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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2)-범죄피해자의 보호와 형사조정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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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2  14: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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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22살인 최유진은 입대를 앞두고 환송회를 해 준다는 동네 후배들을 만나서 함께 술을 신나게 마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친하게 지냈던 후배인 21살 구동매와는 한 잔 더 하자고 마음이 맞아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비틀 2차 자리를 찾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21살 김희성과 그만 한 쪽 어깨가 서로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좁은 보도에서 남자 둘이 어깨를 걸고 가니 지나가려던 사람과 부딪히기 십상이었겠죠.

“길도 좁은데 다른 사람들도 좀 생각하고 다녀! 이 새끼들아!”

“뭐라고? 이 새끼가? 너나 눈 똑바로 뜨고 다녀!”

혈기왕성한 청년들인 그들은 곧장 서로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날렸습니다. 김희성은 몇 번 주먹을 날렸으나, 최유진과 구동매가 합세하여 덤비자 결국 눈두덩이 터지고 코피가 철철 나며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런, 이들은 어찌되었을까요. 이후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김희성은 터진 눈두덩이 안쪽으로 안와골절이 되었고 코피는 멎었지만 비골골절도 되었습니다. 초진만으로도 6주 상해 진단이 나왔습니다.

최유진과 구동매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죄로 입건되어 버렸습니다.

최유진과 구동매는 김희성이 먼저 욕설로 시비를 걸었고 자신들도 김희성의 주먹에 맞았다고 억울해 했지만 별다른 상처도 없었고 워낙 김희성의 피해가 컸기에 김희성이 때린 부분은 입건도 되지 않았습니다.

최유진과 구동매가 술 깬 후에 몹시 후회를 했지만, 어쨌든 큰일 날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입대를 앞두고 있던 최유진은 자칫하면 군대에서 재판을 받게 될지 모를 상황이었고, 구동매는 어릴 때 싸움질로 기소유예를 두 번이나 받은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거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지요.

한편 피해자 김희성의 상태도 심각했습니다. 눈과 코를 수술해야 했고 잘못하면 실명이 될 수도 있거나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최유진의 어머니가 병원으로 찾아가 김희성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수술 직후 아직 얼굴이 엉망이었던 김희성은 물론 그 부모까지 화가 많이 나 있었기에, 절대로 합의는 해 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던 최유진의 어머니는 공탁이라도 하려고 돈을 구하여 배상금 600만 원을 김희성 앞으로 공탁했습니다.

자,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유진과 구동매는 처벌을 받았을까요? 김희성의 피해 배상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2.
이 사건은 제가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2013년에 형사재판을 담당하면서 처리하였던 실제 약식명령 사건 중 하나입니다. 물론 당사자의 가명은 인기 드라마 주인공 이름으로 썼지만요.

약식명령으로 처리했다면 약하게 벌금으로 끝난 것 아니냐고요? 피해가 중한데 너무 가볍게 처리된 것 아니냐고요?

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약한 벌금으로 끝난 것은 맞지만, 중한 피해에 대해서 가볍게 처리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고서 검찰 단계에서 피의자들과 피해자 사이에 충분한 사과와 피해회복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피해자는 피의자들을 용서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검찰에서는 피의자들에 대해 벌금형으로 약식명령을 구하는 약식 기소를 한 것이었지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걸까요.

3.
약식 기소된 수사기록을 보니, 담당검사는 피의자 최유진과 구동매, 피해자 김희성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이 사건을 시한부로 기소중지하고 ‘형사조정’에 회부하였습니다.

담당검사는 최유진의 어머니가 낸 공탁서를 통해 일부라도 피해회복된 것을 확인하였고, 최유진과 구동매로부터는 반성의사 뿐만 아니라 피해자 김희성이 받아만 준다면 충분히 사과하고 피해회복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피해자 김희성 역시도 현실적으로 치료비 기타 피해회복이 당장 절실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당검사는 공판 전에 기회를 주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형사조정제도를 안내하고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은 후 사건을 형사조정절차로 보냈습니다.

이 사건을 배정받은 형사조정위원회의 두 명의 형사조정위원은 미리 양쪽 당사자들에게 연락을 하여 형사조정제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 형사조정의 이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형사조정기일에 꼭 출석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최유진의 어머니가 병원에 찾아가 용서를 구할 때도 받아 주지 않았던 피해자 김희성은 형사조정위원들의 권유에는 응하여, 정해진 형사조정기일에 나왔습니다. 형사조정위원들의 조정 하에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원만한 대화가 가능해 졌습니다. 김희성은 최유진 뿐 아니라 함께 온 그의 어머니의 간곡한 사과를 결국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김희성은 이미 눈과 코 수술로 치료비가 500만 원이 들었고 이후에 코를 재수술해야 한다면서 1,1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하였으나, 최유진과 구동매는 공탁한 600만 원에 추가 합의금도 빌려야 하는 형편을 호소하며 800만 원에 합의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형사조정위원들은 양쪽 사정을 듣고 의견을 조율해 가서, 최종적으로 양측이 공탁금 600만 원을 포함하여 총 1,000만 원의 배상금액으로써 민, 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에 이르러 형사조정이 성립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명한 형사조정위원들은 위 형사조정에 1,000만 원의 배상금 지급이 완료되면 비로소 합의된 것으로 보기로 하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약속이 확실히 이행되도록 도모하였습니다.

수사기록에 나타난 위와 같은 형사조정의 경과와 첨부된 합의서, 처벌불원서 등을 확인한 약식명령 담당판사였던 저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담당검사의 약식 구형은 최유진, 구동매에 대해 각 벌금 100만 원이었는데, 담당판사였던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 김희성의 상해 정도는 중하나, 피고인 최유진과 구동매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청년들이고 잘못을 모두 인정하며 뉘우치고 피해회복을 실질적으로 해 주고서 피해자에게서 용서받은 사정을 고려하여, 담당검사의 약식 구형이 적정하다고 보아서 그대로 각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4.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있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지난 열한 번째 이야기로 경찰 단계를 지나왔는데요. 오늘부터는 검찰 단계로 접어들어 형사조정제도에 관해 다루어 보고자, 실제 수사기록에서 형사조정회부서, 형사조정조서, 형사조정결정문 등을 통해 접했던 사례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에서 형사조정을 통해 가장 도움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군대 재판을 면하고 벌금 100만 원으로 선처를 받은 최유진일까요. 마찬가지로 벌금 100만 원으로 더 무거운 형사처벌을 피한 구동매일까요.

저는 누구보다도 형사조정의 이익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피해자 김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뼈와 코뼈를 크게 다쳐서 고통을 당하고 당장 치료비 등 현실적인 피해배상이 필요했으니까요. 형사조정을 통해서 신속하고 원만하게 금전적 배상을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가해자들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용서도 해 주었으니, 피해자로서는 늦지 않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피해회복 조치를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형사조정위원이 대화를 주선해 주었기에,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용서의 마음이 서로 전달되는 대화가 가능해 지고, 적정한 배상액으로의 합의에도 이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형사조정제도는 2006년 검찰 내부의 시범실시로 시작되어 마침내 2010년 범죄피해자 보호법 개정으로 정식 도입되었는데, 사실 그 이전에 이미 전국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자 보호의 일환으로 형사조정이 실시된 바 있었고,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41조에 형사조정의 회부는 ‘당사자 사이에 형사분쟁을 공정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여 범죄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는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 태생 자체가 ‘범죄피해자의 실질적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계속하여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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