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백두산 등정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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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백두산 등정기 (1)
  • 호문혁
  • 승인 2018.04.23 00: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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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전 사법정책연구원장
제1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창간호(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법조매거진 'LAW & JUSTICE'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더불어 창간호와 함께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을 연재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첫 호에 무슨 풍물을 담을지 고민 끝에 우리의 영산 백두산이 당연히 첫 번째로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백두산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 필자 주]

2012년 8월 25일, 서울대 교수산악회가 마련한 백두산 등반을 따라 나섰다. 평소에 백두산 등반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기가 고르지 않아서 올라가기도 어렵고 천지를 보는 것은 더욱 어려워서 삼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친숙한 교수산악회에서 기회를 마련해서 ‘이 때 가지 않으면 평생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사 제쳐놓고 따라 나선 것이다. 인천에서 항공편으로 장춘으로 가서 버스로 백두산 기슭까지 다다라 숙소에 드니 하루가 거의 다 갔다.

백두산 하면 애국가에도 등장하고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곳이다. 백두산 정상에 천지가 있고, 거기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이 흘러내려간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민족 정기를 왜 말하는지는 잘 몰랐고, 그냥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정작 간다고 하니 그렇게 가슴이 설렐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떤 산일까?’ ‘천지는 얼마나 클까?’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비바람이 몰아치면 어떡하나?’ 이런 저런 기대와 걱정에 결국 내 애기(愛機) 니콘 FM2를 메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똑딱이 니콘 디카를 허리에 차고 나섰다.
 

▲ 사진1. 천지를 보는 순간, 우리 일행이 하나 같이 “와~!” 탄성을 질렀다.

8월 26일. 이 날은 본격적인 등산이 아니라 맛보기 관광을 하는 날이다. 아침에 버스 타고 백두산 남파로 향했다. 처음에는 완만한 구릉을 이리저리 넘으면서 서서히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키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고산지대의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어디가 백두산 천지인지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올라가 주차장에서 내려 등산안내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버스에서 내려서 10분도 채 걷지 않아 삐죽삐죽한 봉우리들이 눈에 뜨이더니 바로 천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천지를 보는 순간, 우리 일행이 하나 같이 “와~!” 탄성을 질렀다. 거대한 호수를 둘러싸고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비롯한 웅장한 산세가 펼쳐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사진1). 더구나 날씨도 우리를 반겨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 있는데, 그 모습이 천지의 파란 물에 그대로 비쳤다. 천지 건너편에 옴폭 파인 데가 있는데(사진2), 그 곳이 천지 물이 장백폭포가 되어 흘러나가는 곳이라고 했다. 일행이 이 멋진 광경을 본 감회를 나누며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천지를 떠났다. 주차장으로 가는 사이에 이제 천지를 보려고 들어오는 일행을 만났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뭉게구름이 몰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천지건 산이건 구름에 가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누대 덕을 쌓은 동료들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 사진2. 천지 건너편의 움푹 패인 곳. 이곳이 천지 물이 장백폭포가 되어 흘러나가는 곳이라고 했다.

오후에 다시 버스로 서파로 올라갔다. 서파 쪽은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서 계단을 1442개 올라야 한다(사진3). 다음 날 할 등산 예행연습인 셈이다. 완만한 계단이어서 별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계단 둘 마다 101, 103 등 홀수 숫자를 적어 놓아서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알 수 있게 해 두었고, 계단 옆에는 “이제 반 왔다”, “이제 3분의 2 왔다”, “등정 성공, 엄지 척!” 등 중국말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천지를 보고 느끼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서파에서 본 천지는 편안하게 사색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전형적인 물의 모습이었다(사진4). 하늘에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지 물은 차분해 보였고, 풍경도 굴곡이 적어 보였다. 남파에서 가슴 뛰는 감격을 얻었다면 서파에서는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지가 남북으로 더 길어서 서파에서는 24밀리 광각으로도 카메라에 다 잡히지 않았다. ‘내 FM2에 20밀리 렌즈를 달면 되는데...’ 남파에서 천지를 본 순간부터 애기(愛機)를 두고 온 것이 아쉬웠는데, 서파에 오니 아쉬움을 넘어 후회가 들었다.
 

▲ 사진3. 서파 쪽은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서 계단을 1442개 올라야 한다.
▲ 사진4.서파에서 본 천지는 편안하게 사색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전형적인 물의 모습이었다.

천지 주변에 천지를 설명하는 팻말이 서 있었다. 호수의 높이는 2194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 수심은 370미터, 넓이는 10평방 킬로미터이고,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장 큰 분화구 호수라고 한다.

천지를 뒤로 하고 주차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산 아래 광대한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사진5). 하늘을 가린 구름 사이사이로 햇빛이 빗살처럼 내리비추어 마치 햇빛 비가 내리는 것 같아 보였다. 저기가 그 광대한 만주 벌판이다. 백두산 서쪽 지역으로 고대 역사를 공부를 할 때마다 가슴 뛰게 하던 고구려의 주 활동무대였던 곳이다. 저기를 고구려 무사들이 말을 달려 기상을 한껏 높혔으리라는 감상에 젖어 계단을 내려갔다. 그 순간만 해도 내가 며칠 뒤에 저 벌판을 차를 타고 가로질러 내달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사진5. 산 아래 광대한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중국 산에서 볼 수 있다고 말로만 듣던 가마 탄 등산객들이 보였다(사진6). 주로 몸무게 때문에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이 가마를 이용할 텐데, 가마꾼들에게는 이들이 기피 대상이라는 아이러니에 웃음이 났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마꾼들이 불쌍해서 차마 타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 가마꾼들은 손님이 타지 않으면 끼니를 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완만한 계단이라도 오르기 힘든 사람을 위해서는 가마도 필요하리라.
 

▲ 사진6. 말로만 듣던 가마 탄 등산객들이 보였다.

서파에서 내려와 장백산대협곡에 들렀다.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나뭇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백두산 하면 천지와 주변 봉우리, 장백폭포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웅장한 협곡이 있을 줄은 몰랐다. 깊은 골짜기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서서 각기 모양을 뽐내고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 따라 절벽 역시 웅장한 병풍처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사진7).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저러하면 저 안에 내려가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날개가 있으면 내려가 사진을 찍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 요새 같으면 드론을 띄우고 싶다고 했겠지만.
 

▲ 사진7. 깊은 골짜기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서서 각기 모양을 뽐내고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 따라 절벽 역시 웅장한 병풍처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백두산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보냈다. 딱히 등산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색한 행적이었지만 처음 만난 백두산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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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18-04-23 04:27:53
취미가 참 고급스러우시네요
백두산 등산이라니ㅋㅋ
호화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이시네요 솔직히 부럽습니다
사진도 직접 찍으신것같은데
백두산 사진까지 올려주시고 좋은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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