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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댓글과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두려운 좀비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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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댓글과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두려운 좀비시대의 도래
  • 오시영
  • 승인 2020.03.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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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인터넷 댓글은 사람의 숨통을 조이기도 하고 풀기도 한다. 댓글을 통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며 안도하기도 하고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구나 하고 절망하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 공세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댓글 격려를 통해 생각을 바꿔 자살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댓글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끊임없이 세상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필자는 남의 글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 공감되는 좋은 글에는 참 좋은 생각을 읽었구나 하며 감동하고, 동의하기 어려운 글에는 나와 달리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구나 하고 또 다른 배움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글에 동의한다고 쉽게 댓글을 달거나 반대한다고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 글을 쓴 이가 열 번 잘못하다 한 번 잘했다 해서 칭찬하기도 뭐하고, 열 번을 잘 하다 한 번 잘못했다 해서 비판하기도 뭐하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게 흘러가는 물이고 바람이고 소리일 뿐이다. 천지를 개벽하려는 의지도 무의미하고, 천지를 묶어 두려는 억지도 무의미하다.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소수라고 해서 믿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진실이 다수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소수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물론 다수 속에 진실이 있을 수 있고, 소수 속에 진실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진실은 다수와 소수를 불문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뿐이기 때문에, 진실을 찾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드는 생각이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우리의 일상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 “현대판 좀비시대의 도래를 예측”해 본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체, 좀비(Zombie)를 수없이 보아왔다. 좀비는 서인도제국의 아이티에서 유래된 “부두교 전설 속의 존재”이다. 기원 전 1,000년 전에 쓰였다는 힌두교 경전 속에 처음 등장하는 좀비라는 개념은 “살아 있는 송장”을 의미한다. 부두교 속의 좀비는 주술사의 주술에 따라 움직이지만, 현대 영화나 소설 속 좀비는 바이러스 등에 감염되어 주술사와 무관하게 움직이며 감염병을 퍼뜨린다.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인 미국인 윌리엄 시브룩(William Seabrook)이 “마술의 섬(The Magic Island, 1929)”이라는 책을 통해 아이티 부두교와 좀비를 처음으로 소개하였는데, 그의 책 속에서는 사악한 주술사 보커가 약물과 주술로 사람을 가사상태로 빠뜨린 뒤 자신의 주술로 통제하여 일종의 노예로 삼는다고 설정 되어 있다.

마술의 섬이 발간된 지 몇 년 후 미국의 영화감독 빅터 핼퍼린(Victor Halperin)이 영화 “화이트 좀비(White Zombie, 1932)”를 처음 제작하여 대히트를 하였고, 그 영화 속 백인 주인공들은 아이티에서 주술사에게 조종당하는 좀비들을 만나 공포와 혼란을 겪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 백인사회에 좀비의 충격을 안겨주면서 흥행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좀비는 심한 피부병으로 몸의 형체가 일그러진 흉악한 모습이지만,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질병은 외모와는 상관없이 누가 누구를 감염시키는지 알 수 못하는 사이에 감염이 이루어져 우리를 무방비상태로, 공포상태로 내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며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할지라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대처할 수는 없구나 하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예방책이라는 것이 겨우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는 것”이 전부이다. 결국 감염된 자를 접촉하지 않는 행운(?)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 어찌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하급수적으로 마스크가 필요하다 보니 공산품인 마스크를 무한정 생산해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통제된 사회가 아닌 개방된 사회에서 결국 사회 유통망을 통해 마스크를 유통시킬 수밖에 없는 행정 당국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보지만 결국 자잘한 곳까지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게 되어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이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대구, 경북 청도 지역의 신천지교회의 집단 감염사태로 인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확진자가 5천 명을 넘어섰다. 하루에 1만 명 가까운 감염의심자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중 500명 가까운 확진자들이 거의 매일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말을 고비로 그 확진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겠다. 정부 당국의 강단진 정책에 의해 신천지 신도들의 감염 여부에 대한 검사가 전수 조사되어(일부 누락된 신자들에 대해서는 집중 추적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유증상자와 무증상자의 구별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그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게 됨에 따라 확진자 수의 일시적 증가는 둔화될 것으로 보이고, 대부분 중증상태가 아닌 “자가 호흡이 가능한 경증환자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2주 정도의 일정 기간 치료가 끝나면 모두 회복되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천지교회 이만희 교주가 결국 국민 앞에 사과를 하였고,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진실 규명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은 정부의 코로나19 감염병 방역 대책의 허술함과 치료 과정의 소홀함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눈앞에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네 잘못, 내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불을 끄는 것이 급선무다. 얼마 전 우연히 야당 의원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어서, 그들이 똑같은 비판을 가하기에 “야당의 정책은 무엇이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라는 것이 “마스크를 대량생산”해서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의료진도 대구, 경북 지역에 집중하여 배치하고 병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더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정부의 추경예산 책정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얼버무리며 국가채무가 늘어나 큰일이라는 말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속으로 오늘 당장 국민이 죽느냐 사느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 추경을 편성하자는 데 국가채무가 늘어나 큰일이라는 먼 미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쿠야 싶기만 했다.

하긴 오는 4.15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자신이 공천에서 살아남느냐, 선거에서 당선되느냐 하는 문제로 제 목숨 달린 판에 어디 코로나19 사태에 진력할 정신이나 있겠는가? 20대 국회에 이를 기대할 수도 없지만, 이제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몇 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신종 바이러스 질병이야말로 현대판 좀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징후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좀비나 강시는 사체가 움직인다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바이러스 감염병은 멀쩡한 사람들이 감염원이 되어 가까운 가족과 친지부터 감염시켜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니 더욱 섬뜩하지 아니한가? 나아가 지역과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더더욱 큰일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와 달리 차츰 블록화되어 가는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의 기운을 읽고, 이에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나라 경제체제에서는 빈발하게 발생하는 신종 바이러스 사태야말로 우리 경제를 가장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우리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를 대처하는 방안으로는 내수 크기를 확장하여 수출 등 대외의존도를 점차 낮추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신종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이 차단되거나 물적 교류가 줄어들게 되고, 이로 인해 세계무역규모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도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어 저소득층의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면 내수마저 고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국가경제가 장기적 불황으로 내몰릴 우려조차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적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 창출과 내수 진작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소득불평등문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한데, 문제는 현재 정부의 역량이 이를 역동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많이 힘에 부친다는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영업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알바 소득을 포함하여 저소득 비정규직 일자리가 급격하게 축소되어 그들의 소득구조마저 무너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절벽으로 추락할 위험마저 크다. 정부로서는 과감한 경제 활성화 방안을 위한 추경예산을 확장 수립하여 내수시장 위축에 따른 자영업자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여야 하고, 일자리 감소에 따른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득 보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의 발동을 포함한 단기적, 또는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일부 야당의원들조차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 발동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주장하기까지 하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댓글공화국이 되어 모든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라는 분열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사안별로 찬성과 반대가 바뀌는 “우르르 떼거리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중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중간지대가 많을수록 사회는 안정적이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세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두 편은 충돌하게 되고 혼란이 야기되게 되어 있다.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채 상처만 남기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거기에는 걷잡을 수 없는 독선이 강제되게 되어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4.15총선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여야가 극으로 치달으며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원수나 적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하고 있음은 참으로 염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혼란스러운 댓글과 혼미한 좀비바이러스가 한꺼번에 대한민국을 휩쓸며 정상적 사고와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금, 사회 지식인들과 합리적 중도층들이 한 쪽 발을 빼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관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하기야 신천지교회로 상징되듯, 교회의 권위마저 상실되어버린 세상에 어느 권위자가 앞장서서 사회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참된 지혜의 조언을 할 수 있겠는가? 댓글의 창궐이라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대가로 이 세상 모든 권위가 말살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고 말았고, 권위를 상실한 사회 어른들의 정성 다 한 충정은 한낱 댓글 희롱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으니 사태 수습은 더욱 난망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본질을 바라보는 혜안을 키워나가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비판적 견해가 적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악화되어가는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정부를 지지할 필요성 또한 크다. 또 다시 확장정책을 통한 부동산 투기 허용, 비정규직 확대, 저소득층 소득 및 복지 축소 정책으로 나아가게 되면 당장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도 있지만, 이는 더 큰 후발적 재앙을 우리 경제에 안겨주게 될 것이다. 사회양극화의 극대화정책이 시행된다면 언젠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좀비현상이 아니라, 경제력을 상실한 빈민층극대화에 의한 빈민좀비현상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지성적 댓글과 합리적 비판이 보장되고, 갈수록 고립주의, 의식의 좀비화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통합정책의 수립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사회지식층이, 중도층이 나서서 이러한 사회위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4.15총선이 그런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코로나19 현상의 신속한 제압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비상식적 교리에 집착하는 신천지교회의 흥왕이 용인되어 온 사회적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면밀히 분석할 필요도 크다. 기독교가 갈 길을 잃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하면 그 존재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댓글의 창궐과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 의식의 좀비화 현상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지금 모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한 발을 빼서 상황을 관망하여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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