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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랜 공직 생활 마치고 감정평가사로 새로운 시작” 2019년 최고령 합격 최기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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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랜 공직 생활 마치고 감정평가사로 새로운 시작” 2019년 최고령 합격 최기성씨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9.09.30 17: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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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결핵 투병하다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행시로 공직 입문
“낮은 자세로 배울 것…공직 경험 접목, 장점으로 키우고파”

2019년 감정평가사시험 최고령 합격 최기성씨
2019년 감정평가사시험 최고령 합격 최기성씨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어둡고 긴 터널에서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환희의 장’으로 나온 느낌이다. 무엇보다 ‘하면 된다’, 즉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의 좌우명이 다시 한 번 이뤄졌다는 감격을 맛보았다.”

2019년 감정평가사시험에서 181명의 합격자 중 한 사람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최기성씨의 합격 소감이다. 최씨는 올해 만 65세의 나이로 최고령 합격자가 됐다. 퇴직을 앞두고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 6년 만에 값진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는 감정평가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영어시험에서부터 수차례 고배를 마시는 등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했다.

역경에 지지 않고 도전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최씨는 고3 때 폐결핵에 걸려 대학 진학도 미뤄야 했다. 3년간의 투병 끝에 병이 완치된 후에는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건국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2년 후인 1984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직했다.

서울시에서 잠시 근무한 후 국가정보원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역임했고 1급 관리관에 해당하는 실장으로 퇴직했다. 이후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주식회사와 국가안보관련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원에서 이사로 근무했다.

수십 년 치열하게 일을 했으니 조금 쉴 생각도 들 법 한데 최씨는 오히려 감정평가사시험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처음 도전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내의 제안 덕이었다. 평소 감정평가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도전을 할 생각은 못했다는 최씨.

그런데 퇴직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레 아내가 던진 “감정평가사는 연령에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다. 공부해 볼 생각이 없냐”는 질문이 도전의 계기가 됐다고. 이후 학원 상담 등을 거쳐 공공기관 이사직을 마무리할 무렵인 2011년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수험생활을 요약하자면 ‘원인 분석을 통한 시행착오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험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은 고난은 영어능력검정시험이었다. 최씨는 “문법 세대라 듣기 점수가 안 나와서 2~3번을 보고서야 통과가 됐다”며 당시 경험을 소회했다.

1차시험 과목 중에서는 시험 전에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회계학이 말썽 과목이었다고 한다. 회계학에서 과락점을 받는 바람에 1차시험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나이가 어린 수험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억력 등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씨가 선택한 방법은 ‘다독’이었다.

교재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것을 선택했고, 과목별로 기본서나 서브노트 1권, 객관식 문제집 1권을 기본으로 하루에 3과목 정도를 반복해서 봤다. 객관식 문제의 경우 짝, 홀수로 나눠 보거나 1번-5번-10번씩 분절해 보는 방식으로 회독수를 늘렸다. 첫 1차시험에서는 3~4달 정도를 공부했고 이후부터는 1.5~2달가량이 소요됐다.

최씨는 “1차에 2번 실패했는데 한 번은 민법, 한 번은 회계학 과락 때문이었다. 공부 첫 해 1차를 낙방했는데 법학과 출신이라 민법에 자신이 있어 간단히 기본서만 보고 시험을 쳤다가 민법 점수가 40점으로 저조해 1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1차 실패 후 패인을 분석했더니 민법의 경우 판례 위주로 출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몰라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고 말했다.

2차에서는 실무에서 1번, 이론에서 1번 과락을 했고 그 외에는 평균 0.3~0.7점이라는 근소한 점수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문이 길 경우 해독 능력이 떨어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분석했다. 1~2문제 정도 지문을 잘못 읽어 과락을 맞거나 점수가 조금 부족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복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한 번 본 것을 다시 틀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2차 과목 중에서는 과락을 경험한 적 있는 실무에서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앞서 언급한 약점에 계산기 사용 능력 부족 등이 실무과목의 점수가 저조한 원인이라고 생각한 최씨는 올해 시험을 앞두고 다양한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범위를 정해두고 그것을 무한반복하기로 결정했다. 시험 2개월 전부터 한 강사의 문제를 기본으로 반복해서 풀면서 시험 막바지에는 해당 강사의 스터디 문제만으로 범위를 더 줄였다. 스터디가 끝난 후에는 강사와 2시간 동안 답안 검토를 했는데 이 때 문제를 보는 시각과 답안의 질을 높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합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답안 작성에서 최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직접 겪은 시행착오에서 도출됐다. 그는 ‘출제자의 의도 파악’을 답안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았다. 최씨는 “공부 초기에는 아는 문제나 비슷한 문제가 나올 경우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아는 것 위주로 써놓고 잘 쳤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했는데 올해는 출제자 의도 파악에 중점을 두고 답안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보다 구체적인 답안작성 노하우도 털어놓았다. 먼저 이론 과목의 경우 답안 형식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되는데 출제위원 대부분이 부동산학과 교수님들이므로 ‘논하라’는 형태의 문제인 경우 이같은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물어보는 것에 한해 답안을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어 “실무의 경우 평가 개요에 관련 조문, 물음의 핵심사항에 대해 어떻게 작성하겠다고 언급하는 게 중요하고 일반·보상 평가 모두 법조문에 따른 풀이가 중요하다. 법규는 조문, 학설, 판례가 점수를 좌우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명확한 암기와 서술이 필요하다. 특히 판례 공부의 중요성은 법규 과목에서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합격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는 불합격했던 과거와 올해 공부방법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최씨는 “조기 합격이 아니기에 특별히 합격 비법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올해 합격할 수 있었던 성공의 열쇠는 예년에는 하지 않았던 조문 암기와 공부자료의 단순화, 꾸준한 암기 노력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같은 방식의 공부를 위해 교재는 하나로 통일을 했고 조문의 경우 매일 1시간씩 암기해 시험 직전까지 총 13회독을 했다.

나이가 어린 수험생들도 지치기 쉬운 수험생활을 이어가는 게 어찌 쉬운 일이었을까. 낙천적인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덜 받는 체질이기도 했고 짬을 내 첼로를 배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고, 가끔 자전거도 타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며 수험생활을 하던 최씨였지만 예상치 못한 외부적 위기는 피할 수 없었다.

최씨는 수험 기간 중 대상포진과 패혈증, 자전거 사고 등의 고난을 겪었다. 그는 “특히 패혈증은 사망률이 거의 50% 되는 것으로 15일간의 입원과 완치까지는 8개월이 소요됐다. 당시 아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편이 세상을 하직할까봐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다행히 주님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당시의 경험을 떠올렸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건강을 생각해 공부를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최씨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때 수험생활을 중단했으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와 같이 감정평가사가 되기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이왕 시작한 수험생활이 다소 길더라도 초지일관 밀고 나아가면 결국 과실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다만 실패의 원인 분석은 필수사항”이라는 경험이 녹아있는 조언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수많은 고난과 실패를 넘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좌우명을 몸소 증명하며 이룬 꿈, 이제 감정평가사라는 새로운 시작을 눈앞에 두고 그는 사회초년생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최고령으로 합격했지만 낮은 자세로 업무를 배울 생각”이라며 “공직에서의 경험을 감정평가업에 접목시켜 나만의 장점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나아가 감정평가업계의 발전에 조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포부를 펼쳐보였다.

마지막으로 그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환희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고 힘이 돼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수험 생활 중 고생한 나의 영원한 매니저인 집사람과 늘 격려를 아끼지 않은 아들 내외, 그리고 이쁜 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감평분야에서의 멘토인 여지훈, 양소녕 평가사 부부, 묵묵히 옆을 지켜준 장학수 원장에게도 감사함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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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기 2019-10-01 22:30:50
감동 그 자체.

쓰레기 로스쿨생들 2019-10-01 08:13:32
돈 쥤으니 자격증 내놓으라고 데모질이나 하는 쓰레기 로스쿨생들은 이런 분들 보고 좀 먼저 사람이 되어라!

문재인과 민주당 2019-10-01 07:37:56
훌륭하신 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리생각 하지만 문재인과 민주당은 이런 분들을 아주 싫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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