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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과 딱지놀이의 이등병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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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1  1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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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임금은 사람의 가치이다.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 임금이다. 그래서 임금을 많이 주면 사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고, 적게 주면 낮게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할 경우 돈을 많이 주는 경우가 있고, 좋은 일을 할 때 돈을 적게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돈에 의해 평가되는 행위보다 인간에 내재된 내적 가치, 다시 말해 인격의 고매함을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극상의 자존심이 작동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많이 주더라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적게 주더라도 하고 싶으면 하는 사람 말이다. 까닭에 사람을 돈으로 회유하려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적게 벌더라도 양심이 편하고, 적게 벌더라도 마음이 평온한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동안 돈과 권력을 좇으며 부나비처럼 살던 많은 이들의 감추어진 가면 속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동료를 팔고, 진실을 팔고, 양심을 팔았던 “진짜 위선자”들의 쌩얼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적폐청산의 기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다각도로 드러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드러나고, 최순실에게서 드러나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하 여러 장관, 교수들의 재판받는 과정에서 그 비위들이 드러나고 있다.

박찬주 1군사령관 부부의 갑질 이야기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추악하고 가증스럽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 즐겨 했던 “딱지놀이”를 생각해본다. 딱지에는 계급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등병, 일등병, 상병, 병장, 하사, 중사, 상사, 준위, 소위, 중위, 대위, 소령, 중령, 대령,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에 보물이라고 하여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필자는 아직도 이등병이 일등병보다 더 낮은 계급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아마 일등보다는 이등이 더 낮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딱지놀이하는 친구끼리 서로 자신의 딱지를 내보여 계급이 높으면 낮은 딱지를 따먹는 게임이었다. 가장 높은 것이 보물이다 보니 상대방이 보물을 내어놓으면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로 상대방이 보물을 내어 놓았을 때 우연찮게 이등병을 내어 놓으면, 그 이등병은 보물을 이길 수 있었다. 유일한 강자, 보물의 천적은 가장 낮은 계급 이등병이었던 것이다. 항시 누구에게나 지기만 하는 이등병이었지만, 유일하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게 되는 보물에게만은 이길 수 있었던 “올 인의 한 방”이었다. 이처럼 이등병은 위대한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비록 딱지놀이에서일망 있었고, 우리 어린 아이들은 그런 게임에서 보물도 겸손해야 함을, 이등병도 언젠가 가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등병 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이 어찌 되어 가는지, 이등병의 저 마지막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박찬주 대장과 그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세평이 나 있었다. 교회의 장로와 권사였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기독교계는 박찬주 장로가 대장으로 1군사령관이 됨으로써 전군인의 기독교인화라는 군복음화정책을 구체화하기도 하였다. 명색이 필자도 교회 장로이다 보니, 그런 소식을 많이 들었고, 군인세례식 참석을 요청받기도 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참석한 적은 없다. 군사령관이 독실한 기독교인인 척(?) 하다 보니, 외관적으로 전도에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군 장병들에게 교회 나오기를 강요(?)하게 되고, 기독교인 서약식이라 할 수 있는 세례를 무리하게 받도록 하였던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런 까닭에서인지 몰라도 금년에 실시된 진중세례식에서 수천 명이 넘는 장병들이 세례를 받는 진풍경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필자도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세태에서 젊은 군인들이 세례를 많이 받는다는 소식에 무작정 좋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위와 같은 박찬주 대장의 무리한 기독교 전파가 있었던 것이다. 사병들이야, 교회 나가면 휴일 사역에서 배제되고, 교회에서 과자나 빵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냥 교회 예배에 참석하거나, 열성(?) 지휘관을 잘못 만나면 무조건 교회에 나가도록 하는 반강제에 떠밀려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모범을 통해 젊은이들이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잘못된 확신에 찬 지도자들의 막행위에 의해 강제되면 그 후유증은 크기 마련이다.

기독교계에서는 박찬주 대장의 위와 같은 군포교행위에 대해 박수와 칭찬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장로와 권사라는 두 사람의 용서받을 수 없는 공관병들에 대한 갑질 행태가 드러남에 따라 위와 같은 진중세례식의 참뜻이 왜곡되고, 그 가치가 폄훼되기에 이르렀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예수의 진정한 참사랑을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였으니, 스스로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십자가조차 수치스럽게 되고 말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간단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가장 큰 계명을 가르쳐달라고 예수에게 사정하니,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첫째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네 하나님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물론 여기의 이웃은 강자와 부자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너보다 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이웃을 더 마음 쓰고 신경 써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냐 말이다. 요즘 말로 말해 을들에게 갑질하지 말고 을들을 끝없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를 시중들어 주는 공관병, 자기 부부와 자식을 위해 밥하고, 청소하고, 공관을 지켜주는 그 귀한 남의 집 자식들을 개만도 못하게, 벌레만도 못하게 포악질을 해대고서는, 주일날 교회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그 위선과 가증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매주 교회에서 마주칠 때 아주 경건하고 성스러운 얼굴로, 찬송가와 성경책을 옆에 끼고 가장 독실한 그리스찬인 척 하면서 친절하고 우애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예수님이 금방이라도 뛰어내려와 따귀라도 한 대 갈기지 않겠는가 싶을 지경이다. 현재 세상은 을들의 반란시대이다. 일등병들의 반란, 아니 반란이 아닌 자존심 회복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약자로부터의 탈출시대에 가장 크게 공연한 이를 꼽으라면 바로 스티브 잡스라고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시대를 엶으로써, 모든 이들이 정보의 공유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생생한 기록의 시대를 열게 되었음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이가 스마트폰을 손에 듦으로써 녹음이 가능하고 녹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저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갑질의 거짓이 은폐될 수 없게 되고, 은폐하려는 행위마저 들통나는 진실만이 통용되는 사회로 바뀐 것이다.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급)에 대한 언론계 인사들의 청탁성, 아부성 문자는 모두 삼성전자가 만든 스마트폰에서 복원되었다. 미리 삼성전자에 불리한 보도가 나갈 것을 사전 고지하거나, 그러한 보도를 막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다거나, 보도내용을 마사지하여 다른 내용으로 변질시켰다거나 등등 삼성을 위해 충성 봉사한 자신들의 노고, 언론에서 개 같은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충성도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에서부터, 자식들의 인사 청탁이나 자신들에 대한 사외이사 선임 및 광고 청탁 등 수많은 청탁관련 문자들도 모두 들통이 났다. 앞으로는 언론의 정론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이러한 두 얼굴의 야누스 같은 언론인들이 언론사 편집국장을 하고, 주요 간부를 했다는 사실 등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었겠는가? 바로 삼성전자에서 만든 스마트폰 덕분이 아니겠는가? 자기 회사 기술이 자기 회사의 발목을 잡는 도구로 기능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찌 할 것인가? 그걸 빨리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이등병들의, 을들의 세상을 자신들이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을들은 아예 이 세상에 없었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자신들을 자칭 갑이라 칭하며 없는 을들을 만들어 그들을 부당하게 을 취급하면서 자신들의 호의호식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을로 취급받던 이들이 스스로 깨어나 스스로 을임을 부정하면서 “나는 을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을의 시대는 “을의 자각과 연대”로 인해 강력하게 사회적 파급력을 높여 갈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 본 칼럼을 통해 현대는 기록의 시대이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밝혔다. 실재 그런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다. 개체였던 을들이 SNS를 통한 연대가 가능해짐에 따라 “거대한 을의 탄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강자라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갑들은 개체의 을, 약한 을만을 생각하면서 갑질을 해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약자인 줄 알았던 을이 거대한 “연대된 을”로 자기 앞에 출현하게 될 때 비로소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바로 박찬주 대장 부부가 그 꼴이다. 박찬주 대장과 같은 갑질에 익숙했던 이들은 이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자숙해야 한다. 어디 필자라고 예외겠는가?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알게 모르게 행한 갑질이 없는지 되돌아보고, 이 세상에 갑도 없고 을도 없다는 새로운 평화와 조화를 이룩해야겠다는 다짐들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할 중대한 시점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9일 새로운 의료보험체계를 발표하였다.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가능하면 치료비 전액이 의료보험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도모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필자도 본 칼럼을 통해 그 동안 여러 차례 의료보험료 징수체계를 개편하고, 진료비 전액이 의료보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정부는 이때 예상되는 의료보험료 인상 문제를 거짓 없이 사실 그대로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로드맵을 통해, 언제까지, 어떻게 의료보험료가 사실상 인상되며, 이럴 경우 국민들이 어떠한 혜택을 받게 되어, 실재로는 어떠한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점을 감추지 말고 그대로 다 보고할 필요가 있다.

모르긴 해도 의료업계의 반발이 가장 클 것이다. 여태까지 비급여 대상이라고 하여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신기술이 적용된 초고가 의료장비 사용 및 고가의 신약 투여 등으로 짭짤한 이익을 추구해 왔는데, 그리고 특진비라고 해서 결국 의사가 치료해야 할 것을 의사가 치료해 놓고서는 부당하게 의료비를 과다 징수해 온 특혜(?)를 누릴 수 없게 되었으니 당연히 반발이 예상된다. 일반의 아닌 전문의의 진료이기 때문에 특진비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참으로 황당한 논리임에도 통용되어 온 구습을 이번에는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전문의는 대부분 과장이라 불리고, 그 과장들은 대부분 그 병원이 운영하는 대학병원의 교수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을 운영하기 위해 전문의를 교수로 두고, 그 교수들을 과장으로 하여 역시 병원 진료에 도움을 받으면서 특진비를 요구하는 것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구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진비를 안 내겠다고 하여, 전문의를 빼버린 종합병원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있어야 할 전문의가 당연히 진료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임금은 사람의 값어치이다. 그 속에 이등병과 보물의 비밀이 숨어 있고, 대장의 갑질과 공관병 을의 반란이 크로스 되고, 전문의의 특진비가 의료보험 비급여로 처리되고 있다. 측은지심을 우리가 품고 살고, 역지사지의 마음과 “연대된 을의 힘”을 자각할 때 우리 모두는 모두 갑으로 서로 존중받고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보험체계 정비가 새로운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시발점이 되기 바란다. 다음 차례는 징역형 재소자들의 노동에 대한 상당한 급여의 지급이다. 필자가 주장해 온 것 중 아직 시행되지 않은 제도이다. 출소한 장기 재소자들의 삶의 밑천이 될 수 있도록 징역형 재소자들에 대한 상당한 임금 지급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날도 꿈꾸어 본다.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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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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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 2017-08-14 22:44:55

    좌파사 진보 인사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자사고 특목고 없애자며 외치더니 진즉 자신들의 자녀는 보내는 이중성^~신고 | 삭제

    • 홍익인간 2017-08-11 17:38:01

      공관병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 왜..입대한 20대 초반 군인들이.. 장교 사모님 시중을 들어야 하나?신고 | 삭제

      • 공감 2017-08-11 14:08:25

        관행적으로 하는 것은 그게 갑질인지 인식조차 못한다는 게 더욱 문제지요. 교수와 학생 사이는 그런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아마도 민심이 폭발할거에요.신고 | 삭제

        • 공정 2017-08-11 13:53:25

          교수님, 교수의 갑질은 없나요? 우리나라에서 갑질이 가장 많은 곳이 아닌가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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