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70)- 청년 니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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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70)- 청년 니힐리즘
  • 강신업
  • 승인 2018.07.13 16: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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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저출산국 대열에 들어섰다. 정부는 부랴부랴 젊은이들이 집이 없어 아기를 낳지 않는다며 신혼 희망주택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배우자의 출산 휴가를 늘리고 아동수당도 늘려 젊은 부부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미봉책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니힐리즘에 빠졌다. 그들은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도, 아기를 낳아 기르겠다는 의지도 없다. 어쩌면 동물적 본능조차 거세당한 채 그저 주어진 현세를 살 뿐이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극심한 니힐리즘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집이 없어서, 직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인가. 그들이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 이유다, 그들은 세계 전체가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가치도 없다는 정신적 병질에 빠져버렸다. 오늘의 사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다. 청년들은 어떤 경우에도 위로와 힐링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꿈과 희망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몫까지 차지해 버린 기성세대가 그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낙인찍었다. 기성세대는 청년 니힐리즘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젊은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정신적 위로를 받는 것도, 경제적 지원 등의 시혜적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청년은 남이 파 준 동굴에서 남이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나 먹고 사는 걸 원치 않는다. 청년은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며 도전하는 데서 삶의 동력을 얻는 존재다. 비축해 놓은 통장 잔고가 없다고 해서 허무에 빠지는 존재가 아니다. 니체가 말하듯 사회적 빈곤상태는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니힐리즘을 낳을 수 없다. 청년은 오히려 빈곤에 처할 때 삶의 의지, 생의 의지를 작동시켜 거기서 삶의 추동력을 얻는 존재다.

오늘날 청년 니힐리즘의 원인은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삶의 전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거대담론이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행복이라는 명제조차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그들을 지배한 때문이다. 사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콘크리트 아파트와 오락실에 갇혀 흙 한 번 만져보지 못한 채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그들은 온라인 속에 박제된 까닭에 오프라인의 세계로 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온라인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전파되는 동영상에 마음을 뺏기고 유언비어에 가까운 사회담론을 소비하는 가운데 건강한 삶을 저당잡혔다. 그들은 출구조차 막혀버린 온라인 세상에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고 사는 삶에 스스로 지쳐버렸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만의 관점, 자기 고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다시 ‘삶에의 의지’로 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구슬땀을 흘리는 것이다. 삶은 단순한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굳건한 실천의 문제다. 의지와 목표로 충만한 자만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청년들은 더 이상 위로니 힐링이니 하는 나약한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오직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고, 자신의 삶에 순수한 자연적 생명력을 스스로 불어 넣어야 한다. 누군가 세상을 탓하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는 돈다. 니체가 말하듯 “독수리는 결코 무리지어 날지 않는다. 그런 건 참새나 찌르레기한테 맡기는 게 좋다.” 젊은이들은 각자가 무소의 뿔처럼 나 혼자 길을 가야 한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가운데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삶의 목적도 아니며 추구하는 바가 될 수도 없다. 행복은 삶의 과정 속에서 문득 문득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작은 감정이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가 결혼조차 포기하게 한다는 결정론적 사고를 딛고, 인간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가운데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자연법적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들이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힘껏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늘 그렇듯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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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짱 2018-07-16 14:56:48
무쇠의뿔처럼 구슬땀흘려가며 계란으로 바위 깬지 십여년.
이제는 지쳤다. 확실한것은 계란으로는 바위를 깰수없다. 운이 좋던지 좋은 조력자가 있다면 가능하다. 이제 지친다. 늘 힘들었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다. 더이상 꿈을 꿀수없기 때문이다

난민+외노자+로봇 2018-07-16 09:53:37
‘삶에의 의지’로 무장하는 것은 좋은데 이제 그런건 난민이나 로봇이 할일이죠.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구슬땀을 흘리는 것도 외노자의 일이 아닐까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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