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77)- 묵시적 청탁과 관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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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77)- 묵시적 청탁과 관심법
  • 강신업
  • 승인 2018.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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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2018. 8. 24.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위 국정농단 사건 2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 원이 선고됐다. 1심에 비해 징역은 1년, 벌금은 20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2심은 1심 재판부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약 16억 원을 뇌물로 봤다. 박 전 대통령이 공범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운영한 영재센터에 도움을 주기위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달라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봤다. 앞서 1심 재판부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돼야 한다”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는 상반되는 결론이다.

한편 앞서 2018년 2월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계 작업을 매개로 영재센터 지원을 한다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영재센터 지원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재용 부회장간 부정한 청탁을 주고받았다는 근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정보가 포함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삼성 관련 보고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실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단독 면담 말씀자료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 역시 민정수석실의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이 봤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설시하지는 못했다. 또 2016년 2월 15일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 영재센터 지원을 요청했다면서 “이때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했지만 역시 구체적인 증거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2심 재판에서의 삼성 뇌물 논리는 같은 날 뒤이어 열린 최순실 재판의 2심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에 대해 최 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21세기에 망령으로 되살아났다”며 “묵시적 공모가 합리적 제약 없이 확대 적용되면 무고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은 공포정치의 수단이었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어느 날부턴가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말하며 “옴마니반메홈”이란 희한한 주문을 외고 “나는 누가 내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법으로 알아볼 수 있다”며 주변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는 신하들에게도 걸핏하면 “너 지금 나를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지. 내가 다 보았다”라고 하는가 하면 “나는 네 마음을 볼 수 있으니 당장 너를 죽이겠다”며 정말로 망나니를 불러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급기야 자기 부인과 아들까지 죽였다.

이경재 변호사가 궁예의 관심법까지 들어가며 재판부를 비난한 것은 무엇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재판부마다 결론을 달리한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것을 재판부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이경재 변호사의 관심법 비유가 적절한 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같은 서울고등법원 내에서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가 ‘부정한 청탁의 존부’라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상반되는 결론을 내린 것을 두고는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도 왜 이렇게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여기엔 재판의 본질과 한계라는 간단치 않은 문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두 개의 판단은 있을 수 없으니 어느 쪽이든 한 쪽으로 결정이 날 것이다. 제3자 뇌물죄에서의 부정한 청탁과 관련하여 청탁의 존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증거재판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결국 법원에 현출된 자료가 묵시적 부정 청탁의 증거가 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대법원의 빈틈없고 논리정연한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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