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큰별쌤’ 최태성, “한국사 대중화와 사교육문턱 낮추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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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큰별쌤’ 최태성, “한국사 대중화와 사교육문턱 낮추는 게 꿈"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5.26 11:3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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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떠난 지 5개월, 한국사 대중화 활동 박차
“역사란 이전에 살던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
“방송활동 필요하지만 본업은 한국사연구와 강의”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2001년부터 EBS 강사로서 TV를 통해 얼굴을 알렸으니, 어느덧 그는 방송 경력 16년차 베테랑이다.

EBS 강의로 ‘한국사 스타강사’라는 명성을 구축한 큰별쌤 최태성은 최근 여느 방송인 못지 않은 왕성한 방송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8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의 ‘수업을 바꿔라’는 지식인 패널로 최태성 강사를 앉힌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초부터 시작한 KBS1의 역사교양 프로그램 ‘역사기행 그곳’ 역시 방송인(개그맨) 이윤석과 함께 최태성 강사를 투톱으로 내세워 진행을 맡겼다.

특히 ‘역사기행 그곳’은 지난 해 12월, 시청자들의 거센 반대와 아쉬움 속에서 종영한 KBS1 '역사저널 그날'의 시즌2를 대신하는 프로그램이다.

‘역사저널 그 날’의 출연진 중 한 명이었던 큰별쌤 최태성은 당시 함께 출연했던 이윤석과 ‘역사기행 그곳’에 발탁, 매끄러운 호흡으로 일취월장하는 방송의 ‘감’을 한껏 내보이고 있는 중이다.
 

 

무한도전 출연으로 시작된 ‘본격’ 방송활동

‘한국사 스타’인 그가 처음 실검(실시간 검색어) 장악 스타가 된 것은 MBC ‘무한도전’ 출연을 통해서다. 당시에는 이미 한국사 강의로 충분히 유명세를 얻은 그였기에, 무한도전 측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출연제의를 했다.

“저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몰랐어요. 한국사 강의를 해달라고 하는데 예능 형식이라더군요. 저는 그 때 시간에 많이 쫓기던 때라 거절을 했죠. 예능을 해본 적도 없고.”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주변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다들 난리였죠. ‘미쳤냐!’부터 시작해서 ‘어디 무한도전을 거절해!’라는 호통까지...(웃음) 뒤늦게 제가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시간을 맞춰 해보겠습니다’라고. 하하”

무한도전 게스트로 출연한 파급효과는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다. 녹화를 마친 후 “유재석 씨는 정말 멋지네요, 정형돈 씨는 참 똑똑하신 것 같아요” 등으로 남겼던 그의 후기 트윗이 삽시간에 수십개 언론 기사가 되어 퍼져나간 것. 그는 그 때 비로소 무한도전의 위력, 정확히는 방송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최태성 강사는 지금도 수많은 방송제의를 받고 있지만, 연구가 본업인 그로서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허락된다면 방송을 통해 한국사를 알리는 일은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방송이라는 매체가 가진 파급력은, 한국사 대중화에 힘쓰는 최태성 강사로서는 놓칠 이유가 없는 매력적인 요소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요즘 함께 방송을 하는 이윤석으로부터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기행 그곳’을 찍으면서 저는 계속 쉴새없이 이야기하거든요. 하나라도 더 설명하고 가르쳐주려 하죠. 근데 이게 나중에 방송을 보면 정말 통으로 잘려나가 있는 거예요. ‘또 통편집이야!’하고 소리치죠. 하하”

그런데 촬영할 때 말을 얼마 하지 않는 이윤석의 분량을 보면, 그게 다 잘리지 않고 방송을 탄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방송인과 아마추어의 차이였어요. ‘방송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말을 하라’고 윤석이가 조언해 주더군요. 요즘은 그 감을 많이 익혀가고 있어요”

그가 ‘사려깊고 좋은 친구’라고 표현한 이윤석은 또다른 중요한 조언들도 많이 했다고 한다. 방송인이 겪게 되는 공허함, 잊혀지는 것과 상처받는 것에 대한 대처 등.

“방송이란, 프로그램을 위해 사람이 모인거지 어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냐. 방송을 본업으로 할 것이 아니면 네가 돌아갈 곳이 어딘지, 네가 있을 곳이 어딘지, 본업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해”

이런 그의 조언에 따라, 최태성 강사는 자신이 늘 ‘한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한국사를 단순한 암기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사 공부는 철학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

“한국사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다 실제 있었던 일들을 모아놓은 거죠. 한국사를 공부한다는 건 이전에 살던 그 사람들과 닿겠다는 것이거든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사건을 통해 나의 삶에 적용할 무언가를 배우겠다’ 이런 철학을 갖고 공부하는 것이 한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큰별쌤에게 한국사란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한층 진중해진 표정으로, 그는 “행복이 뭔지 알게해 준, 어쩌면 내 존재이자 전부”라고 대답했다.

그에 따르면 대학 시절 그는 실존적인 고민들로 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제 자신이 무엇 하나 뛰어난 것 없이 평범하기만 한 거예요. 공부가 1등도 아니야,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아, 운동도 잘 하질 못했거든요. 그런 생각에서 파생된 ‘내가 왜 사는지, 사는게 뭔지’라는 의문 때문에 상당히 우울한 시기를 보냈죠”

교사가 된 것도, 한국사를 과목으로 한 것도, 그저 단순한 직업 선택 차원이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교사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등 뒤로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는 것이다. “와, 우리 선생님 되게 잘 가르친다”

그 때서야 비로소 그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전했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가르치는 것이 신이 났고, 삶에서 기쁨을 느끼게 됐다는 것.

“그 이전까지 저는 늘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저의 초라함만을 생각했거든요. 그런 제게도 장점이 있고, 또 그 행복이 한국사임을 깨달으면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죠”

그에게 한국사란 그 뿐이 아니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성장해요. 늘 배우고, 그래서 더 겸손하게 되죠. 이전에 살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들을 그 때도 했고,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그 때도 똑같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내가 했던 생각을 이전에 누군가는 다 했구나’라는 사실을 보면서 더 겸허해지죠”

그렇기에 그는 한국사를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오랜 고통을 끝내줌과 동시에 행복이 되어준 것인 만큼 그도 그런 한국사를 널리 알려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

그런 바람으로 그는 현재 그의 공식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무료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초중고 과정 뿐 아니라 성인들의 교양을 위한 무료강의도 제공하고 있다.

“어느 날 윤석이가 그래요, ‘(개그맨) 이경규 형이 너한테 물어볼 게 있대’, ‘(가수) 원미연 누나가 네 강의 잘 듣고 있대’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그 분들이 내 강의를 안단 말이야?’ 싶어서요. 하하”

그가 덧붙였다. “사람은 사익과 공익이 합치될 때 가장 행복한 존재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저는 사교육시장에 나와 천문학적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녜요.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제가 누리는 사익만큼 공익을 위해 힘쓰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결국 제 행복이죠. 어쩌면 다 저를 위한 거예요”

그의 선한 웃음과 인상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한 뜻이었다. ‘내가 누리는 만큼 사회에 돌려주면서 행복을 찾겠다’는 것.

자신이 지향하고 말하는 바를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을 보기란 무척 힘든 요즘의 현실에서, 그가 유독 별처럼 빛나는 이유인 것 같았다.

공교육 떠난 지금, “사교육 진입장벽 낮추는 데 기여할 것”

대광고등학교를 끝으로 그가 공교육을 떠나온 지 5개월이 됐다. 공교육 현장에서 퇴직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를 사교육현장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김영란법이다.

그에 따르면 공립학교 교사는 원래 외부활동이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공직자들의 외부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김영란법이 생겨버리면서 더 명백한 제약을 받게 됐다는 것.

“공교육에서 20년을 있었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학교에만 있을 것인가, 한국사 대중화를 위해 학교를 나올 것인가라는 양자택일 문제가 된 것이죠. 아마 김영란법이 아니면 나올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그래도 그의 인생의 절정기는 2016년, 대광고 교사였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 때에 대한 향수가 늘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아울러 한켠에 간직하고 있던 아쉬움과 미안함도 꺼내보였다. 한 학급을 맡은 담임은 대부분의 시간을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고 케어하느라 보내는 것이 교사로서의 본능이자 사명인데, 외부활동을 했던 자신은 그 시간을 쪼개어 썼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미안함이 항상 있었다는 것.

한편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그를 보는 시선이 한결같이 고울 리만은 없다. ‘사교육 진입장벽 낮추기’라는 개인적 비전에 따라 무료강의를 오픈한 그를 따라서 다른 강사들까지 무료강의를 제공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시장질서 교란의 원인’이라는 비난까지 따라붙었다.

“한편으로는 죄송한 부분도 있죠. 저는 이게 제 비전이고, 저의 뜻이기 때문에 저라도 사교육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거든요. 사교육 시장에서 열심히 땀흘려 수고하시는 다른 분들까지 꼭 저처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일종의 폭력이니까요. 생각보다 빨리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그런 결단을 내려준 다른 강사님들이 훌륭하신 덕분이기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공무원 수험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생각은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연하게도, 공무원 수험시장에서 그에게 보내는 러브콜은 빗발친다.

“제가 공무원 수험시장에 진입한다면, 그 때도 목표는 하나예요. 수험생들의 어마어마한 강의료 부담을 없애는 데 일조하려는... 하지만 수능시장의 경우처럼 저로 인해 전체적으로 가격이 다운되는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이 업계에 인생을 걸고 계신 많은 강사분들이 어려워질 거라는 우려들을 여러분이 제기하셔서 주저하고 있는 상태죠”

듣고보니 그를 재촉해야만 했다. 공무원 시험 및 공사공단 준비생, 전문자격사 준비생 등 한국사를 공부하는 수험생이 족히 150만 명 가량 되는 이 수험시장에, 그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결심이 서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공무원 한국사는 또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니까요. 충분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방송을 통한 한국사 알리기도 제게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어서, 시간이 늘 부족한 것이 문제죠. 저부터 탄탄하게 준비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선역사 5천년의 제1대 사건은, IMF"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역사 1천년의 제1대 사건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빌어 최태성 강사는 “조선역사 5천년의 제1대 사건은 IMF”라고 말했다.

우리 역사를 IMF 이전과 IMF 이후로 나누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라는 것. “IMF 이전은 농경, 산업사회였잖아요? 그 시대는 적어도 직장이란 것이 불안정하거나 흔들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시대예요. 그러나 이후 시대는 다르죠. 직장이 주는 의미와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렇기에 그는 요즘 청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선뜻 조언하기도, 충고하기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

“저는 IMF 이전 세대예요. 저희 때는 적어도 ‘내가 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얻어지는 사회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됐죠. 저의 경험에 비추어서 ‘나는 이러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라’고 말하기에는 상황과 조건이 맞지 않아요”

그의 조심스러움에서, 마치 암탉이 정성껏 알을 품는 것 같이 진심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배려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험생들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보낼 수 있도록, 한 가지 당부의 말은 전해왔다. ‘지금 공부하는 이유를 눈 앞의 시험 합격이라든가, 직장의 타이틀을 얻는 데에만 두지 말라’는 것.

“시험을 합격하고 직장에 들어간 이후,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모양으로 기여를 하게 될 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게 될 지, 그런 부분들을 고민할 때 수험생활의 무게가 달라질 것이라고 봐요. 내 개인만의 삶을 너머 공익적 측면까지 포함한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수험생활에서 하나의 강한 동기가 되어줄 것이고 어려울 때 버팀목도 되어줄 것입니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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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2017-06-01 11:47:53
인성이나 한국사에 대한 종합적인 강의력은 매우 뛰어나신분
하지만 시험 고득점 대비 강사로는 부적절하신분

임용고시생 2017-05-30 23:21:30
존경합니다덕분에 한국사가 재밌어졌고..

2017-05-28 22:44:06
큰별샘!오랜만이에용!쌤덕분에 1급 합격했던게 엊그제 같은데ㅠㅠ

최고 2017-05-28 00:57:34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언제나 최고 2017-05-27 21:01:54
공무원 강의를 하신다면 꼭 듣고 싶네요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마라 라는 문구를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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