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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5)-경자경장(更子更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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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5)-경자경장(更子更張)
  • 강신업
  • 승인 2020.01.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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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1574년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재임 중이던 율곡(栗谷)은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저술해 조정에 올렸다. <만언봉사>는 4번의 사화를 겪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율곡이 목숨을 걸고 올린 직설적 상소문이다. 당시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고 여긴 선조는 조정의 신하들과 초야의 선비들에게 “그대들 대소(大小) 신하들은 위로는 조정의 대관들로부터 아래로는 초야의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마음과 성의를 다하여 모두 말하고 숨기지 말아 달라”라고 조언을 구했고, 율곡은 선조의 교지(敎旨)와 수교(手敎)에 부응하고자 <만언봉사>를 저술했다.

<만언봉사>의 첫머리에서, 율곡은 “정치에는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하고, 일에는 실에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政貴知時 事要務實)라고 했다. 여기서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율곡의 시대 인식 때문이다. 율곡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일대 경장(更張)이 필요한 시기라고 보았다. 율곡의 시대는 조선 건국 초기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문물은 잦아들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국방력은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율곡은 조선 창업 후 200년이 지나는 동안 때가 바뀌고 일도 변화하여 폐단이 많아졌다고 분석하고 “불을 끄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듯 서둘러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窮則變 變則通)”는 옛말을 인용하면서 변화의 방법으로 무실(務實)을 제시했다.

율곡의 무실(務實)은 실심(實心), 실공(實功), 실효(實效)라는 개념으로 요약되는데, 실심(實心)은 참됨을, 실공(實功)은 힘써 행동함을, 실효(實效)는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을 가리킨다. 참된 마음을 갖고 힘써 행해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이 율곡의 무실사상의 핵심인데, 당시 율곡은 말뿐인 경장(更張)이나 형식적인 개혁(改革)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통(變通)을 통해서 실효(實效)를 거두는 개혁을 구상했다. 그는 조정이 재앙에 대처하는 일에나 백성을 교화하는 일에나 인재를 등용하는 일에 형식과 겉치레에 치우쳐서 실효(實效)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실효(實效)가 없다면 실심(實心)이나 실공(實功)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율곡이 무실(務實)을 특히 강조한 것은 당시 조선 사회가 ‘실(實)없는 사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만언봉사>에서 당시 조선사회의 ‘실없음(無實)’을 일곱 가지로 지적했는데, ‘위 사람과 아래 사람 사이에는 서로 믿는 실(實)이 없고(上下 無交孚之實), 신하들에게는 일을 책임지려는 실(實)이 없고(臣人 無任事之實), 경연에는 무언가 성취하는 실(實)이 없고(經筵 無成就之實), 현명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거두어 쓰는 실(實)이 없고(招賢 無收用之實), 재앙을 만나도 하늘의 뜻에 대응하는 실(實)이 없고(遇災 無應天之實), 여러 정책에는 백성을 구제하는 실(實)이 없고(群策 無救民之實), 인심에는 선을 지향하는 실(實)이 없다(人心 無向善之實)’는 것이다.

율곡은 이 같은 실없음(無實)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사회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대 경장(更張)이 필요하고, 그것은 일곱 가지의 무실(無實)을 삼실(三實, 즉 實心과 實功과 實效)을 통해 무실(務實)로 바꿀 때 가능하다고 했다.

2020년 경자년(更子年) 율곡의 무실사상(務實思想)과 경장론(更張論)이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지금이 율곡이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로 뻗어 가던 대한민국의 역동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제는 뒷걸음치고, 외교는 꽉 막히고, 정쟁은 낮과 밤이 없다. 지금 바로 역사에 경자경장(更子更張)이라 불릴만한 일대 개혁을 시작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율곡의 만언봉사를 명심해 조선이 일대 경장을 했더라면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금 바로 경장을 시작해야 할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주: 봉사(封事)란 중국 한대(漢代)에 신하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릴 때 검은 천 주머니 속에 넣어 봉하여 올림으로써 그 내용이 사전에 밖으로 누설되는 것을 방지한 데서 생겨난 일종의 상소제도다. 율곡은 상소가 한자로 일만(一萬)자 내외로 구성돼 있으므로 <만언봉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1만1천6백80자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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