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3)-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에게 무엇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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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3)-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에게 무엇이 좋은가
  • 임수희
  • 승인 2019.04.2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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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피고인 OOO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어제 피고인에 대한 형사재판을 법정에 앉아 지켜보는데, 너무나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이 법정에서 한 말은 한마디도 사실이 아닙니다. 모조리 거짓임을 꼭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저를 찾아오거나 사과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수백만 원의 수술비를 들여 고통스런 치료를 받는 동안 제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 1원의 치료비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일을 못해 생계도 막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언젠가 딱 한번 저에게 전화를 해서는, 무작정 50만 원에 합의 보자면서 저도 잘못했다, 유발했다는 식으로, 아픈 사람한테다 대고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길래,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린 적이 있을 뿐입니다. 수술비만도 수백만 원이 나왔는데 어떻게 50만 원에 합의를 봅니까. 그리고 사람이라면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피고인이 법정에서 판사님 앞에서만 착한 사람인 척하고, 반성한다, 잘못했다 하면서 완전히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더군요. 피고인이 저에게 사과를 하고 피해를 회복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제가 받아 주지 않았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법정 뒤에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제 심정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분통이 터지고 억울합니다. 저는 절대 합의해 줄 수가 없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현명하신 재판장님께서 피고인의 거짓된 모습에 절대 속지 마시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나오지 않도록 피고인을 엄히 처벌해 주시기를 간곡히 탄원합니다.’

여러분도 읽으시는 동안 이 피해자와 함께 점점 화가 나실 것 같아요.

‘아니, 이렇게 나쁜 사람이 다 있다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늘상 숱하게 접하는 피해자의 진정서입니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한다며 사죄하는데, 피해자는 그런 피고인이 거짓이라며 분노에 찬 엄벌 진정서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죠.

2.
놀라우신가요. 아니, 피고인들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니 원래 나쁜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까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판사는 위와 같은 피해자 진정서가 들어오기 전까지 피고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보는 피고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잘못했다면서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제발 용서해 달라며 판사에게 계속 머리를 조아립니다. 판사가 독심술을 쓰는 것도 아닐 텐데 그 진심을 꿰뚫어 알기란 쉽지 않겠지요.

그리고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피고인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 자체는 진실일 겁니다. 법정구속 되서 징역을 사느냐, 마느냐,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판사에게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온 마음을 바쳐서 잘못을 빌고 간절히 선처를 구하는 것만큼은 진심일 겁니다.

한번은 어떤 피고인이 법정에서 무릎을 꿇고 빌겠다고 하는 것을 말린 적도 있습니다. 그 간절함, 그리고 후회스러움과 반성은 진지하고 순전한 것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다만 그 상대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판사와 법원, 국가를 향한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을 뿐인 거죠.

3.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피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들은 피해자의 곤경이 아니라 자신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형사절차의 복잡성과 범죄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재판과정으로 인해 자신의 법률적 상황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회복적 사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제어의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해 보았는데, 어떠세요. 아하! 하고 이해가 되시는지요.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자신을 찾아오고 자신에게 사죄를 하고 필요한 배상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막상 가해자는 피해자 자신에게는 속칭 ‘쌩까’ 버리고 오직 판사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억장 무너지는 상황을 마주하는 겁니다.

만약 그러한 일이 어쩌다 한번, 어떤 아주 나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만 벌어진다면 그 피고인 개인을 비난할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는 위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오히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찾아가 진정으로 사죄를 하는 것은 드물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시스템 자체가 내포한 문제로서 시스템 자체를 살펴보아야 하지, 개개인을 비난하거나 칭송할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요.

4.
국가가 세워지고 국가에 의한 형사사법 시스템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국가는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가 나서서 범죄 가해자를 단죄함으로써 사적 복수의 연쇄에 의한 사회적 갈등과 위험을 중지시키고 일단 외형적으로는 사회의 평화를 이루고 있는 듯 보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범죄 가해자를 단죄한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적 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범죄 가해자가 한 행위를 확정하고 그에 대하여 책임원칙에 입각한 처결을 한다는 매우 의미 있는 인류사회의 진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원래 범죄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자 범죄 피해가 발생하게 된 갈등 내지 문제의 당사자임에도,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확정하는데 필요한 증인의 지위, 즉 형사사법절차의 부수적, 보조적 지위에 머물게 된 것이지요.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범죄 가해자를 상대하다 보니, 형사절차에서 국가로부터 범죄자가 불필요한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적법절차를 지키고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해 지고, 정작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를 범죄피해로부터 회복시키고 구제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로 되어 버리는 것이구요.

국가와 범죄 피고인 사이의 형사절차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서 결국 ‘형벌’을 정하는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에 형사사법기관과 피고인 모두의 관심과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으니, ‘그러면 범죄 피해자는 어떻게 구제하고 도울 것인가’는 역시 차후 문제로 될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입장에서, 범죄로 인해 곧장 수사기관에 입건되어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이어 기소되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게 될 때, 무엇이 그의 가장 주된 관심을 끌게 될까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일까요.
아니면, ‘피해자는 지금 어떨까. 괜찮으려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가 될까요.

당연히 전자일 겁니다. 즉, 앞으로 내가 어찌 될 것인가, 구속될 것인가, 징역을 살게 될 것인가, 중벌을 면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거짓말이라도 해서 형사처벌을 아예 모면할 방법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될 겁니다.

기껏 피해자에 대한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그건, ‘혹시 피해자와 합의해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써 준다면 내가 판사로부터 선처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겠지요.

범죄 가해자인 피의자, 피고인들이, 피해자가 보기에 일말의 양심도 없고 죄책감도 없어 보이거나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와 같지 않을까요.

피해자가 아니라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언론을 통해 늘 접하는 범죄자나 가해자들의 모습이 당당하리만치 뻔뻔해 보이고, 뭘 잘했다고 저렇게 다투나 싶은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형사사법 시스템 자체의 한계 때문은 아닐런지요.

이런 가해자들을 보는 피해자들은 아마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가 치솟을 겁니다. 범죄로 인한 피해 자체뿐 아니라 그 후속 과정에서 가해자의 태도나 대응 때문에 더 고통을 당했다는 피해자를 우리는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5.
현재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당하면, 이를 국가에 신고하고, 국가에 범죄 피해 사실을 증언한 후,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해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피해자가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꼭 대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인지를(물론 가해자는 자기가 어떤 행위를 했는지 그 자체는 알겠지만, 많은 경우 그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와 영향을 주었는지, 그 해악의 실체는 잘 모릅니다)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즉 가해 행위가 자신에게 끼친 결과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피해를 당했고 어떤 영향이 남아 있는지, 그 해악의 실체를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피해를 회복하고 범죄의 결과와 해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피해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수 있고, 가해자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 가해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구체적으로, 잘못을 인정받고 사과를 받고 싶다든지, 치료비를 얼마를 받고 싶다든지, 또는 배상금을 얼마를 어떻게 받고 싶다든지, 그 밖에 어떤 조치들을 해 주었으면 하는지 등등 속 시원히 얘기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피해자가 신체적, 정서적으로 안전하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안전한 공간과 도와주는 중재자들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가해자에게 그 말들이 잘 전해질 수 있다면,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그 해악의 실체와 피해자의 고통을 진짜로 보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개중에 진정성 있는 가해자들은 자발적으로 피해자에 대해 적절히 책임 있는 조치들을 취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과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진정성 있게 반응하는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고 향후에 혹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책임 있는 조치들, 그 밖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그로써 피해자에게 범죄 피해로부터 실질적인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신속하게, 자발적으로, 원만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조력자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얼마나 좋을까요.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에게 이런 좋은 것들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종래 형사재판에서 단지 증인에 불과한 수동적 지위에 있는 피해자가 회복적 사법 패러다임에서는 절차의 중심에 있게 됩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절차에 참여하면서 범죄로 인한 피해 결과와 받은 고통, 그로 인해 처한 현재의 어려움과 고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요청하고 확실한 방식의 책임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좋을 것을 안 하고 계속 미루고 있을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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