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정임 시인의 “이름 부르기”, 나경원 원내대표의 영혼 없는 앵무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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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정임 시인의 “이름 부르기”, 나경원 원내대표의 영혼 없는 앵무새 노래
  • 오시영
  • 승인 2019.03.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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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당당함은 아름답다. 그 안에 탐욕이 없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말은 당당함을 잃은 자의 자기 폭로이다. 말을 추상적으로 하는 사람은 대부분 진실한 사람이 아니다. 지나치게 1과 2를 구별 짓는 것 역시 아주 잘하는 일인 것은 아니지만, 1도 아니고 2도 아닌 무구별은 진짜 위선자의 자기 폭로이다. 자기를 지나치게 폭로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기를 감춘다. 폭로는 언어와 행위를 통해 행해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폭로는 감춤에서 나온다. 사람은 영물인지라 감추는 자의 감춤에서 감추는 자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감추는 자만이 자기를 완전히 감추었다고 착각할 뿐, 그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세상에 빛이 있고,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빛으로 보여 지는 어둠을 보고, 소리로 파장되는 진동을 느낀다.

한국유치원총연합이 회계처리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을 철회하지 않으면 유치원 개원을 연기하거나 폐원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협박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교육부의 엄정한 법집행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폭로로 촉발된 사립유치원 공정회계처리시스템 도입을 극력 반대하면서, 학부모와 유치원 아이들을 볼모로 교육부, 정부를 겁박하던 한유총이 국민의 싸늘한 외면과 정부의 강경한 법집행 앞에 항복을 하고 만 것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강경한 법집행 태도는 참으로 당당해서 아름답다고 칭찬을 들을 만하다. 이전부터 사립유치원은 정부의 예산지원을 늘려달라거나 회계감사 등에 반발하며 유치원 휴원이나 폐원이라는 극단적 배수진을 치고 교육부와 국민을 겁박하여 왔다. 유치원이 며칠이라도 문을 닫으면 맞벌이 가정에서는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는 유치원대란사태가 발생하게 되어 정부가 꼼짝하지 못할 것이라며 간을 보아 왔다. 그들의 그러한 주장이 통상 이겨왔던 경험은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로 인한 국민적 지탄 앞에서도 동일한 행태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사립유치원의 주장을 옹호하며, 이번 사태가 발생한 책임의 일단이 정부에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 이면에는 사립학교재단을 운영하는 국회의원들이 다른 정당에 비해 많았던 자유한국당의 이해관계가 있음은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유한국당은 손혜원 국회의원에 대한 국정조사, 신재민 재경부 사무관의 국채상환 관련된 잘못된 폭로 등에 대한 국정조사 등을 주장하며 국회를 공전시켜 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국정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 개원에 동의할 수 없다며 1월, 2월 임시국회를 사실상 보이콧하였다. 그 이면에는 늦어도 3월 중순까지 여야 합의를 이루어야 할 공직선거법 개정 문제를 보이콧 하겠다는 정치적 술수가 있다. 비례연동형선거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바른미래당 등 야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자유한국당의 의석이 내년 총선에서 대폭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거대야당의 지위를 내어줄 것을 두려워한 지연작전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요구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무시하자 결국에는 스스로 항복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3월 임시국회를 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당함이 아름답다. 남발되는 국정조사요구권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국회를 열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또 다시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 될 뻔했다. 되지 않는 생떼를 쓰는 경우 이를 단호히 거절할 줄 아는 당당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정치적 수사를 듣다 보면 영혼 없는 앵무새의 말솜씨라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상황에 맞춰 “똑똑한 말”을 하긴 하는데, 그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기보다는 공허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번 5시간 30분 릴레이단식이 그러하더니, 손혜원 의원에 대한 국정조사 조건을 받아들이면 국회를 열겠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의 예이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엄청난 경제위기에 안보위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정상적 삶들이 이어지고 있다. 거시적 측면에서 그렇다. 김진태 의원 등의 5·18 망언에 대해서도 오도된 사실을 무시한 채 해석의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사실과 해석을 구별 못하더니,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평화는 사기라는 망언까지 내뱉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화해 및 비핵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 아닌 평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좌절도 있을 수 있지만, 평화가 궁극으로 지향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 천명한 대통령에 부여된 평화통일책무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하였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완전 결렬되었다고 표현하는 대신 하루 속히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최종 실패라고 결론짓지 않고 있다. 까닭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 간의 대화를 통해,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고리를 붙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기라고 평가하는 것은, 오늘 대한민국이 지구에서 사라진 경우에는 해당될 수 있겠지만, 지난한 외교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정임 시인의 “이름 부르기”라는 시를 읽는다. “빗방울이 붙잡고 있는 장미 한 송이/ 장미 한 송이가 붙잡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 발아하지 못한 입안에서 웅크린 말/ 손가락도 발가락도 없는 것들이/ 서로 이름을 부른다/ 몸을 당긴다// 내가 너를 부르고/ 네가 나를 당긴다/ 뒤엉켜 구르다가 하나가 되었다/ 이슬방울이라 하고/ 빗방울이라 하고/ 땀방울이라 하고/ 눈물방울이라 하고// 보이지 않는 궤도를/ 소나무 별, 앞산 별, 비구름 별이 지나간다/ 네 이름을 붙들고 날마다 도는 길/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11월 장미 한 송이” (전문, ‘섬광으로 지은 집’ 수록, 천년의 시작, 2019년 간).

시인의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이정임 시인의 “이름 부르기”는 독자에게 “강력한 공감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임 시인은 한 방울의 빗방울에서 수많은 행성들, 우주의 상관성을 느낄 수 있느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빗방울이 잠자는 장미를 꽃피우고, 그 장미의 촉수가 우주를 뻗고 뻗어 행성에 다다른다고 감응하고 있다. 이처럼 사소한 단초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면 광대무변한 우주에까지 다다를 수 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입안에서 채 나오지 못한 생각의 언어들이, 그 발가락도 없고 손가락도 없는 그 언어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며 이름을 부르는 필연을 노래하고 있다. 비록 아직 발아되지는 않았지만, 심중에 깊이 숨겨진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몸을 당기며 하나가 되자고 속삭이며, 뒤엉켰다가 결국엔 하나가 된다고 간파하고 있다. 이정임 시인의 관찰력은 대단하다. 이 시인의 말대로라면, 지금 북미 간에, 남북 간에 비핵화와 경제완화를 통한 윈-윈 정책이 성공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발아되지 않은 현상에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내가 너를 부르고, 네가 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 당기게 되고, 엉키게 되고, 결국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이정임 시인은 말한다.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이정임 시인은 계속해서 말한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는 새벽에 맺혔다가 해 뜨면 사라지는 이슬방울이 그 시작이라고, 그게 하늘로 올라가 빗방울 되어 다시 이 땅을 찾고, 그게 우리에게 노력해야 하는 땀방울로 맺어지고, 우리의 깊은 슬픔을 토로해내고 기쁨을 노래하는 눈물방울이 될 것이라고. 이정임 시인에게 서로의 이름 부르기가 뒤엉켜 하나가 되는 것은 흩어져 있는 자들의 눈물방울이 하나가 될 때 완성되는 우주의 행성인 것이다, 그것도 살아 있는. 보이지 않는 궤도 위를 수많은 소나무 별이, 앞산 별이, 비구름 별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비록 모르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염원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가 모르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이고, 수많은 가시를 가진 나무이고, 추운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청청함을 가진 지조 있는 귀한 나무이다. 그게 이름 부르는 우리의 별이 되어 변함없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궤도 위를. 우리가 모른다고,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궤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시인의 염원은 그 궤도 위를 우리 앞에 보이는 앞산 별이 되고, 우리를 씻고 지나가며 우리를 단련시키는 비구름 별이 되어 우리의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는 것이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비 내리는 11월 장미 한 송이”를 한숨 쉬듯 가슴에 품는다. 첫 연에서 언급한 “빗방울이 붙잡고 있는 장미 한 송이”가 우주를 품는 그 장미 한 송이가 비 내리는, 초겨울로 접어드는 추위 속에서 홀로 향기를 발하는 11월의 장미 한 송이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하자고 노래하고 있다.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지금이 11월이더라도 서로 이름 부르기를 멈추지 말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이름 부르기를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은 단절되고, 모든 것은 끝난다. 그 끝남이 윈-윈의 끝남이면 좋겠지만, 양쪽 모두 실패로 끝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보이지 않는 궤도 위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면 서로가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름 부르기를 끝내라고, 사기라고 호도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 중에는 지식인도 있고, 무식인도 있고, 가진 이도 있고, 없는 이도 있고, 나이든 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이름 부르기”를 멈춘 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도로 북한의 핵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무장 강화로 나가자는 것인지, 남북 간에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죽이는 일에 열중인 자는 결코 제대로 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미움을 항시 가슴에 품고 살면 미워하는 이가 스스로 지옥 불구덩이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의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내가 먼저 괴로워 못 견디겠던데, 참 알다가 모를 일이다.

당당함은 아름답다. 이번 교육부의 사립유치원에 대한 대응태도나, 자유한국당의 생떼 국정조사요구에 대한 대처는 당당해서 아름다웠다. 정치라는 게 주는 게 있고 받는 게 있어야 한다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긴 것은 긴 것이다. 원칙이 정의로울 때는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것도 모든 것을 이현령비현령으로 대처하는 나약함이 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닌 것이라 해야 한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현직 판사 8명과 전직 판사 두 명에 대하여 불구속기소하였다. 모두 66명에 대해 비위 사실을 대법원장에게 통보하였다. 슬픈 것은 이러한 불구속기소가 현실화되었음에도 그들이 사표를 내는 등 사죄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죄를 지은 자가 법대에 앉아 남을 재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확정된 재판을 통해 사실이 규명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판결은 다만 예전에 그러한 범죄사실이 있었다는 확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 그런 범죄가 존재하는 사실이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여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범죄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범죄가 재판으로 확정되는 그 기간 사이에도 범죄 사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재판 경험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판사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며 그 자리에 버티고 있으면서 다른 이들을 심판하는 것은 아예 염치를 모르는, 후안무치의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임 시인은 말한다, “이름 부르기”는 “영혼 없는 앵무새의 뇌까림”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아름다운 당당함으로, 정의에 입각한 원칙대로, 하나가 되는 날까지 눈물방울 맺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오늘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나, 그대가 부를 이름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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