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피해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대포통장을 양도한 계좌명의인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송금한 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사용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 때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대법원은 지난 19일 횡령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횡령죄의 성립 여부와 만약 횡령죄가 성립하는 경우 피해자는 누구인지로 먼저 대법원은 횡령죄의 주체에 대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서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하며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로 충분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때의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같은 전제를 기초로 어떤 계좌에 계좌명의인과 송금인 사이에 법률관계 없이 자금이 송금된 경우 그 돈은 송금인에게 반환돼야 하므로 계좌명의인은 이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야 하며, 이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돼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를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즉, 계좌명의인과 보이스피싱 피해자간에 사실상의 위탁관계가 인정되고 따라서 입금된 피해액을 마음대로 인출해 사용할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반면 계좌명의인과 보이스피싱 조직원(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 사이의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없으므로 사기범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다수의견과 달리 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조희대 대법관은 계좌명의인과 보이스피싱 피해자 사이의 위탁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피해자를 달리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했지만 조희대 대법관은 위탁관계를 부정함과 동시에 횡령죄의 성립도 인정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계좌명의인은 대포통장 양수인(보이스피싱 조직원)과의 약정상 계좌에 들어온 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임의로 인출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사기피해자와 계좌명의인 사이에는 위탁관계가 없고 대포통장 양수인, 즉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계좌명의인 사이에는 위탁관계가 존재하지만 보호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대포통장 명의인에 대해 사기피해자를 위하여 그 통장에 입금된 사기피해금을 그대로 보관해야 할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대포통장 명의인이 임의로 인출한 행위를 횡령죄를 처벌함으로써 사기피해자를 보호한 판결”이라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