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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돼지갈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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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돼지갈비의 추억
  • 신희섭
  • 승인 2019.10.1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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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한 가지 정도의 음식이 있을 것이다. 추억을 떠올리는.

내게도 그런 음식이 있다. 돼지갈비다. 여러 가지 기억들을 불러내는 그런 음식.

처음 돼지갈비를 먹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탈 불에 그슬린 향과 간장 맛과 돼지갈비살의 부드러움과 지방 맛이 막 섞여서 입안으로 들어왔다. 팡하고 맛의 신세계가 열렸다. 게다가 연탄가스와 고기 기름으로 타오르는 연기들로 쌓인 뿌연 실내는 그때의 맛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한다. 마치 ‘신선계’에 있었던 것처럼.

너무 꼰대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른다. ‘돼지갈비의 추억’이란. 그래도 내겐 너무나 기억이 선명하다. 맛있었지만 졸업식이나 있어야 한 번 갈 수 있었던 갈비집. 그것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나의 꿈은 ‘커서 원 없이 돼지갈비를 먹는 것’이었다.

요즘도 돼지 갈비를 먹다보면 예전이 떠오른다. 무슨 격발장치처럼. 가난했고 많은 것들이 부족했고 그리고 이 과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갑갑함이 있었던 시절. 어쩌다 한번 먹는 돼지갈비는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뿌연 연기 속에서 약간 부자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돼지갈비를 굽다 기름이 떨어지고 탄 냄새를 맡으면 그때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마 지금이 그때 보다는 조금 나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지만 그 시절을 잘 버텨냈다는 뿌듯함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아이들에게 돼지갈비의 기억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아이들 세대에게 돼지 갈비는 여러 먹을거리 중 하나일 뿐일 수도 있다. 대체로 이 세대들에게 돼지 갈비가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지는 않을 것이다.

세대마다 공유하는 추억들이 있다. 추억 격발 장치가 무엇이 되었든지. 이렇게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한 세대를 이룬다. ‘동년배효과(cohort effect)’로 같은 연령대는 유사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한 세대의 정체감을 가진다. 만나서 졸업식에는 돼지갈비냐 탕수육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도 불사하는 정체성.

시간은 자연히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킨다. 그러면서 과거세대도 만든다. 한국처럼 빠른 변화를 경험한 국가에서 세대는 더 세분화될 수도 있다. 직면한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른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대를 구분하고 세대간 차이를 나누면 얻는 것이 많다. 새로운 소비 트렌드, 문화적 경향, 정치 지지도.

돼지갈비를 떠올린 이유가 있다. 최근 1990년대 생들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들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과연 세대별 정의감이 다를까? 세대별 추억처럼.

답은 단순했다. ‘정의’란 것은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이때 ‘어떤 입장’이라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말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이념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 정의는 주관적이다.

그렇다고 보편적인 정의의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정함에 대해 다소 기준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불공정한 행동에 대해 우리가 불쾌감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닌 것처럼. 최근 새로운 세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1990년대 생들이나 밀레니얼 세대의 ‘공정성’ 강조는 이런 점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1990년대 생이나 밀레니얼 세대가 ‘공정성’에 대해 더 많이 가치를 두는 것은 시대 환경의 영향이 큰 듯하다. 이들은 같은 한국에서도 이전 세대보다는 좀 더 부유한 나라와 좀 더 민주화가 된 국가에서 태어났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좀 더 유복한 환경과 제도화가 된 국가에서 자란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는 투명한 경쟁구조에서 성장했다. 게다가 이전 세대처럼 산업화나 민주화라는 미래를 끌고 나갈 거대담론이 없는 정치사회구조는 이들에게 좀 더 미시적인 조건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런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공정성’이라는 기준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드는 입시 비리문제들은 기폭제 역할을 했고.

1990년대 생들이나 밀레니얼 세대가 더 공정성이라는 정의에 관심을 가진다는 명제가 이전 세대가 공정성문제나 정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안가진다는 명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 세대들도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1910년 이후 국가를 구하겠다고 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다. 1960년 4.19민주혁명을 이끈 세대도 있었다. 1979년과 1980년 민주주의를 요구한 세대가 있었으며 이 세대는 1987년 민주화를 이룩하게 하였다. 1960-1970년대 산업화라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세대도 있었다. “더 나은 삶”을 공유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다. 이들 세대들을 이끈 정의감과 도덕성은 1990년대 세대가 요구하는 정의감과 도덕성과는 좀 다르다.

그렇다. 어떤 세대나 그 세대가 가진 정의감과 도덕성이 있다. 누구나 한 가지쯤 추억 하는 음식이 있듯이 말이다. 다만 추억하는 음식의 종류가 세대별로 다르듯이 세대별 정의감과 도덕성도 다르다.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감과 도덕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국은 다른 추억을 가진 각기 다른 세대들이 각자의 정의감과 도덕성을 가지고 복작거리며 살아간다.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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