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72)-시중은거(市中隱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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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72)-시중은거(市中隱居)
  • 강신업
  • 승인 2020.07.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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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당나라 시인 이백은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별천지일세, 인간 세상 아니네(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필자는 요즘 가능한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삶을 살려 한다. 세상을 떠나 자연을 벗 삼고 세월을 관조하는 산중은거(山中隱居)의 삶은 그 최고의 경지다. 그러나 필자는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을 감히 탐할 수 없어 다만 시중은거(市中隱居)를 택했다.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사무실에서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하며, 2천 년을 거슬러 올라 사마천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백을 찾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배우고 로마로 건너가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전쟁터의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와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분주히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공간을 가로지르다 보면 주머니에 동전을 셀 시간도, 미추(美醜)를 가릴 시간도, 세상사에 일희일비할 여가도 없다. 왁자지껄 술 마시며 의미 없는 이런 저런 말을 지껄이는 삶에 대한 흥미를 잃은 지도 오래다.

사실 현대인들이 불행한 것은 결핍 때문이 아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삶,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방출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삶은 방전을 피할 수 없다. 밖을 지향하는 삶은 안의 결핍을 부르기 마련이다. 인간 행복의 근원인 가정을 등한시 한 채 외부를 지향하는 삶은 가정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하고, 가족과의 오프라인 교류는 차단한 채 온라인상의 아무개와의 소통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붇는 신인류 ‘휴대폰 족’의 삶은 그래서 너무도 비극적이다.

시중은거란 도시 속에 살되 가능한 사람을 적게 만나고 가능한 적게 말하고 가능한 적게 발산하는 삶이다. 수렴의 시간을 갖는 삶이다. 그것은 그냥 휴지의 시간이다. 딱히 무엇을 준비하는 시간도 아니다. 거창한 계획 아래 쓸개를 맛보며 원수를 생각하고 가시덤불 위에서 잠을 자는 삶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사는 이유가 시간을 존속하게 함도 아니요, 이 광대한 우주를 떠받치기 위함도 아니라면 지나치게 엄숙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요즘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사실 할 수만 있다면 휴대폰을 내던져 버리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멈추고, 물러서고, 비우고, 내려놓는 삶은 분명 행복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둘러 앉아 밤하늘에 무수한 별을 올려다보며 옥수수와 감자를 먹을 때 느꼈던 그 수수한 행복은 단순한 삶이기에 가능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일단 버리고 비우고 침묵 속으로 침잠해야 한다. 우리는 그 때 비로소 우리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수천 년, 수만 년을 거꾸로 면면히 흘러 우주의 시작점에 닿는 걸 느끼며 진정한 자유와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도심처사(都心處士)를 자처하는 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욕구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지금 우리가 ‘정의 없는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의와 불의가 역도된 나라다. 따라서 이 시대, 이 나라에서 부자가 아니라는 것,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은 하등 부끄러울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진정 학문을 좋아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인사라면 불의가 판치는 이 나라에서 벼슬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은거하는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부끄러운 나라를 떠나는 방법으로 시중은거를 택한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생을 바쳐 학문을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실천을 중시한다. 망하려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정의가 행해지는 나라에 살면서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불의가 통하는 나라에서 부자라든지 지위가 높다든지 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논어, ‘태백(泰伯)’편>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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