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43)- 설마와 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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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43)- 설마와 차마
  • 강신업
  • 승인 2017.12.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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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인간의 이성이란 도대체 ‘설마’라는 편의적 가설 앞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어지는 것인가?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 주차장에서 시작된 작은 화재가 인간의 비상식적 태만과 욕망을 타고 대참사가 되고 말았다. ‘설마 불이 나겠어, 비상구는 폐쇄하고 그 부분을 편리하게 쓰자!’ ‘설마 불이 나겠어, 혹 천장에서 물이라도 쏟아지면 귀찮으니까 스프링클러는 그냥 잠가두자!’ 화재에 대비해 마련한 시스템과 매뉴얼만 지켰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화재가 인간의 비이성적 ‘설마’ 때문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이 되고 말았다.

화재는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의 실수로, 방화로 , 누전으로 그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불은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우리의 경험과 이성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때문에 불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소방도로를 만들고 건물에 스프링클러도 설치하고 비상구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한 모든 것이 ‘설마’라고 하는 근거 없는 추정에 굴복하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소방관과 소방차량은 불이 난 경우 긴급 출동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주위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불이 난 건물에 빠르게 접근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가? 그러면 도심에서 불이나면 주차 차량들 때문에 어차피 긴급출동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가? 이쯤 되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면 차량의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부숴서라도 길을 열어야 하고 그 책임은 차량의 소유주나 정부가 지도록 해야 한다.

스프링클러는 ‘화재는 일어난다’는 명제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돈과 노력을 들려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건물에 비상구를 만드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평상시에 드나드는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어떤 비상사태를 대비한 것이다. 그런데도 비상구 앞에 물건을 쌓아 창고로 둔갑시키고 비상등도 켜놓지 않는 그 만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는 드라이비트라는 자재로 외장단열공사를 하는 드라이비트공법이 화재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드라이비트라는 자재를 건물벽 외장재로 썼는데, 이 소재는 가연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불이 붙으면 건축 외벽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건물외벽이 시멘트라고만 생각을 했지 그것이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입힌 가짜 시멘트벽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우리를 완전히 속인 것이다.

인간은 늘 어리석게도 눈앞의 이익과 편리를 쫒아 원칙을 무시하다 큰 코를 다친다. 한쪽에선 ‘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여러 가지 소방시설을 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불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확신하고 불이 붙기만 하면 바로 타버리는 건축 재료를 외장재로 사용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불은 일어난다’는 합리적 이성으로 비상구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도 곧바로 ‘불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비이성적 확신으로 비상구를 폐쇄하고 스프링클러를 잠근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한 때문이고 이성 외의 어떤 다른 원인이 개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눈앞의 이익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 합리적 이성이 ‘설마’라고 하는 회의적 확신에 자리를 내주고 그것이 계속해서 ‘차마’라고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인간이 도구적 이성을 총 출동시켜 만들어낸 법규와 제도들이 설마라고 하는 인간의 타성적 비이성에 바로 굴복해 버리는 비극을 우리는 이번 제천 화재 참사에서 또 다시 목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설마’로 ‘차마’를 만들어 내는 일을 계속 할 것인가?

이제는 바뀔 때다. 우리가 여전히 근거 없는 확신에 젖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스템과 매뉴얼, 그리고 법과 원칙을 무시한다면 참사는 다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물적시설도 인적시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일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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