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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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6.10.1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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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조선의 거북선에는 ‘이기남’과 ‘막둥이 아빠’가 있었다 –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지난 9월에 방영한 5부작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기존의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이순신의 비중이 낮았다. 귀선(거북선)의 제작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개그캐릭터로 묘사되는 군관 나대용도 <임진왜란 1592>에서는 부상 당한 이순신을 도와 전투를 지휘하는 유능한 부관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드라마에서 새롭게 두드러진 인물을 꼽자면 전장에서 실제로 귀선(거북선)을 지휘하였던 귀선 돌격대장 이기남(배우 이철민)일 것이다. 이기남은 실존인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귀선 돌격대장’으로 소개되었다. 그는 드라마에서 이순신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은 이순신과 더불어 전장의 승리를 결정짓는 신격화된 전투함으로 인식되었다. 철갑선 여부 논쟁, 용머리 위치 논쟁 등 그동안의 거북선에 대한 숱한 논쟁들은 거북선 신화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대중 매체에서 다뤄지는 거북선은 전투에서 영웅 이순신의 아바타로 그려졌다. 해전의 특성상 실제 장수의 전투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북선은 그러한 이순신의 전투를 대리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왔다.

사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참전한 전투에서는 생각보다 거북선이 자주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정유재란에서는 칠천량 해전에서의 대패로 거북선이 모두 침몰하였기 때문에 명량 대첩과 노량 해전에서는 거북선이 단 1척도 참전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거북선은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제작이 된 상태였지만 이순신의 첫 전투인 옥포 해전에서는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의 무대인 사천 해전은 이순신의 네 번째 전투이다. 옥포 해전을 포함한 기존의 세 전투는 정박해 있던 일본 군함을 포격으로 기습하여 섬멸한 전투였기 때문에 조선과 일본의 수군이 처음으로 맞서 싸운 전투로는 사천 해전이 처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이순신이 사천 해전을 앞두고 “나도 처음 맞아보는 전투이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전투 시 거북선 내부의 묘사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총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거북선 선원들을 다독이며 이기남은 뚝심 있게 거북선을 적진까지 돌격하였으며, 일본군의 전면 사격에도 뚫리지 않는 거북선을 선원들에게 보여줘 이들의 두려움을 일거에 해소시켜버렸다. 실제 거북선에는 돌격대장 이기남을 포함하여 150여명 정도의 선원이 탑승했다고 전해진다. 전투에서 거북선을 실제로 움직이는 이는 이순신도, 이기남도 아니라 이들 150여명의 선원 전원이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의 해전은 그동안의 영웅 중심주의적인 묘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일반 민초들의 전투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루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하다. 죽은 아들의 머리카락을 손에 놓지 않고 거북선의 노를 저었던 ‘막둥이 아빠’(배우 조재완)는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실제 학계에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압도적인 승리를 이순신 개인의 리더십이나 거북선과 판옥선의 뛰어난 화력보다 군‧관‧민 합동 체제로 설명하기도 한다. 중앙에서 파견된 장수와 지역에 주둔하던 군인, 그리고 지역민들의 연합이 일본군을 무찌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선박과 화포를 이용하는 전투에서는 개개인의 무력이나 무기의 화력이 아니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체계적인 협동이 전투의 승리를 좌우한다. 드라마 1화의 초반부에 나왔던 화포의 재장전 묘사는 화포의 운용이 체계적인 분업과 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군사시설인 훈련도감은 이후 조총의 생산과 훈련을 직접 담당하였는데 이는 분업과 협업으로 이뤄지는 무기 제조장의 운영, 원료 조달을 위한 둔전 설치, 철‧유황‧연초 등을 얻기 위한 광산 개발의 활성화로 조선 후기의 수공업과 광공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세계사적으로도 화약을 사용하면서부터 전투에서는 전사 개개인의 역량 대신 분대나 소대의 팀워크가 중요해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이기남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이러한 팀워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선원들의 일본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함인 ‘돌격대장’에 걸맞게 무식하게 거북선을 적진 한 가운데로 돌격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조총의 집중사격에도 끄덕없는 거북선을 보며 자신감을 얻은 선원들은 일본군의 조총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진을 누비며 일본군을 농락하면서 그동안에 쌓였던 한을 원 없이 풀어내었다.

<임진왜란 1592>의 전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장면은 거북선의 노를 젓는 선원 개개인의 모습이었다. 기존의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는 영웅화된 이순신의 지휘와 신격화된 거북선의 화력으로 전투를 묘사하였다. 심지어 거북선이 불타버린 영화 <명량>에서도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묘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판옥선 위에 침투한 적을 베는 이순신(배우 최민식)의 검이 대신하고 있다.

드라마 <임진왜란 1592>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최수종의 모습보다 거북선 내부에서 피를 튀겨가며 노를 젓는 선원들의 손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이전의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의 전투 연출에서 한 단계 진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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