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23) - 다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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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23) - 다시, 공부
  • 차근욱
  • 승인 2017.02.0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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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유식하다’라는 말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말도 없다. 그래서인지, 첫인상과는 다르게 유식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새삼 달리 보이고 매력을 느끼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뇌섹녀, 뇌섹남’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까.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이런 저런 애를 쓰지만 -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 - 실은 잘 모르면서도 그저 ‘아는 척’을 하는 것뿐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는 잘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평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는 척’은 오히려 자신의 지적 수준을 드러내는 법인지라, ‘아는 척’을 하기 위해 풀어놓은 말들이 올무가 되어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원래 정말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알면 알아 갈수록 자신의 지식이란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탓이다. 올바르게 알고 있으니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안다. 배움의 시작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닫기 때문이다. 반면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탓에 모든 것을 쉽게 말한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고 자신이 누구보다 옳다고 믿어 버려 그야말로 ‘벽’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 세상의 이러한 ‘아는 척’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구절 중 하나가 바로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의 첫 구절인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다. 이 구절은 논어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구절이라 할 정도로 친숙한 문장인데, 흔히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쉽게 말한다. ‘논어에서도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얼마나 즐겁냐고 하셨으니 짬이 나면 영어단어를 외우던가 수학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라. 때때로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문제 풀면 얼마나 즐겁겠냐.’

물론,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고 수학문제 한 문제를 더 풀어내며 즐거운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뜻풀이는 오해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본래적 의미와 문맥을 무시한 채로 그저 지나가다 들은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강요하는 태도는 폭력이 되어 버린다.

논어의 첫 구절이기도 한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는 말씀은 ‘국영수’ 열심히 외우라는 뜻만은 아니다. 공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때때로 배우고 익히는 공부’란, 시절인연 따라 사람이 익혀가는 모든 깨우침을 의미한다. 굳이 말하자면, 봄에는 꽃피고 새 우는 이치를 배우고, 여름에는 수영의 즐거움을 배우고, 가을에는 추수의 기쁨을 배우고, 겨울에는 함께 나누는 행복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여름에 수영하고 겨울에 나눌 줄 안다면 당연히 기쁠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공자 선생님께서 말하셨던 ‘공부’란, 삶의 모든 가치를 깨우치는 과정을 뜻하셨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 할게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공부’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 역사관련 서적이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역사에 관심을 갖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의 의미와 길을 찾기 위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공부’인 것이다.

인문학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정말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서 인문학을 찾았던 분들도 계셨고, 단지 동양고전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철학에 대한 담론에 참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괴롭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인문학을 찾았던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인문학’은 ‘너 이런거 알어? 몰라? 너 무식하구나.’라는 식의 폭력이 되기도 하였다.

살다보면, 공허를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왜 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의미 없어 텅 비어버린 자신이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에 술과 유흥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런 고통의 순간이야 말로 올바른 ‘공부’의 출발점이 되는 기회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공부’는 단순한 짱구박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공부’는 유식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있어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우열을 가리는 폭력이 되어서도 안 된다. ‘공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스펙을 얻기 위한 것이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인간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고 깨닫는 과정이 ‘공부’라고, 나는 믿는다.

마음의 허기가 막막해 다시 책을 잡았다. 책은,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자 애인이다. 같은 의문을 갖고 같이 답을 찾는다. 책과 함께 고민하며 새삼 깨달았다. 이 갈증을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밖에는 없었다고. 이제야 제대로 된 공부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제야 내 인생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먼 길을 돌아, 나는 다시 공부한다. 가끔은 소박한 방 한 구석에서, 또 가끔은 이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의 한 가운데서,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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