석 명절에 식당을 찾아갈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식당뿐 아니라 많은 식당이 명절 당일 점심에 영업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인 추석이라는 관행이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명절 스트레스, 차례 스트레스, 귀성과 귀경 스트레스들이 기저에 깔려 있던 차에 ‘코로나 사태’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기폭제 역할을 하여 확대된 것은 틀림없다.

명절 당일에 식사하려면 호텔이나 가야 했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추석을 보내는 방법들이 달라지면서 많은 가게가 명절 당일에도 영업한다. 명절 당일 밖에서 식사하려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일 영업을 하는 주인들과 종업원들도 늘고 있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다 보면 몇 해 뒤엔 명절 당일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사회적 ‘변화’로 인해 손님이나 가게 모두 조금씩 ‘적응’해갈 것이다. 경쟁이 강화되면 업체들은 좀 더 청결해질 것이고, 평상시처럼 제대로 음식을 준비해줄 것이다. ‘변화’와 ‘적응.’ 이것이 이번 추석에 가족과 사회에서 본 것이다. 다음 명절에는 어떨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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