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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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7.02.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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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숨어 있는 비밀, 드라마 <장영실>

문제, 고조선이 건국된 년도는? 

흔히 기원전 2,333년으로 아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 고조선의 건국을 기록한 역사서에서는 연도가 다르게 나온다. 기원전 2,333년은 15세기 역사서인 <동국통감>의 기록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보다 더 이전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두 역사서 모두 고조선의 건국 년도를 상정하는데 동일한 전제를 수용하고 있다. 바로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인 요임금과 동시대에 건국되었다는 <위략(魏略)>의 기록이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고조선의 건국 년도를 “요 임금 때 건국하였다”로 출제된 적이 몇 번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요 임금과 같은 때”를 “여고동시(與高同時)”라 표현하였는데, 이는 2017년 경찰간부 시험에서 출제되었다. 문자 그대로 풀면 “고(高) 임금과 같은 때”라는 말이 된다. 그럼 요 임금의 본명이 고(高)인 걸까? 아니다. 고(高)는 요(堯)라는 글자를 피해서 비슷한 의미의 글자로 바꿔 적은 것이다. 이를 피휘(避諱)라고 한다.

전근대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자신의 본명을 소중히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에서는 태어나서 이름을 받은 후 어릴 때 부르는 이름(아명)이 따로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字)라고 하여 대외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자신을 본명으로 부를 수 있는 이는 임금과 스승, 그리고 부모님밖에 없었다. 이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와도 관련 있다. 이러한 풍습이 왕실에 적용된 사례를 피휘라고 보면 된다.

피휘는 지금 시대에는 전혀 의미 없는 풍습이지만, 역사학자에게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전근대 시기 왕의 이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새롭게 출토된 사료의 연도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의 나이테’인 셈이다. 피휘는 보통 당대 임금인 경우에만 행해지니만큼 피휘를 잘못했을 시에는 반역에 해당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과거 시험 답안지에 행여 왕의 이름을 사용한 경우 당장 낙방에 장형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여고동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득 요 임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서 피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고려의 3대 왕인 정종의 이름이 왕요(王堯)인데, 고려시대 사서인 <삼국유사>는 이 이름을 피한 것이다. 죽은 왕의 이름을 피휘하지 않는 중국과 달리 고려는 륭(隆, 태조의 아버지), 건(建, 태조), 무(武, 혜종), 요(堯, 정종), 치(治, 성종) 등 자주 쓰이는 한자가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었다. 이에 륭(隆)은 풍(豊), 건(健)은 립(立), 무(武)는 호(虎), 요(堯)는 고(高), 치(治)는 理(리)로 바꿔 써야 했다. 요 임금의 이름을 고(高)로 피휘한 것은 사실 엄청난 행동인데, 이는 고려가 자국 왕의 이름을 피휘하기 위해 중국의 성인이자 황제의 이름을 날려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이러한 고려시대의 피휘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조선 태조 때 어느 노인이 그림을 가져왔는데, 고구려 멸망 후 평양 대동강물에 빠져 사라졌던 천문도라고 한다. 이를 서운관에서 오차를 교정하여 흑요석판에 새겼는데, 이것이 현행 만원권 지폐에 새겨져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다.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때의 천문도를 얻었으니, 조선의 입장에서는 천명을 이어받았다고 공포하기에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그런데 태종 때 고려 부흥을 도모하는 세력들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괘서를 뿌린다. 이에 서운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분석하였는데, 처음으로 비밀을 알아차린 서운관 관원이 그날 밤 화살에 맞아 죽어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이천을 따라 한양에 오게 된 관노 장영실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 장영실 또한 천문도에 새겨진 비밀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건성(健星)’이라는 별의 이름이 ‘입성(立星)’으로 바뀌어 새겨져 있었던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태조 왕건의 이름인 건(健)은 고려시대에는 주로 입(立)으로 피휘하였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전 왕조의 시조인 태조 왕건의 이름이 피휘되어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당시에는 이를 제작하거나 지휘한 관원들에게 반역죄를 물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허구다. 그런데 단 하나,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건성(健星)이 입성(立星)으로 표기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미국인 루퍼스다. 일제 강점기 평양 숭실 학교에서 근무하던 그는 한국의 천문학을 연구하였는데, 1913년 논문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때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밝혔고, 이는 최근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당시 루퍼스가 사료를 잘못 읽어 ‘고려’를 ‘고구려’로 이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앞서 말했던 피휘(避諱)를 통해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본의 원본의 제작시기를 추정한 논문도 나왔는데, 건성(健星)이 입성(立星)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근래의 연구 성과로 봤을 때 고구려 때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한 서술은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해보이지만 언제쯤 교과서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천상열차분야지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임신서기석의 연도 추정과 관련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정설로 인정받아 실제 교과서에 반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올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여러분들은 기존에 배워온 내용대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보통 이렇게 논란이 있는 내용이 시험 문제에 나왔을 경우 양 쪽 의견 모두 맞다고 처리하는 편이니 안심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험 기간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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