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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70 / 신입 감정평가사에게
이용훈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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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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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몸담고 있는 회사도 새 얼굴을 맞을 계절. 29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예비 감정평가사가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등 떠밀리듯 면접을 치렀다. 각 가정은 살림살이 팍팍해졌다고 하고 대졸 인력은 취업난을 호소하는 작금에, 면접이 숨 못 쉴 정도로 몰아쳤다고 해도 당사자는 행복한 비명이다.

기회는 균등하게 제공되지 않았다. 오해 소지가 있을까 싶어 첨언하면, 지원서류를 안 받아 주는 곳은 없다. 면접장까지 부름 받는 사람이 한정됐기에 지원 기회는 열려 있지만 면접 기회는 어느 정도 막혀 있다는 말이다. 적게는 1-2곳, 많게는 6-7곳 면접 기회를 얻었다고 들었다. 면접관으로 들어가, ‘면접횟수가 어떻게 되죠?’ 가장 먼저 던져 본 말이다. 표면상으로는 ‘면접 분위기는 어느 정도 알죠?’고 내심 ‘혹 여기 꼭 안 돼도 다른 곳에서 불러 줄 수도 있겠네!’하는 자위다. 눈 초롱초롱한 신입들의 기대를 저버릴 때의 미안함을 에둘러 표현하고 싶어서.

이들이 낸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 두 서너 장이 이들의 입사를 판단하는 기초자료다. 블라인드 면접이 정착되지 않은 이 업계가 어쨌든 덜 선진화(?)된 채용 관행을 고수하고 있는 셈. 이렇다보니 출신지역, 출신학교 심지어 군 생활 이력이 고스란히 면접관의 사심을 끌어낸다. 학연, 지연, 군연(軍緣) 모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 결정적인 채용 요건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동점자를 놓고 저울질할 때는 깃털 하나 정도의 무게는 가중시키는 요소다. 딱히 화려한 이력이 있을 리 없을 나이에 고만고만한 자기소개서 그리고 긴장된 얼굴과 약간 떨리는 음성, 좌판에 얼음 덮어 쓴 고등어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걔 중 신선해 보이는 생선 고를 때의 조바심이 면접관이 피하지 못하는 굴레다. 선택해야 하는 고역이 있다.

전문자격자 집단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딱 두 종류다.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을 갖춘 사람, 출중한 업무유치 능력을 보일 사람.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신입사원은 부득이 5년에서 길게는 10년 누군가의 업무를 처리해 주어야 한다. 이들에게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 능력이나 영어 회화 실력 등을 물어보는 이유다. 요즘 대졸자는 대학 과제 발표, 팀 프로젝트 경험, 어학연수나 교환 학생 경력을 주장하는 식으로 밥만 축내지 않을 일꾼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언제까지 남의 일만 해 줄 수는 없다. 연차가 쌓이면 본인이 업무를 유치하고 계약을 성사시켜, 이제 몇 년 전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신입사원에게 일거리를 던져 줘야 한다. 돈 좀 벌어 올 수 있는 사람은 직원에서 주주사원으로 승급될 것인데, 면접 자리에서 그 몇 년 후의 미래를 애써 그려보는 것이다. 고향이나 출신 학교 등을 보고 인적 네트워크 활성화 가능성의 단초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1인당 10여 분 남짓한 면접 시간, 면접관은 이런 식으로 지원자를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필자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손이 더뎌 구박받을 신입도 시간과 경험이 응축돼 언젠가 실력자로 발돋움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내가 알고 또 소개받고 그도 아니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친분을 맺을 누군가가 내 밥벌이 정도 못 챙겨주겠는가. 공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 잠깐 몸담았던 필자도 꾸역꾸역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먹고 살고 있다. 감정평가업무는 소수의 천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람을 축재수단의 하나로 여기는 장사꾼도 롱런하지 못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누군가가 적임자다. 국민과 기업과 정부의 재산권이 걸린 일, 보상과 절세와 과세와 부담, 교환과 취득과 매각과 관리, 정보제공과 의사결정으로, 금융과 개발의 지원업무로 이 세상의 모든 재산과 그렇게 촘촘히 얽혀 있다. 자산으로 인해 구축된 이런 네트워크가 잘 운용, 유지될 수 있도록 건강한 소리 하나 보태는 일일 뿐. 기껏해야 재판정이 주 무대인 판사와 달리, 직접 실물을 보고 재산권을 숫자로 전환하는 일을 수행하는 현장 재판의 일을 해야 한다. 판사처럼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현장과 부딪칠 적극성도 필요하다. 건강한 소리를 내느냐 잡음을 양산한 것인가는 직업 양심이 가를 일.

올해 면접관의 자리에 앉은 자로서, 지원자에게 ‘이 몇 장의 종이로 여러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당락은 여러분의 살아온 날, 여러분의 능력을 공식적으로 판단 받아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 날 면접관의 취향, 기분과 어느 정도 맞았는지에 불과할 수 있어요’ 거듭 양해를 구했다. 이제 면접 자리에서 뵙지 못한 더 많은 29기 감정평가사 합격자 후배들에게 이 한마디만 건네고 싶다. ‘지금도 앞으로도 쭉 상식적인 사람이 되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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