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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세대 불화와 분화가능성 : 전통적 진보와 새로운 진보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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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세대 불화와 분화가능성 : 전통적 진보와 새로운 진보간 갈등?
  • 신희섭
  • 승인 2019.09.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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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몇 해 전 어느 식당. 식당 한 테이블에 할아버지내외, 아들내외, 손자들로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말을 맞이하여 3대가 외식을 하는 듯 했다. ‘다복’해 보이는 3대의 식사풍경. 식사를 다 마쳐갈 때 쯤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계산을 하려는 듯 계산서를 들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어허. 계산서 이리 내” 그 뒤에 할아버지의 논리가 이어졌다. “의사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때 처음 알았다. 의사는 돈이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날의 그림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의사가 누군가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직업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인상적인 점은 이 3대의 모습이 현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었다.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 정보통신혁명세대.

은퇴한 할아버지가 저녁을 사는 ‘유복한’ 집안들에게는 대체로 공통점이 있다. 할아버지가 부를 축적하고 그 중 일부를 자식세대에게 이전해 준다. 할아버지가 사는 근처에 집을 사주고 거기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자식 세대는 대체로 80년대 학번인 ‘386세대’나 90년대 학번인 ‘X세대’로 칭해지는 이들이다. 이들은 높은 교육수준 덕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손자 세대는 대체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이들 손주 세대는 저녁 먹는데 사실 관심이 없다. 조부모와 부모가 열심히 대화를 하는 동안 이들은 스마트 폰에 열중한다. 어차피 저녁 값은 조부모나 부모가 낼 것이다. 게다가 이 양반들 대화는 지루해서 끼어들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대표하는 세대가 다르며 세대별 가치관도 다르다. 여기서 핵심은 세대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도덕관도 다르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유복한’ 집안일지라도 조부모와 부모는 가끔 싸운다. 보수적 기준과 진보적 기준으로 서로를 설득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런 광경을 보는 손자 세대는 이 싸움에 별 관심이 없다.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이들의 말과 행동이 자주 불일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논쟁이 공허하다는 것도 잘 안다.

산업화 세대는 빠른 산업화를 위해 자유와 평등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을 포기하였다. ‘박정희의 향수’라고 불리는 가치관에서 볼 때 자식 세대가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관은 잉여로 보일 수 있다. ‘산업화=가난 탈출’이라는 절대 지상명제아래서 노동자와 여성의 인권과 같은 가치는 부차적이거나 거추장스러웠다. 반면에 정보화통신혁명의 주역인 손주 세대들은 ‘불확실성’과 ‘이동성’이라는 가치관에 기초해서 움직인다. ‘이동성’은 자크 아탈리가 개념화한 ‘유목’에 가깝다. 과거방식의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적게 받으면서 이들은 ‘속도’와 ‘연계’를 중시한다. 이들 세대에게 ‘산업화와 부’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미 물려받은 것이다. 또한 이들 세대를 이끄는 거대 담론이 없기 때문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부정의나 작은 부패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다른 이전 세대들이 불편하다. 워라벨, 여행, 취업과 같은 미시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들에게 도덕성의 기준과 잣대는 편재해 있다. 이전세대들의 관점에서 보면 도처에 지뢰밭이 있는 것이다.

‘유복’해 보이는 3대의 식사 풍경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세대간 조화와 부조화를 모두 담고 있다. 은퇴한 이후에도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더 주고 싶은 산업화 세대,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가격과 높아진 물가에도 불구하고 부모 세대의 도움으로 폼 나는 직업을 가지고 존중받는 삶을 살고자 하는 민주화세대,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정보통신혁명 세대.

3대가 동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조국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사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변화를 만들 여지가 있다. 정치지형의 변화라는. 10대와 20대의 정보통신혁명세대가 40대와 50대의 민주화 세대와 분리될 수 있는 변화.

2016년과 2017년으로 이어진 대통령 탄핵과 이를 이끌어 온 촛불집회는 과거의 구태로부터 민주주의를 다시 지켜보자는 시민운동이자 시민혁명이었다. 이때 중심 세력은 민주화세대와 정보통신혁명세대였다. 중고등학생까지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런데 최근 조국장관을 둘러싼 일련의 정치 갈등은 세대별로 달리 읽힌다. 민주화 세대는 이 문제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사법개혁이라는 거대한 목표아래서 이 정도 부패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현재 사태가 사법개혁의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빨리 속도를 내야 ‘더 건전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진보입장에서도 도덕성의 문제에 대한 이견들이 있다.

반면 10대와 20대에게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렌즈로 읽힌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이들 세대에게 자신들이 거쳐 왔거나 지금 거쳐 가고 있는 ‘헬조선의 교육과정’에서 작은 특혜는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거대 담론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들에게는 도처에 편재한 작은 도덕기준들이 모두 중요하다.

조국장관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이 길어지는 것은 ‘양가적(ambivalent)’이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썩은 한국 정치”라며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늘어난 무당파 층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progressive)’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세대 간의 불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세대 불화’는 이후 좀 더 구체적인 ‘세대 분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앞을 향해서 나간다!’는 진보(progressive)에 대한 도덕적 입장 차이는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한 새로운 행동을 요구할 가능성을 높인다.

진보 입장에서 세대분화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압박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은 산업화세대를 어우르기 어렵다. 집권연장을 위해서는 정보통신혁명세대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세대 간의 정치지향점의 차이가 커진다면 진보정치는 이들 세대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거나 이들 세대와 분리된 상황에서 민주화세대의 지지만을 고수해야 하는 양자택일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조국장관사태가 장기화되면 세대 간의 갈등과 진보진영의 전략적 선택간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이런 사태는 한국 사회가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좀 더 명확한 가치 지향점을 찾아가도록 만들 수 있다. 더 나가 기존 제도권 정당이 아닌 새로운 정당과 정체세력의 탄생을 잉태할 수 도 있다. 유럽처럼.

일상을 더 고단하게 하지만 한국정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태풍의 중심을 향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정치에 더 집중해야 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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