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법부 신뢰, 어떻게 얻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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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법부 신뢰, 어떻게 얻나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01.25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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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지난 24일 사법정책연구원은 오는 2월 퇴임하는 호문혁 원장을 강연자로 하여 사법정책포럼을 개최했다.

27년간 민사소송법 교수를 지내며 명성을 떨친 호문혁 원장은 이날 ‘대륙법의 전통과 한국 민사법의 원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한국법의 근원은 이천년 전 로마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호 원장은 풍부한 세계사 지식과 직접 수집한 사진 자료들을 곁들여 인상 깊은 명강의를 남겼다.

이날 강연 내용 중 “조선시대 원님재판은 그때부터 이미 선진적이고 합리적이었다”는 설명이 신선했다. 관아에서 이뤄지는 공개재판 원칙, 철저한 증거 기반의 재판, 구술주의 등의 요소를 그때부터 정립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간간이 엉터리 재판을 일컬어 ‘조선시대 원님재판 같다’고 표현하는데 “무덤의 원님이 그 말을 들으면 억울함이 말도 못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설득력이 있었다.

한편 로마의 법학은 로마 최전성기인 고전시대에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는데, actio(소권법) 중심의 법체계에서 지금의 법무관(고위 행정관) 격인 praetor와 심판자 역할을 하는 iudex가 주축이 됐다고 한다.

여기서 심판자 역할을 하는 iudex는 법전문가가 아닌 이웃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배심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praetor 역시 행정관료일 뿐 전문적으로 법을 공부한 경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praetor와 iudex는 사법 절차의 과정에서 법학자들의 견해를 상당 부분 참조하게 되었고, 이런 법학자들의 견해를 모은 ‘학설법’이라는 것이 등장, 이는 당대의 중요한 법원(法源)이 됐다.

여기서 기자가 주목한 것은 판단자 역할을 법전문가가 아닌 ‘이웃사람’이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천년 전이니까 그랬지’라며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치부하기엔, 앞서 이야기한 조선시대 원님 재판의 경우처럼 편견일 확률이 크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판단자 역할에는 법전문가보다, 당자자들이 기꺼이 판단 결과를 수용하게 될 만한 다른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하지 않았겠나 추측해 본다.

기자는 법을 전공했는데,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의 자격을 법조인 아닌 사람들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상당히 생경한 느낌이었다.

‘국민 간 분쟁의 판단은 시험을 통과하여 법전문가의 자격을 갖춘 법관이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굳이 누가 심어준 것 같지도 않은데 저절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요즘처럼 법원과 재판에 대한 불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 간다면 어느날 ‘사법개혁’의 내용이 ‘재판을 법전문가 아닌 믿을만한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는 내용으로 될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믿을만한 사람’이란 인품을 기준으로 할지, 연륜을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로마 고전시대처럼 ‘이웃사람’으로 할지, 아직은 그 기준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무 나간 생각이라 여겨질지 모르나, 이는 이미 80여년 전에도 화제를 모은 적 있는 주장이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40년 동안 헌법학 교수를 지낸 프레드 로델(1907~1981)은 1939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 <저주 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법률가와 그들의 법을 폐지하고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제도를 구축하자”고 말한 바가 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법원 구성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법원과 판사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가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른 데서 오는 불협화음이 요즘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견해 충돌에서 드러나고 있다.

마음에 품은 뜻이 단순하고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많이 모여도 서로 어그러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의 사법부가 보이는 불협화음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바, 지향하는 바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것처럼 “법관의 영광은 재판에 있음”을 법원은 상기하면 좋겠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 재판 당사자의 이야기를 성심으로 듣고 최선을 다해 제대로 재판하는 법원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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