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2-25 18:23 (화)
신희섭의 정치학- 규범과 평화의 성상으로서 UN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 규범과 평화의 성상으로서 UN
  • 신희섭
  • 승인 2017.09.22 15:2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규범은 얼마나 힘을 가질까? 이론적으로 보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규범은 인간의 도덕성을 건드린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말의 도덕성과 정의감은 특정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이 과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따져보게 한다. 타인의 자신에 대해 평가와 자신의 향후 행동에 들게 된 윤리적 비용을 고려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규범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권력과 달리 규범은 어떤 이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영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쉽게 말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규범이 작동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동하지 않는다.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인류 최대의 사악한 지도자 히틀러에게 국제사회의 규범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게르만의 영광과 단합을 위해 유태인 학살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히틀러와 한 배를 탄 독일의 고위 지도자들과 일반 대중들도 규범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했다.

그런 히틀러도 부러워하는 인물이 있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이 스탈린처럼 냉정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히틀러가 찬양했던 스탈린은 굴라그(Goulag)라는 노동수용소를 만들고 최대 180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을 이 수용소에 가두었다. 이 중 상당수가 정치적 의견이 다른 정치범들이었고 이들은 이곳에서 강제노동을 강요당했고 일부는 노동과정 중에 숨졌다. 그러나 히틀러가 부러워했다고 하는 스탈린의 굴라그는 나치의 아우슈비츠보다는 덜 냉정했다. 굴라그는 형이 끝나면 나올 수는 있었지만 아우슈비츠에서 나올 방법은 오직 죽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히틀러나 스탈린도 부러워해야 할 국가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에는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가 3대에 걸쳐서 운영되고 있다. 6군데의 수용소에는 20만 명이 정당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수감되어 있다. 정치범수용소라고 하지만 과연 정치적 의견이 달라서 이곳에 갇힌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당한 재판 없이 수용되는 곳이니 인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리가 없다. 김일성에서 김정은까지 3대 세습이라는 봉건 왕조식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계속 유지해온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스탈린도 히틀러도 누려보지 못한 냉정하고 타락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외국 공항에서 백주 대낮에 자신의 이복형을 피살하는 국가. 이런 북한을 보면 규범의 힘이 과연 작동할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1년 치 식량을 살 수 있는 비용을 한 발의 미사일과 바꾸는 나라. 핵 폭발력과 미사일 사거리에 목숨을 거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으로 맞대응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2017년 9월 19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첫 번째 UN연설에서 강력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북한을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자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의 대안이 없다(we will have no choice but to totally destroy North Korea)"고 발언했다. 또한 “로켓맨은 자신과 자신의 정권에 자살임무를 수행하고 있다(Rocket Man is on a suicide mission for himself and his regime)”고 비난했다. UN에서의 전체 41분짜리 연설문에서 몇 분 동안 그는 북한을 비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국의 역량이 있지만 UN을 중심으로 국가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거칠게 표현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많은 비판을 낚아 올린다. 깡패 우두머리 같은 표현이라는 비판부터 미국 대통령의 UN 연설 중 최악이라는 비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UN 연설을 들으면서 주목할 것이 그가 구사한 단어들과 비외교적인 태도는 아니다. 이 보다 주의 깊게 볼 것은 미국이 만든 평화의 성상(icon)인 UN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여부이다. UN이 규범과 평화의 성상인 것은 UN이 1945년 이전까지 국제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인권을 담론화하고 법제화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평화와 안전을 다루는 1차적 책임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획은 1941년 뉴펀들랜드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영국의 처칠 수상을 만난 자리에서 기초가 만들어졌다. 즉 태평양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미국이 주도하여 만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만든 규범과 평화의 토대인 UN을 이용해 북한을 위협했다. 또한 이를 통해 UN을 중국을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의 연설문은 즉흥적인 연설문이 아니라 백악관의 수석정책 보좌관인 스티븐 밀러가 만든 연설문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UN을 보는 관점을 대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UN을 통한 청중(audience)은 국제사회가 아니라 국내지지 세력이었다. 미국 보수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이 인권과 정의에 호소하여 국제적 여론을 이끌고 정당성과 명분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백인사회에 얼마든지 덤빌 테면 덤벼봐라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전달하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까? 북한의 미사일사거리 확대와 핵능력 증대라는 현안 이슈를 풀어가는 데 미국이 실제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하면 국제사회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보다 국제 규범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국가들이다. 미국이 이들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도덕과 정의라는 ‘명분을 위한 경쟁’이다. 또한 북한에도 마찬가지이다. 명분을 위한 경쟁과 규범과 정의라는 기준으로 북한 엘리트 지도층을 압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전략적이다.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김정은 혼자 통치를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규범과 명분으로 김정은 주변의 엘리트들을 흔들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여부를 두고 논쟁이 있다. 규범과 명분을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쟁은 문재인 정부가 인도적 지원카드를 사용할 때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정부는 1948년 UN을 통해서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당한 정부로 만들어졌고 인정을 받았다. 규범과 명분을 가진 대한민국이 북한을 다룰 때 규범과 평화의 성상으로서 UN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ㅇㅇ 2017-09-25 17:42:43
글을 진짜 못쓰시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