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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북러정상회담 :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길을 잃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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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북러정상회담 :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길을 잃는 것일까?
  • 신희섭
  • 승인 2019.04.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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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4월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만난다. 북한의 정권교체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세워준 소련의 후신이지만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탈 냉전이후 소원했다. 2000년, 2001년, 2002년, 2011년 4번 정상회담만을 가졌을 뿐이다. 게다가 2011년 마지막 정상회담은 푸틴이 섭정하던 때였다.

양자가 만나는 이유는 단순해 보인다. 미국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국제‘체제 불만자’들이다. 불만자끼리 만나니 특별할 것이 있을 리 없다. 당구용어를 빌리면 “대충치고 쫑 본다”고 대충 어림짐작만으로 알 수 있다. 미국에 신호보내기(signaling)와 경제적 이익 공유(log-rolling).

북한은 돌파구가 필요하다. 지난 2월 호치민에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게다가 미국이 북한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만 확인하고 온 셈이다. 후원자 중국도 믿기 어렵다. 2018년 7월 시작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전쟁’을 방불케 하는 조치로 중국도 북한은 뒷전이다. 국제제재로 한시가 급한 북한에게 ‘중재자’ 남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답답한 와중에 러시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러시아는 풍부한 가스를 통해 전력공급을 해줄 수 있다. 게다가 자금지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러시아도 돌파구가 필요하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도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가 국제유가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중국이 국제제재 동참으로 빠진 사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교류를 늘려왔다. 극동개발에 관심이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과의 협력은 부동항 확보의 기회다. 게다가 전략적으로 얼마나 쓸모 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북한의 지하자원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불만자들은 중국에 대해서도 같은 신호를 보낸다. 러시아의 북한 영향력 강화로 중국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과거 냉전시절 북방 3각 편대처럼.

사실 우리의 관심은 북-러 정상회담의 ‘표면적 목적’보다 정상회담의 ‘숨겨진 의도’에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2002년 정상회담과 맥락이 많이 닮았다. 2002년 8월 김정일은 푸틴을 만났다. 그리고 나서 같은 해 10월 켈리 미국 특사의 북한 방문과 북한의 핵개발시인이 있었다. 2차 핵 위기가 터진 것이다. 이 역사유추는 북한이 비핵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책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케 한다.

이번 회담의 동기는 2002년 회담과 다르다. ‘러시아 지원확보에 따른 북한 강경정책선회’의 전주곡은 아니다. 북한에게 핵문제에서 러시아는 핵심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다. 북한 핵의 최종 종착역은 미국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무기는 부담이다. 더 크게 보면 러시아외교에서 북한은 핵심지역도 아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북한에 크게 베팅할 이유가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는 양자 간의 핵심의제가 아니다. 이들이 핵문제에서 원론적 차원의 ‘비핵화’를 넘어설 것 같지는 않다. 이보다는 양자가 “만나는 것” 자체가 중요한 회담이다. 회담이 끝날 때 양자는 미국의 속을 긁어 놓은 몇 가지 합의를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반응을 주시할 것이다. 딱 그 정도.

이 기획의 발안자인 푸틴은 북한을 끌어들여 미국과 중국에게 자신의 영향력이 있음을 표시하면 그만이다. 북한핵문제를 ‘남-북-미’사이에서만 논의하는 것에 거부할 수 있는 발언권 확보면 끝이다. 정치적 비용이나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의 의도는 좀 다르다. 북한은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다자적인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미국을 압박한다. 실제 만들 생각은 없지만. 북한 핵의 주된 목적은 미국을 끌어들여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이 직접 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국제제재만 해제해주면 된다.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북한 입장에서 시장의 생사여부는 미국 손에 달렸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북한이 핵문제를 ‘다자화’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게다가 과거 6자회담도 해보지 않았나. 그래서 북한은 ‘다자화 제스처’로 미국의 전략적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대한민국의 전략 방정식에 수식을 추가하고 싶은 것이다.

북러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길을 잃게 될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북한은 러시아를 미국과 바꿀 생각은 없다. 게다가 북한이 ‘비핵화’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북한에겐 비핵화 말고 다른 카드가 없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북한은 자신들이 ‘만능의 카드’라고 믿는 비핵화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군비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모호한 ‘정치적’ 수사이다. 비핵화는 '해체(dismantlement)'와 ‘핵군축(disarmament)’처럼 목표와 방향이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핵무기와 기술을 원천적으로 폐기하여 핵을 보유하기 이전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해체’이다. 반면 ‘핵군축’은 ‘핵보유 국가’ 위치에서 핵무기를 (부분적으로)축소하는 것이다. 호치민에서의 노딜(no deal)은 미국이 전자를 원하고 북한이 후자를 원하는 것을 입증했다. 게다가 수식어로 되어 있는 ‘한반도’의 범위도 명확치 않다.

북한은 급하다. 급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에 말리면 안 된다. “불만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국제관계의 역사적 교훈이다.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미래)은 포기해야 하는 것(현재)에 비례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북한이 정확히 무엇을 포기해야 하며 그럼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를 명확히 해주면 된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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