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8-14 16:26 (금)
[칼럼] 공감...인권의 확장
상태바
[칼럼] 공감...인권의 확장
  • 최용성
  • 승인 2020.07.03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성현들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삶에는 늘 괴로움이 따른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편하게 살라고 지구가 생긴 것도 아닐 터이니 말이다. 몸을 타고난 이상 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넘어, 고상하게 표현하면 ‘만물의 영장’,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생존조건을 확보해냈다. 19세기 이후부터는 의료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 덕분에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고(오히려 인간 수명이 줄어들었다는 소수 주장도 있기는 하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다. 사람은 더는 맹수를 피하여 몸을 떨던 가여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몸에 유전된 원시인의 습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욕망을 충분히 채우고도 끊임없이 생존을 불안해하고 나(우리) 아닌 타자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의심한다. 종족 번식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힘을 추구하고 먹이를 더 많이 확보하려던 원시인의 욕망과 공포는 권력(또는 명예)과 부(富)를 경쟁적으로 추구하게 만드는 제도와 그것을 내면화시킨 현대인의 마음속에 변용되어 살아남았다.

우리는 원시인처럼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존재, 즉 경쟁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라고 부추기는 제도 속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이를 당연시하며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사람의 본성이 그런 것이니 결국 세상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적어도 세계사를 돌아보면, 아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둘러보면 과연 이것이 사람이 고루 잘 사는 유일한 길인지 강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민족, 종족, 국가, 종교, 이념 기타 등등 별 희한한 이유를 갖다 붙여 서로를 죽이거나, 공동체의 희생양을 정하여 서슴지 않고 집단적인 가해를 하거나(요즘은 언론매체나 SNS에서 가장 잘하는 짓이다), 단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굶주림으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멀쩡한 식량을 버리거나, 세상의 부(富)를 극소수 사람들이 독점하여 다수의 고통을 외면하는 식의 해괴한 짓이 반복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들이 불가피하다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인간 본성에 충실하여 당연하다고 옹호하거나 수용하였던 제도와 사고를 밑바닥부터 붕괴시키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확대하여온 개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탐욕적이며 타자를 지배하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대결하여 온 과정이 인권의 역사이다. 달리 말해 타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희생하고 양보할 줄도 아는 인간 본성의 밝은 면을 세상에 관철하기 위한 투쟁이 인권사를 이룬다. 우리 편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 같은 극단적인 전쟁 과정에서도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의 과도한 집중을 비판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는 부를 취득한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부의 집중이야말로 다수의 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바꾸려는 이유는 신분의 불안정성과 그에 따른 왜곡된 처우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헌법이나 헌법 교과서를 읽으며 인권 개념은 이미 다 정리된 고정 개념이고, 현실에서 구체적 침해가 있을 때야 구제절차를 통하여 원용하는 개념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일 경우 동물의 권리를 내세워 세상을 바꾸려고 할 정도로 인권 개념은 이미 헌법 조문과 인간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인권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우리의 능력과 상상력이 높아질수록 인권은 무한정 확장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분기점에 이를 때 인류는 원시인의 공포와 욕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