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일본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백범과 도산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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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일본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백범과 도산의 외침
  • 오시영
  • 승인 2019.08.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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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대학 교수 정년을 맞이하면서 되돌아보면 필자가 청소년 시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두 권의 책이 있으니 바로 “도산 안창호”와 “백범일지”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 두 권의 책을 아마 수십 번은 읽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는 책이 많지 않던 시기였지만 아버지와 형님들이 몇 권 되지 않은 책을 애지중지 서가에 꽂아 두었는데, 그 중에 필자를 사로잡았던 두 권이 바로 저 책들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취조를 받을 때 당신 직업이 뭐냐고 묻자 “내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여 일본 경찰의 입을 막았다고 한다. 수많은 도산의 말들이 “도산 안창호”에 기록되어 나오지만 그는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라는 따끔한 말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게 하고 있다.

도산 안창호가 미국의 동포들이 아주 더러운 환경에서 인삼장사를 하면서 서로 가격과 품질을 속이며 장사하는 것을 보고, 제일 먼저 실천한 것이 “화장실 청소”와 “꽃 가꾸기”였다고 한다. 화장실 청소는 더러움을 씻어내는 첫 걸음이었고, 꽃 가꾸기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마지막 걸음이었다. 어리석은 사람을 계몽하기에 앞서 더러움과 아름다움의 아주 작은 실천을 통해 가난하고 헐벗은 교민들이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인간의 가치와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것을 보고 스스로 지식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실천했던 것이 화장실 청소였고, 주거 지역 꽃가꾸기를 통해 심성을 교화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교민들이 일치단결하여 내부 싸움을 멈추고 인삼을 제 값 받고 팔아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그 책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이야기이다. 백범일지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서 “너의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저의 소원은 오직 대한의 독립입니다.”라고 답할 것이고,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또 다시 “우리나라의 독립입니다.”라고 답할 것이고, 세 번째 다시 “그렇다면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저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백범의 나라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는 척박한 여건 하에서도 두 가지를 꿈꾸었으니 하나는 “대한독립”이요, 다른 하나가 “문화국가”임을 알 수 있다. 문화국가 천명 이유가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이라는 백범의 사상은 우리 민족을 너무 깊이 통찰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선이 외세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독립국가를 유지하여 왔음과 우리 민족의 정신과 재능이 얼마나 높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높은 경지를 이루어 왔는가를 꿰뚫는 혜안이 있었던 것이다.

저 두 선각자의 사상이 이제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려는 순간, 그들의 꿈이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나려는 순간, 팔부능선의 그 고비에서 일본의 방해 공작이 시작되려 한다. 그게 아베 정권의 최근 반도체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라는 명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경제침략전쟁이다. 우리 사법부의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에 대한 일제 강점시대의 조선인 징용자들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판결에 대한 강제집행 방해 책동이다. 법원은 현재의 일본 정부의 국제법 위반의 생떼에 눈치 볼 것 없이 위 두 기업의 한국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어느 누구도 방해하거나 중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일본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 획책하고 있다. 제9조 제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라고, 동조 제2항은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라고 국제평화협력과 침략전쟁의 포기 및 국가의 교전권 불인정이라는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일본은 체질적으로 호전적 국가이다. 세계 사람들에게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하여 “무사도”가 아주 멋진 일본인 정신세계인 것처럼 포장해 선전하고 있지만, 사무라이(侍, 武士)는 12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일본 전국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던 살수 집단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반대 편 사람들을 암살하거나 전쟁터에서 죽이며 그들의 세력을 키워왔고 그 힘이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르러 조선 침략이라는 임진왜란으로 확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평생 전쟁을 하면서 사람 죽이는 일에만 이골이 났던 사무라이들이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 전국시대가 평정되자 할 일이 없게 되고, 영지 확장이 정지되자 더 이상 녹을 늘려 받을 수 있는 재테크의 기회가 사라지자 사람 죽이던 버릇밖에 없는 그들로서는 좀이 쑤실 수밖에 없어 다시 일본 내정이 불안해지려 하자 히데요시라는 전쟁광이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하여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국제전쟁이 임진왜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을 쳐들어온 그들은 초전에 승리하는 듯 했지만,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군과 전국에서 들풀처럼 들고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으로 히데요시의 사무라이들은 패전할 수밖에 없었고, 패전국이 되어버린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내치를 통해 메이지유신에 이를 때까지 국제전쟁이나 별 내전 없이 평화로운 시대를 그나마 가졌지만 다시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전쟁물자 조달이 가능하게 되자 조선을 침탈하고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 본토를 공격하고 마지막으로 진주만을 습격하여 미국을 상대하는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이다. 한 마디로 미친놈들의 미친 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폭거였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두 손 두 발 들게 되고 패전국으로서 위 평화헌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어 일본헌법 제9조에 위와 같이 “전쟁포기”를 명문화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베 신죠 일본 총리는 위 일본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일본국민들이 이를 반대하자 2014년 7월 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집단적 자기 방위는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뿐만 아니라 일본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공격의 경우와 그러한 공격의 심각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도 자위대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새로운 해석안을 결의하였다. 다시 말해 일본헌법 제9조의 전쟁포기 선언 평화 조항을 “일본과 긴밀한 관계 유지 국가에 대한 해외파병의 허용” 및 “사전 공격”의 길을 연 것이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 채 “헌법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황당한 방법을 통해 위와 같이 “왜곡해석”을 한 것이다. 말이 해외파병이지 이는 “먼저 외국을 선제공격하여 침략할 수 있다는 침략전쟁의 가능성”을 천명한 것이고, “공격의 심각한 위협이 있는 경우”는 “위험성만으로도 선제 침략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위 두 해석은 모두 “자의적 해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일본 정부가 “그렇게 위협을 느낀다면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불순한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거셌지만,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제로부터 침략을 당한 뼈아픈 경험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비난을 가했지만 아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지난 주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아베 신죠는 일본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스스로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공언하고 있는 아베에게는 제2차세계대전에서의 일본 패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이고, 전쟁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기본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이번 행동을 통해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침략은 쉽게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 국민이 이번 반도체 부품 소재 수출 규제로 일본의 야욕을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이 그렇게 열망했던 “독립국가의 참된 의미”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러한 자각을 통해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의 실천적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일본의 실체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니, 우리가 지레 두려워하던 일본의 실체가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1988년(30년 전) 국민소득은 약 2만 6천불 정도였고, 우리나라는 4,460불이었다.1998년(20년 전)은 38,420불 대 7,440불이었고, 2008년(10년 전)은 34,864불 대 20,663불었고, 2018년은 40,106불 대 32,046불이었다. 30년 전 일본의 17% 수준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80% 수준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지난 30년 동안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사실로 드러났고(정체되어 있었고), 우리는 계속 발전, 성장하여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부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는데 그 말은 객관적으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하여 왔다는 사실을 객관적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에서 24위, 우리나라가 28위 정도의 국민소득을 이루고 있다. 지난 해 기준 우리의 수출액은 6,012억불이고, 일본은 7,326억불로 83% 수준이다. 인구 1억2천5백만 명 일본의 총수출액에 비해 5,100만 명 우리나라 수출액이 83%에 이르고 있다. 이를 국민 1인당 수출액으로 환산하면 우리는 12,000불 정도, 일본은 6천불 정도를 수출했으니, 1인당으로 치면 우리가 일본의 거의 두 배 정도를 수출한 셈이다.

IMF의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5년 정도 지나면 우리 경제가 일본 경제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그러한 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지만, 일본의 낮은 경제성장률에 비해 우리의 성장률을 고려하면 적어도 10년 정도면 거의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본다. 어찌 되었든 반도체, 전자, 조선 등 현대형 산업에서 거의 일본 경제를 따라잡거나 추월하는 추세에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일본 경제를 우리가 그렇게 두렵게 대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비하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낙관할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국력을 모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도산과 백범 선생이 추구했던 “독립과 문화”가 드디어 21세기초에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독립은 정치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문화적 독립 역시 중요하다. 남북 간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고, 산 넘어 또 산이 나타나더라도 통일 지향적으로 나가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고,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독립의 자각을 이번 일본 아베의 반도체 부품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해 우리가 다시금 깨닫게 되었으니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우리 내부적으로는 의견의 일치가 보이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친일파 매국노 논쟁”이 뜨겁다. 동일한 가치를 향한 방법의 차이이지만, 애국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안창호는 “화장실 청소와 꽃 가꾸기”로 문화를 실천적으로 이행하였고, 백범은 “문화국가”의 위대함을 과거와 미래에 가능한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이제 BTS로 상징되는 한류의 열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박세리 선수의 출현으로 박세리 키드들이 양성되어 세계 여성 골프계를 석권하고 있고, 김연아 키드들이 양성되어 피겨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차범근, 박지성에 이어 손흥민이 세계 축구계에 우뚝 서 있고, 이강인으로 이어진 축구 키드들이 유소년 축구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제 여자육상계에서도 계룡여중의 양예빈 선수가 29년 만에 한국 중학생 400미터 신기록을 세웠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독립국가와 문화국가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하나일 때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베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참 크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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