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1) / 변호사의 글쓰기, 좋은 리걸 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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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1) / 변호사의 글쓰기, 좋은 리걸 라이팅
  • 박준연
  • 승인 2019.07.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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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내 글쓰기 솜씨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스쿨에 들어가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처음 “리걸 라이팅”을 하면서 시작된 좋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스쿨에 처음 입학하고 그날 그날 공부 따라가기도 바빴을 때는 내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고민을 할 여유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첫 기말고사를 마치고, 내 나름대로는 시험 답안을 잘 썼다고 생각한 과목에서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성적을 못 받았을 때는 생각이 많아졌다.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해 본 경험도 없이 무작정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게 무모한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 역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생각. 하지만 교수님을 찾아가 고민을 설명하고 시험 답안을 함께 확인하면서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유학와서 아무래도 영어 구사에도 어려움이 있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니까 교수님은 내 답안을 찾아 훑어보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난 네가 유학생인지도 몰랐는데, 시험 답안의 논점에선 빠뜨린 내용이 좀 있구나. 그때 내가 혹시 영어를 핑계로 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적어도 외국어를 핑계로 생각과 고민이 부족한 글쓰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리걸 라이팅의 “권위”

변호사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법규와 판례를 비롯한 법적 권위를 근거로 하여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뢰인을 대리하여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문서뿐만 아니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변호사의 글쓰기에 대해 변호사 출신의 시인이자 평론가가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변호사가 일상적으로 쓰는 글은 문학 작품처럼 감동을 줌으로써 독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글 자체의 법적 권위를 통해 다른 의미에서 독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제3자가 읽으면 무의미한 모션 (motion)이라도 판사를 설득시키면 결국 소송 상대방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로스쿨 교수님은 리걸 라이팅이 갖는 권위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판사가 반대 의견 (dissenting opinion)을 쓸 때는 글의 설득력에 더욱 큰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는 반대 의견은 판례로서 법적 권위를 갖지 못하므로, 글 자체의 설득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변호사가 쓰지 않은 것 같은 글

로스쿨 1학년때부터, 변호사가 쓴 글에 대해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변호사가 쓴 것이 티나지 않도록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변호사가 글을 못 쓴다고들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필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법률 용어 뿐만 아니라 라틴어 유래의 관용구를 섞어 장황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형적인 변호사의 나쁜 글쓰기이다. 그런 이유로 글쓰기 훈련을 받으면서 많이 하는 것이, 내가 쓴 읽기 어려운 글을 의미를 유지하면서 간결하고 읽기 쉬운 글로 바꾸어 쓰는 연습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간결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은 영어가 외국어인 나뿐만 아니라, 영어가 모국어인 로스쿨 학생들, 변호사들 역시 자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좋은 글은 필자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메일 쓰기의 고민

업무상 가장 많이 쓰는 글은 뭐니뭐니해도 이메일이다. 쉽게 보낼 수 있는 만큼, 이메일 인박스는 전 세계에서 온 이메일로 가득 차고, 어떤 날은 그날 온 이메일을 다 읽지 못해 급하지 않은 이메일은 표시해 두었다가 다음날 모아서 읽는 경우도 있다. 그 만큼 내가 긴급한 용무로 답을 받아야 하는 이메일에 대해 어떻게 하면 재빨리 수신인의 관심을 끌어 빨리 읽고 답을 하게 할지 하는 것은 큰 고민이다. 메일에 중요 표시를 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밑줄을 치거나 색을 넣어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메일 내용 상으로는 제목을 애매하게 쓰지 않고 정확하게 요청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쓰고, 메일 전부를 다 읽지 않아도 중요한 부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첫 문단에 1) 내가 왜 이 메일을 쓰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2) 결론은 무엇인지, 3) 수신인이 어떠한 행동을 취했으면 하는지를 두세 문장으로 요약하기도 한다.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글

로스쿨 진학 전이나 1학년 때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답안 작성법을 익히기 위해 많이 읽는 책이 “아마도라는 결론에 이르는 방법 (Getting to Maybe)”이다. 이 책 제목은 전형적인 서술식 로스쿨 시험 문제의 답이 많은 경우 “아마도”이고, 채점 과정에서도 답안의 결론보다는 결론에 이르는 추론 과정을 중시해서 채점을 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명확한 법률 의견을 낼 수 있는 쉬운 시험 문제보다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어려운 사실 관계가 시험 문제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변호사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복잡한 사실 관계를 분석하여 심도있는 분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일하는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사실 관계를 파악하여 법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 글로 표현하는 것은 변호사의 일상적인 업무이다. 복잡다단한 사실 관계가 아니라면 로펌에 의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명확한 법적 의견을 내놓기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로펌 내부 팀을 위해서도, 의뢰인을 위해서도 비교적 명확한 결론에 근거하여 행동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 역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알기 쉬운 비유가 있는데,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글의 인쇄물을 주워서 30초 정도 본 다음 글의 결론을 알 수 있어야 좋은 글이라는 이야기이다.

(좋든 나쁘든) 남의 글에서 배우기

좋은 글에서 좋은 부분을 자신의 글쓰기에 반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업무적으로 접하는 글에서 좋은 표현, 좋은 글 쓰기 기술은 기억해 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이 되면 쓰려고 한다. 업무상 접하는 글 외에도,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힌트를 얻는다. 또 완벽한 글이 아니라도 남이 쓴 글에서 배우는 경우가 있다. 업무 상 쓴 글을 검토하고 편집하는 상황이 그렇다. 남이 고심해서 쓴 글을 고칠 때에는 가능한 한 왜 수정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단지 내 선호가 아니고, 왜 수정한 글이 더 좋은 글인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글쓰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 회사에 처음 와서 새로 담당한 업무로 처음 작성한 회사 내부용 메모에 대해 자세한 수정과 함께 수정 사항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기재해서 돌려받은 적이 있다. 이러저러한 배경이 있으니 용어 A보다는 용어 B가 나을 거라는 식의 자세한 설명을 보고, 나도 누군가의 글을 수정할 땐 이렇게 설명을 해줘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규칙을 잊지 않기

리걸 라이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형식적인 규칙이다. 로스쿨에 들어가면 블루북 (The Bluebook: A Uniform System of Citation)을 들춰가며 판례, 법조문을 비롯한 인용 사항의 형식을 규칙에 맞추어 쓰는 연습을 한다. 파란색 표지의 블루북은 단지 어떻게 쓰는지 뿐만 아니고, 이탤릭체로 바꾸는지, 스페이스는 두는지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예컨대 다음을 참조하라는 의미로 쓰는 See, e.g.,라는 시그널에선 마지막 쉼표를 제외하고 이탤릭체로 쓰거나 밑줄을 친다. 두 번째 쉼표가 이탤릭체인지 아닌지 눈여겨보는 직업군은 변호사 외에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도,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는 그 법원 혹은 담당 판사가 정한 규칙에 따라 써야 하므로 글쓰기에 적용되는 규칙이 무엇인지는 글을 쓰기 전에 조사해 둘 필요가 있다.

글쓰기의 즐거움

말하기와 글쓰기가 좋아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말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소소한 신변에 대한 글, 감상이나 주장을 담은 글을 써서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때는 시사잡지에 의견을 적어 투고를 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를 본격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쓰고 싶어 기웃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업무로 많은 글을 읽고 또 쓰는 것이 일상이 되다가 보면 나의 고민을 문자로 표현하고 거기에 공감과 동의를 얻고, 누군가(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이 주는 보람과 즐거움을 잊기 쉽다. 그때마다 좋은 글을 읽고, 또 좋은 글을 쓰는 즐거움을 상기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변호사들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의 순서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이유로 변호사를 비싼 돈 주고 의뢰한 작가(필자)라고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다.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를 때, 그렇지 않아서 빈 화면을 응시할 때도, 글을 쓸 의욕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한결같이, 업무의 일환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전업 작가와 마찬가지이다. 좋은 글은 내부적으로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외부적으로는 대리인의 이익을 보다 잘 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단지 이메일 답장을 보내고 주어진 시간 내에 글을 쓸 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도록 잊지 않고 고민해야겠다.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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