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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4)-회복적 사법이 피고인에게도 이익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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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4)-회복적 사법이 피고인에게도 이익을 줄까
  • 임수희
  • 승인 2019.05.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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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아니, 어떻게 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지? 이런 사람은 아예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냐?’

얼마 전 어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약식명령 사건 기록 하나를 검토하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실수라고 보기엔 부주의한 정도가 너무나 심했고 사고 결과도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니, 검사는 어떻게 이런 사건을 약식명령으로 청구했지? 정식으로 구공판했어야 하는 거 아냐?’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로 바뀌어 앞 차가 섰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뒤따라가던 차도 속도를 줄이고 섰어야 마땅했겠지요. 그런데 이 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똑바로 전방주시를 안하고 있어서 신호가 바뀐 것을 못 보았을까요, 앞 차가 서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앞 차와 차간거리를 두지 않아 급브레이크로는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요. 미처 속도를 다 줄이지 못하고 앞 차와 충돌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이없이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버립니다. 1차선에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러니 곧바로 차는 중앙선을 넘어 갔고, 제 신호에 따라 마주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버렸습니다.

양 쪽 차량 모두 앞 범퍼가 반쯤씩은 구겨져 버렸고 사람도 다쳤습니다. 중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지만, 결코 가볍기만 한 상해는 아니었죠.

‘대체 어떤 운전자야?’

피고인 신상과 범죄경력조회서를 찾아보았습니다. 40대 중년 여성이었는데, 그 이전까지 교통사고 전력이 없는 것은 물론, 다른 범죄전과도 없었습니다.

‘운전경력이 꽤 될 텐데, 그동안 사고는 없었단 건가? 하지만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니, 초범이라고 무조건 봐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

피해회복이 제대로 되었는지 수사기록 뒷부분의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피고인의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보험회사에서 피해자에게 인적, 물적 손해를 배상했다는 자료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조사 결과, 다행히 피해자가 제대로 배상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나아가 피고인에 대해서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더군요.

‘흠, 그래서 약식명령으로 보낸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니, 운전하는 사람이 정신을 어떻게 놓고 있으면 사고를 이런 식으로 낼 수 있지? 평소 운전 습관도 이상한 거 아냐?’

제 안에서는 여전히 비난의 말들이 올라왔고 한편 걱정도 되었습니다.

‘좀 따끔하게 경종을 울리고 앞으로 조심하도록 금고형에 집행유예를 하면서 준법운전수강명령이라도 붙여야 하는 거 아냐? 교육이라도 좀 받게 해야지, 사고를 또 내면 안 되잖아? 정식으로 재판받게 공판회부를 할까?’

자꾸 엄격해 지는 마음의 긴장을 느끼며, 대체 피고인 자신은 사고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나 싶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남편이 당뇨병으로 몇 년간 고생을 하다 이제 신장 투석까지 받게 되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병원에서 남편이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서, 전화 받고 급하게 가다 보니......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조심히 운전했어야 하는데, 정말 너무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저는, 기록 안에서 딱딱한 잣대로만 ‘피고인’을 보고 어떤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적합할지만 쫓아가던 마음이 순간 탁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고인이라기보다 한 아내인 그 여성에게 좀 미안한 마음마저 들더군요.

‘아니,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이 ‘아,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럴 수 있겠다’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2.
피해자가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피고인에게 추가적인 형사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보험금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화가 나서 피고인을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요.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보험금 외에 추가적인 합의금을 주었다는 기록이 없는 채로, 단지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조사한 피해자진술조서에 피해자가 ‘제대로 배상을 받았다’는 것과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진술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피고인인 그 여성의 진술 태도에 비추어 추측해 보건대, 그 여성분은 사고 초기부터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면서 자신의 상황과 사정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한 전제 하에 종합보험으로 성실히 피해배상 절차를 밟아 주었다면, 피해자로서는 별반 부정적 감정 없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표해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피고인이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람마다 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 그 사정이란 것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이 제대로 전해 졌을 때 설령 피해 당사자라도 피고인을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어서 피고인이 사고 당시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측에 제대로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없었다면 어떨까요? 또는 다른 이유로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3.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겁지 않은 범죄인 과실범의 예로 시작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과실범이나 가벼운 범죄뿐 아니라 매우 끔찍하고 무거운 범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피고인들이 존재합니다.

피고인들도 여러분들이나 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죄책감이나 후회를 가지고 또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비록 일시적일지 몰라도 사과를 직접 피해자에게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양심의 가책과 사과를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불안, 그에 따르는 후회가 뒤섞여 있을지라도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자체는 진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나, 어떤 상황이었나, 어떤 사정이 있었나,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되었다, 나도 그것을 지금은 안다, 그런데 그때는 절박했고 나도 내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후회스럽다, 다시 되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 방법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나는 왜 그랬을까.

법원에 숱하게 써 내는 반성문과 탄원서의 흐름은 모두 비슷합니다.

타인을 향해서 변명과 자기 정당화의 말들로 시작을 하다가도 그것들이 충분히 쏟아져 나오고 나면, 후회와 자책,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잘못을 되돌리고 피해를 회복해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원망, 양심의 가책,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판사에게 잘 보여서 형을 적게 받으려고 거짓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요? 글쎄요.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경우 그 마음만큼은 진심일 거라고 봅니다.

4.
하지만 그런 피고인들에게 우리 형사사법 절차는 ‘방어권’의 보장이라는 이름 하에 그 중 일부만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조차도 피해자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가나 판사를 향해서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그래서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향해서는 어떤 말을 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잘 상정하지 못합니다. 방법이 없다거나 방법을 몰라서 이전에 피해자를 향해서 또는 피해자와 어떤 말을 하고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특히 피해를 ‘갚을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거나 저지른 짓이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어떤 것이어서 적절히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종종 피고인들은 그냥 입을 닫아 버리고 포기합니다.

이러한 피고인들에게 적절한 절차(process)와 유능한 절차조력인(facilitator) 내지 조정자(mediator)가 제공된다면 어떨까요. 후회와 반성과 사과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피해자를 향해서 직접(이 말이 꼭 ‘대면’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편지 등을 통한 비대면 방식으로도 피해자를 향한 직접적 소통을 가능하니까요. ‘국가기관에 대한 진술’에 대립되는 의미로써입니다)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떨까요.

그러한 기회를 통한 피해자와의 대화와 소통이, 혹시 더 나아간 피해자에 대한 이해, 즉 자신이 피해자에 대해 저지른 짓이 피해자에게 끼친 실질적인 해악과 영향을 더 잘 알게 해 주어서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지는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회복적 사법 절차(Restorative Justice Process)인데요.

피고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넘어서서 진정한 책임(accountability)을 지고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결국 피고인에게 형사재판에서 처벌의 감경이나 면제라는 양형상의 이익으로 연결될 것이고, 피고인이 좀 더 수월하게 사회 내에 재통합되게 함으로써 다시 재범할 가능성을 줄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5.
회복적 사법을 형사절차에 도입하여 실행하고 있는 전 세계 - 이는 단지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유럽과 북미,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말 그대로의 전 세계입니다 - 의 연구 결과에서 그 증거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회복적 사법의 실행 결과를 평가한 많은 연구 자료들이 있는데, 피고인의 재범율을 줄여 준다는 연구 결과가 가장 흔합니다. 영국의 2001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책 연구 결과에 의하면 회복적 사법이 재범율을 14% 감축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https://restorativejustice.org.uk/resources/moj-evaluation-restorative-justice 참조), 대면조정의 경우는 분리조정(비대면조정) 보다도 더 재범율이 낮다고 합니다.

북미와 유럽, 오세아니아에서 회복적 사법 절차를 피고인들이 만족스러워 하고 형사절차가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요(https://www.justice.gc.ca/eng/rp-pr/csj-sjc/jsp-sjp/rr00_16/p3.html 참조). 이렇게 피고인들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면 재범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함께 연구 결과로 나와 있습니다.

재범율이 낮다는 말은 피고인의 사회재통합율이 높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피고인이 좀 더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피고인이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를 통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에게 벌어진 자기 행위의 결과를 좀 더 실질적으로 이해해서 피해를 회복할 방법을 찾음으로써 형사처벌을 넘어서는 진정한 책임을 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재범을 덜 저지르고 사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좋은 것을 한시라도 빨리 도입하지 않은 채 미루고 있을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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