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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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 신희섭
  • 승인 2018.12.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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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뜨문뜨문했다. 운동의 불꽃 의지를 불태우며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뵙게 된 지인분이 묻는다. “어떻게 지냈소?” 나는 고해하듯이 인사를 건넸다. “요즘 운동을 안 해 몸이 좀 불었네요.”라고. 그러자 지인 분께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라고 하신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 이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짧은 한 문장짜리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자꾸 되씹어 보게 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정말이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왜 이 말이 이렇게 강하게 여운을 남길까? 생각해보니 이 문장자체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몸이 거짓말을 안 한다는 이야기는 진리이다. 과한 칼로리 섭취, 과도한 일, 과소한 운동은 몸을 망가트린다. 그리고 그것은 몸을 통해 직접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만 젊을수록 잠복기가 길 뿐.

두 번째 이유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듣는 이의 건강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만약 열심히 운동을 하여 건강한 상태이거나 건강을 다시 회복한 상태일 때 듣는다면 이런 언급은 칭찬이자 수고했다는 의미의 포상이다. 반대로 건강관리가 소홀하거나 건강이 안 좋을 때 듣는다면 일종의 핀잔이거나 질책이다. 그러니 말한 이의 의도와 관계없이 듣는 이의 ‘상황’이 이런 저런 의미를 해석하게 한다.

세 번째 이유는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몸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럼 무엇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일까?

몸이 아니라 생각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생각’에서 하나 더 나가면 ‘의도’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도는 (우리를) 속일 수 있지만 몸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 완성형 문장이다.

말 한 마디가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던 것은 주로 이 때문이었다. 마음은 몸과 다를 수 있다. 마음은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상대방도 속일 수 있다. 멀리 역사를 찾지 않더라도 주변에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던 경험과 혹은 상대방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들이.

생각, 의도,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또한 어느 국가와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들. 안정적인 관계구축을 위한 시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사적인 영역에서 가족이라는 제도, 결혼이라는 제도, 우정을 확인하기 위한 모임들. 국내정치에서 정치인과 민간인들 간의 타협인 법치주의,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사회민주주의와 조합주의적 합의와 타협. 국가 간의 동맹과 세력균형에 대한 합의와 수많은 제도들.

그렇다면 이 실험들은 모두 성공했는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많은 제도들과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의도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개인적인 고통과 번민, 가족 내의 갈등, 사회내부의 균열, 국가 간의 분쟁들은 여전하다. 제도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변화무쌍한 생각, 의도, 마음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럼 해법은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한 현실주의 철학자들의 위대한 가르침은 “의도를 믿지 말라”이다. 그들은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따라야지 ‘의도’를 따르고 ‘의도 해석’에 주안점을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의도와 생각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운명의 여신(Fortuna)’과 같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역사학자들도 좋은 의도가 파국을 가져올 수 있다고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경고 해왔다. 그들은 상대방을 억지(deterrence)하기 위한 강경정책으로 벌어진 1차 대전이나 상대방을 달래서 전쟁을 피하려고 했던 1938년 뮌헨의 사례를 보라고 한다.

이러한 철학과 역사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타인의 의지 해석에 매달리는 일을 반복한다. 마치 시지프스처럼.

2018년 한 해는 대한민국에서 북한이 가장 중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시작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민간부분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합동공연도 있었다. 2018년을 마무리 하는 12월 26일. 남북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착공식이 개최되기도 했다. 이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한민국 내부는 분열하여 갈등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 정전체제 해체 - 평화체제 구축의 연결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갈등이 사라지고 남북이 경제통합의 단계로 나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과연 북한은 바뀌었는지를 두고 남남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처럼. 얼어붙은 경제상황과 이벤트성 대북정책들의 누적은 대북정책에 대한 정책 피로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문재인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의 상황은 단순하다. 그러나 모순적이다. 북한의 생각과 의도에 이 판의 모든 것이 달려있다. 남-북-미 3각관계의 중심에서 결국 북한이 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정책대상이 정책주체인 것이다. 변화가 절실할 것이라고 예상(희망)되는 북한은 그동안 쌓아둔 ‘신뢰’라는 자산이 없다. 게다가 부족한 국력, 안보우려로 쉽게 비핵화를 몸소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 핵이 없는 우크라이나와 리비아가 공격받는 것을 본 상황에서 북한이 쉽게 핵카드를 버리지 못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인 상황에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할 유일한 요인은 북한의 ‘의지’뿐이다.

'운명의 여신(Fortuna)'처럼 의지는 변화무쌍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변화의지가 확고하기를 바라지만 이를 우리 정부가 통제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의지는 희망과 절망 모두의 온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이 갈등하는 이유이다.

2019년. 북한을 실제 변화하게 만들고 싶고 더 장기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면 한 가지만 정확히 기억하면 된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러나 생각, 의도, 마음은 모른다. 그러니 북한에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북한의 ‘변화의지’라면 북한이 이것을 먼저 보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국제제재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지못해 변화를 원하든, 정상적인 국가의 지도자로서 더는 쪽팔리고 싶지 않은 평판 때문에 변화를 원하든, 북한이 먼저 행동을 하면 된다. 그것도 말이 아닌 몸으로.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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