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16) - 제발 좀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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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16) - 제발 좀 참아주세요
  • 차근욱
  • 승인 2016.1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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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사는 것이 빤하다보니 항상 일탈을 꿈꾸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일탈이 어떤 일탈인가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재미나고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되는 것. 음... 금단의 영역이랄까. 나에게 있어 그런 일탈의 유혹이라면 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게 있어 특히 조심스러운 것은 바로 ‘인터넷 서점 순례’다.

아니, 그게 뭐? 라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거 이거 이거... 정말 위험하다. 일단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책을 한 권 구경하기 시작하면 이런 저런 책들도 파도를 타듯 구경하게 되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게 된다. 점심이 좀 지나 슬슬 책 구경이나 잠깐 할까? 라는 기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아침 8시나 9시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법 오싹하지? 시간이 얼마든지 허락이 되는 나날이라면, 이런 나름의 소소한 도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매일 마감에 쫓기는 주제에 겨울 밤의 소박한 즐거움을 쫓다보면, 가끔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게다가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책을 덮어놓고 사다보면야 그야말로 거지 꼴을 못 면한다. 카드값을 생각하라고. 카드값.

그런데, 매년 이맘 때인 연말이 되면 유혹과 인내의 시간이 도래한다. 인너넷 서점 이벤트가 시작되어 제법 근사한 다이어리를 사은품으로 내걸고 5만원 이상 구매를 독려한다던가, 할인에 무이자 할부에, 포인트 적립 등등 정말 정신을 못차릴 만큼의 유혹이 도처에서 손짓한다. 뭔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기준을 채워야 하는데, 그 기준을 채워 구매버튼을 누르기 위해 이런 저런 책 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하룻밤 정도는 가볍게 지나간다.

그래서 가끔 시간이 나거나 자료 조사차 구입해야 하는 책이 생기면, 나름의 안전장치 삼아 스탑워치로 시간을 정해 놓은 채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노는데, 이게 그야말로 꿀맛이다. 뭐, 알람이 울릴 때까지는 마음껏 책 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 인터넷 서점은 나의 원더랜드랄까. 인터넷 서점에서 노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어디에 있던가!

하지만 과소비를 항상 조심해야 하는 탓에 나름대로 세워 놓은 몇 가지 원칙이 있기는 하다. 책을 살 때에는 반드시 지금 당장 보아야 하는 책 만을 구입할 것. 사놓고 방치할 것이라면 절대 주문하지 말 것. 그래서 책 구경을 하다가 구매의 순간이 오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이 책, 사서 정말 일주일 내에 바로 읽을 자신이 있는지. 지금 꼭 읽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만큼의 필요성이 있는지.

그런데 이렇게 원칙을 세워서 책 구경을 하고 엄선해 구입을 한다 해도 지불해야 하는 책값과 분량은 항상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가장 가슴이 아플 때는, 책을 사 놓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는데 중고시장에 반값에 ‘떡!’ 하니 나와 있을 때면, 뭐랄까... 낭패감을 느낀달까...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라는 생각이 든달까... 그런 자괴감까지 들어 항상 책을 사는 것은 조심스럽다.

여튼 그래서, 정말 지금 꼭 읽지 않으면 쫄딱 망해서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되겠다 싶은 책이 아니면, 아무리 관심가는 책이라 할지라도 장바구니에 모아 놓고 나중에 활용하는 편이다. 장바구니를 활용한다?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를 도대체 어디다 써먹는다는 말인가?!

음,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활용하는 요령은 이렇다. 살다보면 경우에 따라 사람을 밖에서 만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니까, 일단 약속 장소를 서점 근처로 잡는 것이다. 서점은 크면 클수록 좋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나가서 흰둥이를 이용해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한 뒤, 그간 모아 놓았던 장바구니 속 리스트를 보며 책 구경을 한다. 이 때의 요령은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는 정말 꼭 읽고 싶은 책만 50권이 넘지 않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바구니에 담긴 책이 너무 많으면 흰둥이가 읽지 못하고 다운이 되어 버릴 테니. 여튼 그렇게 엄선해 놓은 책을 하나씩 실물로 구경해 나가다가 ‘어머! 이건 사야해!’의 그림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의 책을 만나게 된다면 현장구매를 하거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넷 서점과 장바구니를 잘 활용해 알고 싶었던 책 내용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요컨대, 책 구경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의 중독성이나 위험성이 있기도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말씀.

하지만 이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책’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게임에 재미를 붙여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 있어 게임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 일단, 정신없고 눈이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데다가 시끄럽다. 뿐만 아니라 뭔가 신경을 써서 빨리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나이가 들어 그런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랬다. 게임은 뜻대로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일단 시간이 너무 아까웠으니까.

게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당구나 화투, 포커게임에 이르기까지,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를 넘어 분노가 솟아오를 때도 있다. 도대체 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을 등 뒤로 하고 어두컴컴한 곳에 쭈구리고 앉아 뭘 한단 말인가! 그 재미도 없는 그림 맞추기나 공 맞추기를!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장 싫었던 것이 친구들이 모여 PC방에 가자고 한다거나 당구나 한 게임 하자고 한다거나 오랜만에 모였으니 고스톱이나 재미 삼아 한 판 어떠냐고 하면 어떻게 핑계를 대고 도망가야 하나, 부터 고민되어 식은 땀이 흘렀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는 거기에 술자리에 노래방까지 추가 되는 불행이 시작되었지만.

요컨대, 나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달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구경하는 등의 평화로운 순간들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유흥이나 게임에서 재미를 ‘전혀’ 못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그럴 시간과 돈이 있다면 맛난 국밥을 한 그릇이라도 더 먹겠다는 주의다. 물론, 그런 생각은 나 자신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당연히 게임도 술자리도 화투도 포커도 담배도 노래방도 다른 분들의 굉장한 활력소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취향은 개인적 영역의 부분에서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를 한다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말이다.

예전에 우연히 잘 알지 못하는 분들과 우연히 치킨을 먹게 되었는데, 나야 닭다리 보다는 가슴살을 주로 먹는 편이니까 그저 열심히 가슴살만 먹고 있노라니, 그 모습을 보셨던 어떤 분이 ‘이 사람은 닭을 전혀 먹을 줄 모르네’라면서 그야말로 혀를 차셨던 적이 있었다. 뭐, 닭다리를 먹지 않는 것이 온 몸을 포박당한 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분께서는 좀 경솔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답게 살아갈 자격이 있으니까.

책구경을 좋아하는 것도, 인터넷 서점이 시간 포식자가 될 수 있는 점도 항상 조심해서 살아가야 할 일이다. 그리고 화투나 포커, 술자리와 노래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터넷 서점 나들이를 참아야 할 때가 있듯이, 가끔 살다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뭐, 경우에 따라서는 또 잘 활용해서 인생의 활력소를 만들 때도 있으니까, 기회가 되고 여건이 된다면 그 때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다원적 가치를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삼가는 태도이니까.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또 송년회와 각종 모임들로 한 해의 끝을 마무리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다이어리와 각종 혜택이 제공된다 해도 지나친 도서구입이 지혜로운 일은 아니듯, 지나친 음주가무와 유흥잡기 역시 지혜로운 일이 아닐게다. 나도 참고 너도 참을 때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피어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뭐, 그렇다고 해서 시끌벅적한 연말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서두. 그건 그렇고 이제 또 술먹고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아, 올해는 또 어떻게 이 위기를 피해 나가야 하려나. 인생, 결코 쉽지 않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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