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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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0)
  • 박준연
  • 승인 2017.05.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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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로스쿨의 공포와 그 공포를 극복하는 법에 대하여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부터 최근의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에 이르기까지 로스쿨을 무서운 곳으로 묘사하는 것은 일번적이다. 로스쿨 첫학기가 시작하고 제일 처음으로 직면하는 공포는 수업중에 발언을 하는 것과 관련된 공포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틀린 얘기를 해서 교수와 다른 학생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은 질문을 거듭하여 그 질문에 답하는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깨우쳐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교수와의 문답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로스쿨에 진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말 잘한다는 소리깨나 들어본 경우가 많으니 그만큼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나를 포함해서 유학생들에게는 언어의 장벽도 있다.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뿐 아니라 제대로 된 영어로 표현하는지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스쿨마다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교수도 주위 학생들도 어느 정도 예습을 해 오고 성의있게 답을 하는 이상 답의 내용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또 사정이 있어 예습을 해오지 못했는데 질문을 받으면 다음 시간에 질문을 하겠다고 하는 교수님도 있었다. 어느 순간에 이것을 깨닫고 꽤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예습해온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공부의 일부라면 일부이다. 예습을 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소리내어 읽어보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운동을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정리해보는 것도 정작 이름이 불렸을 때 도움이 되었다. 그리 자주는 아니라도 나중에는 뻔뻔하게 손을 들고 답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2학년때는 수업시간에 내 이름이 불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시험과 관련된 스트레스이다. 대학입시를 마치고 외무고시 준비 과정까지 거치면서 웬만한 미국 출신 로스쿨 동기들에 비해서는 시험 준비 경험이 길다고 자부했던 나이지만, 고시 준비하던 신림동 풍경과 함께 지금도 선명한 것이 로스쿨 시험과 관계된 기억이다. 기말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날 밤,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돌아와 같은 반(섹션)이던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다 감정이 북받쳐서 울음을 터뜨리자, 마지막으로 귀가한 다른 1L 룸메이트가 그것을 보고 당황했던 것. 또 다들 출제될 것이라고 예상한 문제는 정작 나오지 않고 간단하게 5-10분 설명만으로 넘어간 부분에서 긴 문제가 출제된 것을 보고 진땀을 흘렸던 것, 당황한 나머지 주위를 둘러보자 늘 쿨하게만 보였던 동기가 울고 있었던 것.

로스쿨 시험을 포함해서 시험 스트레스에 대한 뾰족한 해결 방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 시험과 관련된 두려움을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이상적인지도 의문이다. 로스쿨 성적, 특히 첫학년 성적이 졸업 후 취업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미국인 동기들에 비해 나를 포함한 한국인 유학생들은 풍부한(?) 입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추가 스트레스가 된다. 로스쿨에 따라서는 유학생들에게 답안 작성 시간을 추가로 주기도 하지만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NYU 로스쿨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유학생 로스쿨 후배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핑계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1학년 첫학기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1학년 첫학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공부 방법을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학기 수업을 들은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부탁했다. 이때 나는 별 생각없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했다. 그때 계약법 교수님이 내 답안을 훑어보시더니 영어가 이상하기는커녕 내 답안지가 유학생이 쓴 답안지인지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중요한 논점을 놓친 것이 감점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셨다. 이 말에 정신이 퍼뜩 들면서 생각했다. 내가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편한 핑계거리로 생각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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