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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이란 사태 : 국제정치 본질의 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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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이란 사태 : 국제정치 본질의 현시
  • 신희섭
  • 승인 2020.01.1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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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국내정치 현상을 다루는 정치학은 흥미롭다. 정치 현실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 간 관계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은 더욱 흥미롭다.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제도나 규칙의 예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왜 우리는 원자구조도 알아내는데 원자가 우리를 파괴하는 정치적 방법을 찾지 못하나?”라는 질문에 “정치가 물리보다 어렵다”라는 말로 답했다. 그런데 천재인 아인슈타인도 어렵다고 한 정치보다 국제정치는 한술 더 뜬다. 주식시장에서 고수익을 내는 투자의 귀재들도 국제관계와 관련된 예측에서는 번번이 참패하기 마련이다.

국제정치는 살아있고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우리 통제력을 넘어선다. 2017년 내내 설전을 벌이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과 2019년 사이 3차례나 만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2019년 말 ‘크리스마스 선물’로 위협하는 관계로 다시 돌아올 것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측했겠는가!

2020년 1월 미국과 이란의 관계 역시 그렇다. 현지 시각 1월 3일 미국이 이라크의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슬레이마니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1월 8일에 이란은 이라크에 있는 미군기지를 향해 지대지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했다. 이에 미국은 특수부대 파병과 B-52 폭격기 배치로 대응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다시 중동에 전운이 감돈다.

2020년을 시작하는 시점의 ‘미국-이란 사태’는 우리에게 국제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국제정치의 본질 즉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국내정치와는 전혀 다른 국제정치의 ‘구조’.

나는 역사 속에서 미국과 이란의 ‘근원(近遠)’ 관계를 따져 ‘역사의 반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왜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게 되었는지를 논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국제관계에는 이들을 뛰어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가 이 구조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복잡한 이야기니 단순하게 풀어보자. 얼마 전 운전을 하다 블랙 아이스(black ice)를 만났다. 의도하지 않게 ‘드리프트’를 했다. 차의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옆에 다리 난간을 들의 받을 뻔했다. 다행히 겨울 타이어로 바꿔둔 탓에 다소 제동이 되어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편 난생처음 드리프트를 그것도 의도치 않게 했기에 많이 놀랐다.

만약 겨울이 아니었고 얼음이 얼지 않았었다면 이 길에서 나는 드리프트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얼음 자체가 차를 회전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얼음이 얼어있어 차가 미끄러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면 얼음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국가들이 살아 움직이는 장(field)인 국제관계가 딱 그런 모습이다. 국내정치에서도 분배 투쟁은 있기 마련이다. 부와 자원과 지위와 역할을 두고 행위자들이 치열하게 다툰다. 그러나 국내정치에서 분배 투쟁은 제도적으로 관리 된다. 행위자 간 타협을 하다 안 되면 마지막에 중앙정부가 개입한다. 경찰력이든 법원을 통해서든. 그러나 국제정치는 다르다. 마지막에 개입해줄 국가들 위의 중앙정부(hierarchy)가 없다. 이런 순간 우리는 국제정치가 ‘무정부상태(anarchy)’라는 것을 경험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무정부상태가 현시화되는 것이다. 꽁꽁 언 채로 숨어있는 ‘블랙 아이스’처럼,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깨닫는다. 절제되지 않는 지도자들의 권력 욕구, 통제가 멈춰 버린 안전보장 회의(NSC)와 같은 국내 제도장치들,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도덕과 규범들을 뛰어넘는 힘의 논리, 19세기로 회귀하는 듯한 착각을 가져오는 지리-정치적 계산들, ‘가장 현명한 이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의 오인(misperception)과 오판(miscalculation)의 대향연, 정책결정자들을 지배하는 집단 사고(group think)….

‘미국- 이란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돌파 전략과 이미지 관리전략. 이란의 호전성을 통한 내부 규합과 이슬람 단합전략. 어느 한 편도 이번 사태에서 쉽게 양보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향후 위기 증폭 과정은 국제정치에서 무정부상태라는 조건과 이것이 만들어 내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 논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1991년 탈냉전 이후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에 의해 정복되거나 소멸한 적이 없다는 낙관주의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여전히 국제정치는 언제든 야만적인 폭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내면서 말이다.

“이 사태가 잘 되었다.”라는 오해는 말아주기 바란다. 국제정치는 언제든지 폭력사태로 돌아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거대한 전쟁이 없던 ‘100년의 평화’가 1914년 느닷없이 깨어진 것처럼.

국제정치의 ‘힘의 정치’가 살아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게 불편하지만 단순한 사실을 알려준다. 새로운 ‘줄서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

호르무즈 파병은 우리가 마주할 거대한 사실이나 질문이 아니다. 사태가 악화되고 장기화되면 국제관계는 더 노골적이 될 것이다. 미국의 강경전략 사용은 이란과 이란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전략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의 전략계산을 바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기회주의적인 북한은 새로운 형태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석유에 대한 셈법이 달라지고 수송로(SLOC)의 전략이 바뀔 것이다. 이 중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국제정치가 적나라해질 때마다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했던 한국은 언제나 매우 단순하면서 진실한 상황을 만나왔다. 1895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50년 한국전쟁, 1964년 베트남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들에서. 그런 점에서 살아있는 국제정치는 우리에게 흥미롭지만, 걱정스러운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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