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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갈림길 : 비동시성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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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갈림길 : 비동시성의 동시성
  • 신희섭
  • 승인 2016.12.09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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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얼마 전 택시를 탔더니 운전자 분이 한 마디 했다. “더러워서 운전 못 하겠어요”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밤새워 12시간 운전대 잡고 운전해서 5만원 벌면 많이 법니다. 그런데 최순실이 한 끼에 50만원을 쓴다니 내가 왜 운전을 하나 싶어요.”

그렇다. 허망함과 허무함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 허망함과 허무함이 평범한 일상을 비루하게 만든다. 평범해야 하는 일상이 비루해지며 “내가 이러려고 사나”를 되새기게 만든다. 속절없음. 속절없음은 분노로 바뀐다. 분노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왜? 인간이니까!

하지만 한국 시민들은 이 분노를 잘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사태가 한국인들에게 던져준 숙제는 이 분노를 정확히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쏟아낼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이 과제를 우리는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대한민국을 변화하게 만드는 그 자리에 가지 않고 정치학을 연구하고 한국 정치에 대해 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역사적 현장에 나갔다. 현장에서 목격한 촛불집회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의 촛불집회와도 달랐다. 거리는 축제 분위기 였고 사람들은 그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한국 시민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던져준 선물과 같았다. 과거 시위의 장중함은 없었다. 날카로운 투쟁가의 자리는 공연으로 채워졌고 구호는 꽃 스티커가 대신하고 있었다. 광장의 한 편에서는 자유토론이 열리고 있었고 중학생들도 나와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었다. 아테네의 아고라 민주주의가 한국 광화문에서도 있었다.

촛불집회현장에서 한국이 마주하고 현재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았다. 지금 상황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흐의 개념인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한 공간에서 다른 시간들이 겹쳐져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같은 시간대에 공존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를 허망하게 만드는 것은 전근대적 망령들이다. 대통령의 국가관이나 지도자관 그리고 대통령을 떠받들고 있는 사고는 전근대적이다. 전제주의 시절의 군주관에 가깝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일본의 천황관에 가깝다. 존재하되 존재한다고 언급하지 않는 신화화된 권력. 국가를 하나의 가족으로 본다면 모든 이의 부모인 군주와 그 군주에게 절대 충성을 해야 하는 국민들, 신민들, 이 관계에서 군주는 권위에 대해 질문 받지 않는다. 군주는 그 자체로서 질문을 뛰어 넘는 공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2012년 선거에서 친박연대라고 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정당이 만들어졌지만 그 중심에 선 지도자는 ‘친박’이라는 용어를 거부하지 않고 즐겼다. 2016년 총선에서 친박, 진박이라고 하는 근대정당에서 보기 어려운 기준을 세울 때도 지도자는 기꺼이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이 대열과 공당의 사적인 줄서기와 권력행사를 만끽했다. 근대를 넘어가고 있는 시대에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무시하게 하는 전근대적인 권력과 줄세우기.

12월 6일 국회 국정조사장에는 9명의 한국 재벌이 자리를 채웠다. 이 자리에서 재벌들은 미르재단이나 K재단에 대한 모금이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만 있는 ‘대가성없는 뇌물.’ 재벌들은 국가에 돈을 냈지만 기부는 아니면서도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다고 한다. 합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에 몇 백억에서 몇 십억을 국가가 ‘삥’을 뜯는데 대가를 바리지 않으면서 낸다고 한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박정희시대 국가가 발전주의 모델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기업들에게 지대(rent)를 제공했던 근대 자본주의 퇴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역사의 재현.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은 근대의 전형이다. 민주주의구축의 근대 프로젝트. 민주주의에서 주인들은 대리인의 배신을 못 참고 저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발전의 ‘속도’가 ‘정의’나 ‘원칙’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잡아먹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더라도 빨리 성장하고 많이 성장하면 된다는 의식과 문화가 지금과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박근혜라는 인물을 대표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탈근대적인 현상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시위를 놀이로 바꾸는 집합적인 이성, SNS와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고 집합적인 의지를 축적. 풍자와 해학을 통해 무거움을 유머로 전환하는 힘. 10대 청소년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정치사회화. 물질적인 이익보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상.

한국의 시간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시간의 기저에는 전근대, 근대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있지만 한편 시대에 역행하는 노력도 있다. 북한 김정은이 촛불시위자들에게 일당을 준다거나 버스로 촛불시위대를 불러 모은다거나 하는 주장들은 거대한 시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240만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김정은이 통치자금을 쓴다면 금방 북한은 망할 것이고 통일은 당겨질 것이다. 그러니 매우 환영할 일 아닌가!

과거 통진당세력들이 촛불시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 시민들이 물불을 못 가리고 이들의 정치동원을 그대로 따를 리는 없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건강한 시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급진주의자들이 한국을 지배할 만큼 한국사회가 진보적이지 않다.

우리는 거대한 시류 앞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퇴행을 치유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보아야 한다. 한국은 지금 비동시성의 극복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숙제를 풀고 있는 10대 청소년에 가깝다. 우왕좌왕하지만 성장을 멈추지 않는 10대처럼 한국은 지금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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