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아직도 김정은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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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직도 김정은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신희섭
  • 승인 2017.05.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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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문재인대통령의 인기가 높다. 대통령의 인간적 향기가 보는 이들을 훈훈하게 만들면서 초반의 대통령에 대한 걱정을 기우로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비정상에서의 정상화.

지난 23일은 역사적 대비가 있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에 참석한 친구이자 현직대통령 문재인과 법정에서 40년 지기 최순실을 마주한 박근혜전대통령. 옛말에 친구를 잘 두라고 했다. 진보와 보수의 잣대가 아닌 도덕성의 잣대가 필요한 상황의 연출.

요즘은 5공 때 같다. 대통령이 뉴스의 첫 마디를 장식한다. 앰뷸런스에 길을 내주고, 청와대에 참석한 어린이들과 같이 하는 것, 장애인단체가 제작한 오래된 구두, 이런 것들은 평범함의 도덕성이 주는 소소한 감동이다.

문재인대통령은 전임정권의 잘못을 뜯어고쳐야 하는 구원투수이다. 판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영역의 부정의를 고쳐야 한다. 시민들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프로페셔널하게 잘 하니 시민들의 높은 기대에 대한 빠른 응답들도 있다. 기대와 변화의 선순환.

현정부에 대한 높은 인기와 기대 속에서 북한에 대한 3차정상회담론과 대북 특사론이 나오고 5.24조치를 고치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또한 이해가 충분히 간다. 전임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서 남북관계의 극적인 악화를 가져왔다. 2016년에만 북한은 두 번의 핵실험을 강행했고 그에 따른 제재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남북이 접촉할 수 있는 루트가 사라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정부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진보정부들처럼 대북관계를 개선함으로서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간의 권력경쟁을 우리가 통제해보고자 한다. 북한이라는 변수통제를 통한 동북아시아 외교적 불확실성을 축소. 그 결과물로서 2 차례의 정상회담.

과거 햇볕 정책으로 불리는 대북정책의 논리는 이렇다. 북한내 지도부와 민간을 불리하고 북한 지도부가 아니라 북한 민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을 통해서 남과 북의 정치적 통일보다는 사회경제적 통합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럽통합의 기능주의 이론을 적용하여 남북 민간의 교류를 통한 장기적인 통일의 토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 상황에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시도는 바람직할까? 그리고 유용할까? 더 궁극적으로 가능할까? 대북정책은 북한은 가난하지만 하나의 민족이라는 민족주의라는 정서와 종교국가와 같은 북한의 도덕적이지 않은 지도자에게 시달리는 북한민중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보편적인 도덕성과 정의감을 건드린다. 그래서 정책의 ‘유용성’과 ‘바람직함’을 묘하게 뒤섞어 버린다.

대북정책의 전환은 북한에 대해 전략적 주도권을 쥐고 미중 간에 꼬여있는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지가 작동한 것이다. 게다가 도덕성을 강조하는 진보정부 입장에서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민간이 받는 피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점도 작동한다. 또한 과거 진보 정부 지지자들에게 추억을 선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취지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과연 누구를 친구로 삼고 누구를 적으로 삼을지에 대한 규정이다. 외교는 타협을 중시한다. 하지먼 외교 역시 본질은 정치에 있다. 정치의 본질은 '누구와 함께(with who)' '누구에 대해(against who)'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 대한 지금 시점에서의 관계개선은 유용하지 않다. 우선 전세계적인 제재국면에서 한국의 이탈은 루소가 이야기 한 사슴사냥꾼들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존재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사슴을 잡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사냥꾼의 앞으로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토끼가 나타났다. 한 사냥꾼이 토끼를 잡을 요량으로 토끼를 뒤쫓는다. 이것을 모른 채 사슴을 잡겠다고 땀을 흘린 다른 사냥꾼들 앞에 사슴이 나타났을 때 정작 이 사람의 빠진 자리로 사슴이 도망을 가게 되는 허망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북한의 도발을 줄이겠다는 사슴을 잡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통일된 제재를 필요로 한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이탈은 중국에게 빌미를 줄 수 있으며 제재연합을 균열시킨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정권이 불량배와 같은 정책을 지속해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도발을 포기해야 한다.

일본 천황제보다 더 한 종교국가인 북한의 인권문제의 해결도 결국 북한정권의 의지에 달렸다. 과거 대북포용정책이 국가와 민간이 분리되지 않는 북한에 대해 정경분리를 토대로 접근한 것에 따른 실패를 학습하여야 한다. 게다가 북한은 자신에 대한 경제제재와 압박을 외세의 압력으로 치환하여 오히려 북한주민들을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북한이 오직 신경 쓰는 평양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자본들이 있어 현 상황이 크게 문제되지도 않는다.

물론 그동안 행동을 같이 해온 국제사회에 대해 우리는 한국의 특수성을 논리로 하여 설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과연 가능하며 유용할까? 북한은 우리와 대화를 통해서 핵과 미사일도발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

김일성정권시기부터 북한의 행태를 보았을 때 단호하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북한은 정상회담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더 크게 요구하고 이것을 역이용할 여지가 크다. 핵과 미사일은 북한에게 미국을 끌어들여서 안보를 보장받는 한편, 중국에게도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주고,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체제가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만능열쇠이다. 그러니 한국은 이 이슈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남과 북 사이에서 시간은 누구편인가? 남한은 상당기간 북한을 제재하는데 동참해도 큰 피해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시간의 지평이 길지 않다. 군부와 당간부인 집권세력을 숙청하면서 국제적 제재까지 받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응원만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절박하고 누가 손을 먼저 내밀 것인지는 명확하다. 북한의 그간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손을 내밀면 그간 북한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된다. 그러니 바람직함이란 도덕적 기준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리로 북한에 손을 내밀 수도 있다. 정치는 상상의 산물이자 정치적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면 손을 내밀었을 때 김정은은 이 손을 잡을까? 인간에 대해 지식을 동원해 볼 때 김정은은 고맙다고 대한민국의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누구를 친구로 하여 누가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방정식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북한 “김정은이 과연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만 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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